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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61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3. 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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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61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d1aV9Z7ABRY

     

    565.

    육체를 고차원으로 올라갈 디딤돌(사다리)로 여긴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그대는 육체 안에 있지만 육체가 그대는 아니다.

    꿈은 그대 안에 환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꿈을 이용하되 꿈과 동일시 되지는 말라. 그대는 꿈이 아니다.

    순수한 주시자(주체성)=붓다. 초월적 차원=탄트라, , 

    지식은 외부로부터 마음을 통해 온다. 지식은 결코 독창적이지 않다.

    지혜는 그대 내면의 가장 깊은 중심으로부터 피어나 그대 안에서 성장한 독창적인 비전이다.(original vision)=반야 般若-그것은 언제나 그대(에고가 없는)의 것이며 오직 그대만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면의 철저한 침묵 안으로 들어감에 의해 얻어진다.

    사전적인 지혜는 직접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을 의미한다.

    바라밀다 波羅密多;저 너머에 속한, 저 너머로부터 온, 시공간을 넘어선 이라는 뜻. 에고가 사라지면 전체와 하나가 된다. 이때 그대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동시에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독립된 별개의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전체 안에서 녹아 없어진다. 이슬방울은 시공간에 있지만 바다로 들어가면 無所不在한다. 바다 전체가 이슬방울의 거처가 되었다. 이제 이슬방울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맞서지 마라. 운명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부분이 전체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과 더불어 조화(귀의, 복종)를 이룰 때에만 승리한다. 그대의 패배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기꺼이 무릎꿇는 자만이 승리자가 된다. 그것은 전체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 그대는 전체와 더불어 고동치고 춤추고 노래한다.

    인간은 신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인간은 신이 되어 가는 중이다.

    명상에 자비가 보태지면 황금에 향기를 갖게 된다.

    초월의 차원에서 볼 때 그대는 붓다이면서 공허한 껍질이다.

    인간은 5개의 (오온 五蘊) 요소로 이루어졌다.  5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에고 ego()라고 불리는 부산물이 생성된다.  는 텅 비어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시계를 분해해도 소리의 실체가 없듯이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어떤 실체를 찾으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삶은 공허하다. 또한 충만하다. 그대는 이 공허함으로부터 충만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대의 눈으로 보면 붓다는 공허해 보인다. 그저 순수한 일 뿐이다. 붓다가 공허해 보이는 것은 그대의 관념, 집착, 소유욕 때문이다. 실상을 보면 붓다는 가득차 있다. 공허한 것은 그대다. 붓다의 시각은 절대적인 경지에 있다. 그러나 그대의 시각은 상대적인 관점에 머문다.

    논리와 추론이 아니라 사랑과 몰입을 통해 명상하라. 그대의 마음을 개입시키지 말라. 마음은 장애가 될 뿐이다.

    진리를 언어의 세계로 끌어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 자신이 진리다. 진리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진리의 품 안에 있다. 진리는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해석되지 않은 상태로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일단 해석이 개입되면 그것은 진리 truth가 아니라 실체 reality가 된다. 그대가 아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실체이다. 실체는 해석된 진리이다. 진리에 대해 답하는 순간 그것은 실체가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거기 해석이 가해졌다. 마음이 진리를 채색했다. 실체는 마음의 수만큼이나 많이 존재한다. 수많은 실체가 있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통해서 보면 마음은 진리에 관한 그림을 줄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진일 뿐이다. 사진은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수많은 요소가 개입되면서 그것은 실체가 된다. 마음이 붙잡아 정의하고 경계선을 그으면 진리는 사물(실체)이 된다.

    순수함, 맑음, 신성함 이런 것들은 영원(초월의 세계)으로부터 온다. 이것은 시간의 부분이 아니다. 근원적인 것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질문 안으로 들어가라. 마음은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다. 마음이 반복하는 것은 외부에서 차용한 지식(온갖 경전과 책들, 기억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빌려온 것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 마음 외에 다른 악마는 없다. 그리고 이 마음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마음을 단칼에 잘라 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 마음을 넘어서는 순간에 無心이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진리는 실존적인 경험이다. 마음은 비경험적인 대답을 제공함으로써 질문을 죽여 버린다. 이것이 마음의 계략이다.

    그대가 곧 진리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적인 침묵 안에서만 일어난다. 그대의 의식에 아무 물결이 일지 않을 때 진리가 일어난다. 그러나 물결이 일어나면(상념, 사념) 의식은 왜곡된다.

