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56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2. 23. 00:08
    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56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NwU5BwQQp6o

     

    560.

    모든 천국과 지옥은 음란물이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인류를 지배해 온 성직자와 정치가들의 공통된 음모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인간의 본성을 잘못, , , 등 분열, 지옥, 천국...)을 심어주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억압된 사람들이 지어낸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개인 individual이라는 단어는 나누어지지 않는 indivisible 사람을 뜻한다. 이것이 개인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다. 자신을 통합시키고 개인이 된 사람은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이 몸이 붓다고 이 세상이 낙원이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 다만 두 종류의 심리적 세계가 있을 뿐이다. 개인이 된 사람의 내면 세계, 통합된 사람의 내면세계가 곧 천국이다. 그리고 분열된 사람의 내면세계,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은 사람의 내면세계가 곧 지옥이다.

    내가 아는 것은 마음을 넘어서 있지만 나의 말은 마음을 통해서 나온다. 나의 말은 마음의 일부다. 그러나 나의 앎은 마음에 속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식으로 가득 찬 태도를 버려라. 그리고 그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삶의 매순간이 미지의 신비로 충만하다. 마음은 자신이 다룰수 있는 것만 믿는다. 마음이 신을 부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은 사랑의 정수 精髓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은 사랑을 부정하고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마음은 하나의 신비로서 다가오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마음은 그것을 지식으로 끌어 내리거나 만일 지식으로 끌어 내리기에 역부족이라고 느끼면 마음은 그것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이때 마음은 신도 없고 사랑도 없고 신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신비한 것은 두려움을 안겨준다. 신비한 것은 광대하기 때문이다. 신비 안에서 마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왜 지식만을 긁어 모으는가? 그대 스스로 깨달음의 맛을 보라! 그대 자신을 비추는 빛이 되어라. 그대 스스로를 밝히는 빛이 되어라. 그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발로 우뚝서라! 누군가에 의지하지 말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라. 의존성, 노예근성, 습관, 세뇌, 되어감(목표)을 버려라. 그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면 그대는 이미 그대 자신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 외에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그대 자신을 최초의 남자로 생각하라. 그리고 그대 자신을 받아 들여라. 수용 외에 다른 초월의 길은 없다. 이것을 tathata 타트하타, 여여 如如라고 한다. 그것을 받아 들여라. 만일 신이 이런 것들을 주었다면 거기엔 무슨 의미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들은 미지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씨앗임이 틀림없다. 수용성이라는 토양 위에 그 씨앗들이 떨어져서 사라지면 거대한 이해의 나무가 자라난다. 그리고 엑스터시와 즐거움, 축제의 꽃들이 수없이 피어난다. 계획하지 말라. 마음 속으로 상상하지 말라. 다만 그대 자신을 드러내라. 적나라한 그대의 모습과 대면하라. 우리는 신체적인 알몸은 옷으로 숨기고, 심리적인 알몸은 언어와 이론, 경전을 통해 숨긴다. 그리고 영적인 알몸은 신, 열반, 깨달음 따위의 거창한 이상향을 이용해 숨긴다. 우리는 계속해서 숨기고 또 숨긴다. 은신처에서 나와라. 드넓은 하늘과 바람, , 속으로 나와라. 그대는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그대는 있는 모습 그대로 완벽하다. 신은 결코 불완전한 것을 만들지 않는다. 그럴수가 없다. 완전함에서는 완전한 것만이 태어난다.

    음악은 소리와 침묵 사이의 하모니다. 음악은 외적인 명상이며, 명상은 내면의 음악이다. 외부로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일종의 음악을 담고 있다.

    중용(균형)의 길을 따르라. 그러면 존재계의 모든 신비가 그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 세상을 버리지도 말고 세상에 빠지지도 말라. 그대가 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과거에 속한다. 그대는 그대의 과거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는 사라져야 한다. 모든 선생과 교수들은 과거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다음으로 성직자와 정치가들은 그대를 세뇌 시킨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은 내일이라는 개념이다.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계속 연기하면 내일이 오는 대신 죽음이 온다. 이 순간이 유일한 순간으로 전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 전체가 벌거벗고 산다. 성직자들은 인류의 가장 큰 적이다.

