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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58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3. 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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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58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7lDbAtgCfEE

     

    562.

    물질과 의식(마음)은 독립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다. 실용적인 개념으로 똑같은 것의 다른 표현 양태일 뿐이다. 물질은 잠들어 있는 의식이며, 의식은 깨어있는 물질이다. 마음, 지성(방향 감각을 가진 마음), 치타(뒤죽박죽이 된 마음의 상태), 에고(교만함에 마음이 물들 때)는 똑같은 마음의 여러 가지 측면에 불과하다. 즉 동요된 마음의 여러 얼굴이다. 아트만이 동요된 상태(파도)가 마음이며, 마음이 고요하게 평정(바다)된 상태가 아트만이다. 아트만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실체는 하나며, 이 모든 것이 그 실체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의 실체를 깨달으면 그때는 오로지 실체만이 존재한다. 생각은 아주 작은 창문이다. 창문을 통해 보면 건물 전체(진리)를 볼 수 없다. 생각을 버리고 무념의 차원에 들어서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명상이다. 명상은 시간을 초월한다. 즉 시간이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간이 멈출 때 명상이 일어난다. 명상 속에는 더 이상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체를 보는 순간 그대는 무궁무진한 형상들이 실상은 모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복도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 볼 때 시간은 불행을 의미한다. 시간 너머에 있는 것을 시간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노력이란 어둠이 가득한 방의 문을 열고 헷빛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과 같다. 문을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문을 열고 기다리면 햇빛은 스스로 찾아들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노력은 필요없다. 우리는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는 있지만 그 빛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다. 방 안이 밝아진 것은 순전히 햇빛의 친절함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일이란 문을 닫지 않은 것 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두는 것뿐이다. 우리의 노력은 그것이 전부다. 신이 들어오는 것은 순전히 그의 자비에 달렸다. 그리고 그의 자비는 무한하다. 그의 자비는 현관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핑계와 합리화로 어두운 방에서 만족하려고 한다.

    아무도 에너지를 전해줄 수 없다. 다만 그런 전이의 매개체가 될 수는 있다.

    실제의 여자가 외부에서 그대를 자극하는 반면, 상상 속의 여자는 내부에서 그대를 자극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즉 브라흐만이 되었을 때 의 소멸과 더불어 이때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이다. 나는 브라흐만이다 등 아무 의미도 없고 말도 필요없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라는 현존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적지에서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마저 사라진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말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 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지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내면을 향한 여행이 단일함과 유일의 세계로 그대를 데려간다면, 외부로의 여행은 분열과 다양성(다수)의 세계로 그대를 데려간다.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삶에는 사실 지킬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한은 오직 무한한 것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내면 속에 깨어있는 무한한 참자아 속에서만 무한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의 신-그가 바로 나의 참 자아이다. 내 안에 실재하는 모든 것이 다 신이다. 신 안에 실재하는 모든 것은 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을 앎으로써 우리 안의 천국을 발견한다. 이슬방울 하나하나마다 태양의 전부가 투영되어 있다. 신은 곧 그대의 이미지이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우주적 종교다. 인간은 오직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함으로써 선하게 된다. 겁내고 두려워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누군가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속박이 된다. 모든 존재를 똑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모든 욕망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주라는 무한의 도서관은 그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세계 역사 속에서 부자들에 의해서 위대한 일이 성취되었던 적이 없다. 위대한 일을 이루는 것은 가슴이나 머리지 돈, 지갑이 아니다. 영혼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예이다.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지 말고 모두를 당신과 대등하게 바라보라. 자신에게서 불평등이라는 근본적인 죄를 씻어라. 평등은 자유에 대한 증거(표시)이다.

    인간의 이상은 모든 것 속에서 신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보는 것 속에서 신을 볼 수 없다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 속에서 신을 보라. 그러면 다른 것 속에서도 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인은 존재의 힘이 드러나는 중심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사람은 진리라는 신을 영접할 수 없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자신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당신 자신(참 자아)을 믿어라. 나약하지 말고 두려움을 버려라. 장미가 본성에 따라 그저 향기를 내뿜듯 무심한 마음으로 베푸십시오. 사랑은 우주 안에 있는 단 하나의 동력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 그들 모두가 위대한 존재라는 기준에 따라 판단하라.