    귀의는 행위가 아니라 이해다. 귀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이해하는 것이고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력 즉 나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통찰력이다. 무엇보다도 그대라는 에고가 허위다. 자신이 독립된 실체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관념 자체가 허구다. 그대는 단 한 순간도 우주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5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나무나 인간이나 이 5가지 요소의 결합체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존재한다.’라고 생각함으로써 불행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것은 제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내는 꼴이다.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독립된 실체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 또한 우주와 하나로 존재한다. 무엇보다 귀의할 자가 없다. 귀의할 자는 존재한 적도 없다. 그대 자신 안으로 들어가 보라. 어디에서도 귀의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귀의가 일어난다. 그대는 귀의를 행할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귀의를 행한다면 그 귀의는 거짓이다. 가장 기본적인 허구는 에고다. 독립된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가장 근원적인 허구이다. 에고는 항상 목적을 지향하며 언제나 굶주려 있어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에고는 과거 안에서 소유자로서 기억으로 살아가고, 미래 안에서는 라는 관념을 가지고 욕망으로 살아간다. 이 순간이 있을 뿐이다. 이 순간에 그대라는 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며 이다라는 것을 알 때 저절로 귀의가 일어난다. 생각하지 말고 꿰뚫어 보라. 에고는 천국과 열반을 갈망한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 그러면 돌연 자신이 아무데로도 가지 않을 것이며, 아무데서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었다. ‘여기가 유일한 시간이며 공간이다. ‘지금이 유일한 실존이다.  지금 안에 귀의가 있다. 그대는 자유다. 그러나 자유를 원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자유는 없다. 감옥이 사라지는 순간 수감자 또한 사라진다. 수감자가 곧 감옥이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하늘, 순수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이 순수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이 순수한 공간이 열반(니르바나), 해탈(moksha), 구원(liberation)이라고 불린다. 달성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귀의가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귀의 자체가 자유다.

    릴랙스(relax, 방하착 放下着-인위적인 노력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방임하는 것)하면 관찰되는 것도 없고 관찰하는 자도 없을 때, 그대가 이원적으로 분리되지 않을 때, 전혀 다른 종류의 주시가 탄생한다.

    행위하려는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바다 위에 이는 파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나타났다가 어느 날에는 사라지는 물결이다. 하지만 바다는 계속 존재한다. 그대는 왜 그토록 긴장하고 걱정하는가? 그대는 파도처럼 일다가 꺼지는 존재이다. 집착과 소유가 없는 초연함이 진정한 삶을 사는 방식이다. 깨달음이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대를 둘러 싸고 있는 이 일상적인 삶, 이 단순한 삶 자체가 깨달음이다.

    물질은 환상이다.(원자 이하의 세계) 물질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의 고형성과 실체성은 환상이다. 아무것도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흐름이며 에너지다. 여기서 더 깊이 파고들면 에너지는 물질이 아니다. 에너지는 이다. 죽음에 이르러 우리의 모든 지식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존재 being라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죽음은 그대를 만든 질료이다. 무는 그대의 존재 자체이다. 사랑이나 명상을 통해 이 를 깨우쳐라. 죽음은 전체적이고 우주적인 오르가즘이다. 그대는 부분(개체, 독립, 동일시)이 아니라 전체가 될 것이다.

    지식은 분리, 분열, 단절을 초래한다. 명상은 지식이 부재하는 상태다. 우리가 긁어 모은 모든 지식은 잡동사니에 불과하며 사실들 facts일 뿐이며, 진리는 우리의 노력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통찰력과 주의깊음, 전체성을 갖고 임하라. 그리고 이 봄 seeing이 그대를 변형 시키고 무엇인가 볼 것이다. 그대는 어떻게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사념은 오직 사물의 세계에서만 작용한다. 왜냐하면 사념은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 전달할 수 없다. 공은 오직 진리의 세계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마음이 멈추어야 한다. 생각에 의해 진리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진리를 얻은 다음에는 생각을 진리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생각이 물러가야 한다.

    통찰은 무념의 상태다. 텅빈 마음은(순수한 현존) 신의 활동 무대이다. 그러나 내면의 순수공간이 무엇인가에 점유될 때 그대는 타락한다.

    타협은 두려움과 탐욕에서 나온다.

     

    풍경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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