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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64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4.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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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64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SUC-eQjblCE

     

    - YouTube

     

    www.youtube.com

     

    568.

    명상을 할 때 그대의 역할은 육체가 스스로 편안해지는가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대는 이완을 노력할 수 없다. 그대는 열매를 보아야 한다. 어떤 기후에서 어떤 토양에서 그것이 자랐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세상은 무지개다. 마음은 프리즘이며 존재는 흰 빛이다.

    그대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지식, 결론, 과거로부터 움직이는 것은 미성숙한 것이다. 즉 내부보다 외부에, 주체보다 객체에, 무한보다 유한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

    명상은 꽃이며 자비는 꽃의 향기이다. 그러나 꽃이 피어야 한다. 명상은 집중(초월명상, 집중은 강한 긴장을 초래한다. 집중은 긴장된 마음이다.)이 아니라 깨어있음(이완, 무위의 상태)이다. 그것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부정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고 받아 들여라. 모든 것이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유기적인 단일체이다. 그것들은 훼방꾼들이 아니라 전존재가 한 가족이 된다.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말고 그대 자신의 빛이 되라.

    삶은 무한한 기쁨이다.

    중심(심연)은 주변(표면)에 까지 이른다. 그것은 중심에 존재하는 만큼 주변에도 존재한다.

    신은 창조자일 뿐 아니라 창조물이기도 하다. 신은 그 자신 속에 존재하는 만큼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파도속을 헤쳐보라. 형상속을 뒤져보라. 그럼 형상없음을 발견하리라.

    비록 한 순간일망정 그대가 자신의 불멸을 알 수 있다면 그땐 명상이 필요없다. 그땐 그 경험을 따라 행동하라. 육체는 죽음이다. 그러나 그대는 육체 너머에 있다. 그대는 육체없음이며, 지켜 봄이며, 보는 자이다. 신의 왕국이 그대 안에 있다. 명상은 그대의 본성이며, 마음 너머에 존재한다. 생각은 스스로 가라앉는다. 그대가 생각 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다. 생각을 바로 잡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시냇물이 흐르는 것과 흡사하다. 물 속으로 뛰어들어 시냇물이 맑아지도록 도와주는가! 그럼 시냇물은 더 흐려질 것이다. 그대는 시냇가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해야할 게 없다. 뭘하든 그 행위는 시냇물을 더 흐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낙옆이 흘러가거나 진흙이 일어나거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들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욕망이 지날 때마다 마음은 더러운 시냇물처럼 흐려진다. 그러니 그냥 앉아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대가 명상을 가져오는 게 아니다. 명상이 그대에게 찾아온다. 마음은 끊임없이 지껄인다. 무심이 명상의 전부다.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인간은 추하다. 삶은 사랑과 어울림 속에 존재한다. 주고 받고 나누는 행위 안에 삶이 피어난다. 아무리 세속적이고 자잘한 일들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하면 기도가 된다. 사실 신이란 삶의 다른 이름이다. 삶이 유일한 종교요. 신전이요. 기도다.

    현재의 시간적 길이는 잴 수 없다. 그 길이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는 시간이 아니다. 현재는 영원이 시간 속으로 뚫고 들어온 것이다.

    깨달음이란 원래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다시 알아보는 것이다. 원래 있던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대는 끊임없이 진동(생각, 느낌...)을 송출하는 방송국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것을 얻든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찾고자 하는 것을 얻는 순간, 얻은 대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대는 다시 찾기 시작한다.

    신은 결코 초라한 사람을 창조하지 않는다. 신은 자신의 넘치는 풍요로움으로 그대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넘치는 신이 어떻게 초라한 사람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신에서 나온 풍요로움 자체요. 신의 일부분이다. 그런 그대가 어찌 초라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그대는 풍요로운 존재다. 무한히 풍요로운 존재다. 신만큼 풍요로운 존재다.

    진실은 계속 반복된 거짓이다.

    고통은 삶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대의 기대에서 오는 것이다. 무엇인가 요구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뭔가를 얻기위해 기도를 하면 그 기도는 욕망으로 더렵혀진다. 무언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참다운 기도다. 기도는 언제나 감사의 기도일 수밖에 없다.

    욕망은 항상 미래에 있지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명상은 내면의 목욕이다. 매일 잠시 동안만이라도 홀로 있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전날 밤(이생)의 마지막 생각이 다음 날(내생) 아침의 첫 번째 생각이 된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만이 참다운 소유물이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필요는 없다. 내려 놓되 여기에 있으라. 세상속에 있되 세상에 물들지 마라. 사람속에 있되 홀로있음을 알라. 생활에 필요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고 하되 행위자가 되지 말라. 에고를 쌓지 말라. 그 뿐이다. 진정한 침묵을 알고자 한다면 그대는 온갖 소음을 딛고 넘어서야 한다. 도피의 속성은 두려움에서 나오지 깨우침에서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시금석이다. 세상에 살면서 명상하는 일이 더 쉽다. 굳이 히말라야를 찾아가지 않아도 세상 속에서 그대의 침묵이 자랄 때 히말라야가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중도를 놓치면 곧 진리도 놓치게 된다. 지금 여기에 살며 그대의 길을 가라. 그대의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으로 가라. 춤추며, 웃으며, 노래하며, 신에게 가라.

    지혜로운 자는 빈 배와 같다. 어떤 지혜로운 자도 그를 뒤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를 뒤따를 때는 모방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비어 있음을 통해 전체가 얻어진다. 텅 빔은 축복이요. 은총이다. 전우주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대 자신으로 그대를 채우려 하지 말라. 그대가 그곳에 존재하지 않을 때만이 그것을 가질수 있다.

    누군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대가 측정되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전체를 본다는 것은 동시에 두 길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대가 여기에 있는 것은 하나의 신비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의 선물이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대가 살아있는 이 순간은 하나의 신비다. 에고는 신비를 죽인다. 신비가 사라질 때 노래도, 시도, 사랑도 사라진다. 지식은 사랑에 반대한다. 도의 사람은 배움을 떨쳐버린 사람이다. 술취한 사람은 도의 사람과 비슷하다. 거리낌이 없다. 그는 걷지만 방향이 없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에고가 사라진 것이다.

    다른 어떤 사람도 그대 외에는 다른 어떤 이도 그대를 파괴할 수 없다. 그대 외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그대를 구할 수 없다.

     

    光明眞言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 바릍타야 훔

     

    풍경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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