    만물에는 의미가 숨어있다. ‘나는 자유롭다라고 계속 외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진리이고 참 자아이며 우주의 신이다. 바위처럼 견뎌라. 여러분은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 구원이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당신은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다 이룬 것이다. 우리는 브라만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브라만의 조각이 아니라 온전한 브라만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숭배, 대중적 이념에 대한 숭배는 우상숭배이다. 존재의 온전한 비밀은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될지 두려워 하지 말라.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라. 모든 도움을 거절하는 그 순간에만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람은 결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둘 다 환영일 뿐이다. 육체 속으로 들어가면(단지 에너지의 이동일 뿐이다.) 탄생이고 육체를 떠나면 죽음이다. 그대는 탄생 전에도 존재했고 죽음 뒤에도 존재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현재이며 현재를 사는 것만이 유일한 온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욕망을 버려야 한다. 욕망이란 내일에 관해 환상을 갖는 것이다. 그대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아직 갖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갖지 못할 것을 위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희생한다. 모든 욕망은 마음 속에 있고 욕망 자체가 마음의 일부이다. 버려야 할 최후의 욕망은 깨달음(진리, 자유)에 대한 욕망이다. 모든 욕망은 기본적으로 성적인 욕망이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욕망 자체는 성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엑스터시(빠져 나온다. 온갖 죽음, 장벽, 안락함...)에 빠진 인간은 컨트롤되지 않는다. 자유롭다. 불행한 인간만이 컨트롤된다. 엑스터시는 어디서 찾을 필요가 없다. 바로 그대의 중심부이자 존재 자체이다. 무질서야말로 완벽한 아름다움이고 질서란 이제까지 닥친 재난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다. 복종이란 인간이 겪은 가장 큰 장애중 하나이다. 아이들에게 복종이나 질서를 강요하지 말라. 온갖 혼란이 허용되어야 창조성과 성장이 가능하다.

    매일매일 경험을 통해서 지식이 축적되므로 매순간 그것을 버려야 한다. 지식은 의식의 거울에 끼는 먼지일 뿐이다.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이 되지는 말라. 그대의 마음은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찾길 원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란 의미 찾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하면 어떤 의미를 일부러 만들어 낸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감을 느끼고 무언가 놓친 듯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의미는 그대 존재의 중심부 속에 있다. 세상은 단지 소음이다. 그곳에는 음악이 없다. 음악은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그리고 그 음악은 세상의 온갖 소음 속에서 들어야 한다. 그때 세상의 소음은 배경 역할을 한다. 소음은 하나의 맥락이 된다. 그대는 소음 때문에 내부의 음악을 좀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음은 더 이상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된다. 즉 포기가 아니라 기쁨을 얻는다. 진실은 역설적으로 기능한다. 역설을 넘어서는 것은 지성을 넘어서는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항상 초월적이다. 그리고 초월이 뜻하는 바가 바로 역설적이다. 평화는 빛으로 가득차야 한다. 평화는 세상 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평화는 세속적이어야 하고 감각적이어야 한다. 평화는 마음속의 추상으로 존재해선 안 된다. 평화는 사랑으로 가득차고 기쁨으로 가득차고, 희망으로 가득차야 한다.

    철학은 절대적인 것을 숭배하고, 과학은 상대적인 것을 강조한다. 절대적인 것은 진실하며 상대적인 것은 환영을 의미한다.

    자아란 에고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아를 깨닫는 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자아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침묵의 노래만이 진정한 노래이다. 진정한 인간은 어떠한 금기도 갖지 않는다.

    산스크리트어로 시간과 죽음은 동일한 단어이다.(kal) 시간 속에 사는 것은 죽음속에 사는 것이다.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 죽음도 사라진다. 과거와 미래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현재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에 속해있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는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세상에 속해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를 넘어 서는 것. 초월적인 것이 관통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이다. 지금은 영원성의 일부이다.

    명상은 마음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시간과 죽음, 두 가지 모두의 근원이다. 생각의 과정이 시간을 만들어 낸다.

     

    풍경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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