    초월은 오직 완전히 그 안으로 들어가 성을 똑똑히 지켜 보았을 때 일어난다. 성의 순간성을 보았을 때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초월이 일어난다. 섹스는 그 다른 것을 경험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그리고 섹스를 전체적으로 경험했을 때 그대는 그 다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섹스의 전체적인 오르가즘 안에서는 시간이 사라지고 에고가 사라진다. 그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대는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분리된 실체로 느끼지 못한다. 에고가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기쁨이다. 이것이 기쁨의 근본 뿌리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대는 섹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섹스를 통하지 않고도 에고와 시간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섹스는 순간적으로 기쁨의 빛이 일어나게 만들 뿐 금방 어둠이 다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명상을 통하면 그 빛이 그대 안에 굳건한 실체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섹스는 필요없다. 이것이 초월이다. 초월은 그대가 섹스의 모든 비밀을 알았을 때만 가능하다. 섹스는 그대에게 명상을 일깨워 주기 위한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방편이다. 이것이 섹스의 비밀이다. 명상이 발견된 것은 섹스의 오르가즘을 통해서였다. 섹스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명상은 개발된 것이다. 명상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명상은 자연을 넘어선다. 하나의 초월이다.

    그대 안의 성직자가 떨어져 나가야 한다. 모든 부정과 두려움은 성직자들이 세뇌 시키고 오염 시켰다. 죄책감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믿고 따른다. 사람들은 양떼같은 군중을 따라 간다. 군중은 어리석음과 미신, 무의미한 넌센스를 계속 되풀이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믿는다. 믿지 않으면 홀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홀로 남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한다. 그대는 홀로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

    동물(섹스, 진흙), 인간(사랑, 연꽃), (기도, 향기) 이것이 그대 안에 있는 세 가지 차원이다. 그러나 이것은 똑같은 에너지다. 전등을 켜고 끌줄 안다고 해서 전기가 무엇인지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

    깨어 있으라. 분노가 그대를 에워싸는 것을 주의깊게 지켜보라. 그대는 분노가 아니다. 그대는 분노를 지켜보는 자다. 바로 여기에 핵심 열쇠가 있다. 분노 자체는 아무 에너지도 갖지 못한다. 분노가 활성화되는 것은 그대가 거기에 에너지를 부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조 안에서 그 협조 관계가 깨진다. 그대는 더 이상 분노를 지원하지 않는다. 분노는 사라질 것이다. 과거는 기억이며 미래는 상상일 뿐이다. 그대는 그들에게 계속 에너지를 준다.(존재하지 않는 유령에게)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대가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신은 항상 현재에 존재한다. 과거는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불을 밝히는 즉시 어둠은 사라진다. 아이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노인들은 과거를 생각한다. 미래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명상가는 정확하게 중간에 존재한다. 그는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다. 동양에서는 깨달은 사람을 노인으로 묘사한적이 없다. 항상 젊은 사람으로 묘사한다. 행복해지는데는 아무 에너지도 필요없다. 행복은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러나 불행해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명상에는 아무 에너지도 필요없다. 그러나 분노, 폭력, 번뇌, 불안, 에고, 생각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대가 자연과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가면 아무 에너지도 필요없다. 에고는 싸움을 통해서만 창조된다. relax하면 에고(비자연적인 현상, 에너지 필요)가 사라진다. 흐름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강물이 그대를 돌본다. 삶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신이 그대를 돌본다. 깨어 있으려 노력(싸움) 하지말라. 그대가 어딘가로부터 깨어 있음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내면으로부터 솟아 오른다. 그대는 그저 고요하게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사념(생각)들이 그냥 지나가게 놔둬라. 맞서 싸울 필요없이 아무 에너지가 필요없다. 철저하게 방임하라. 그대의 노력에 의해 사념이 사라지는게 아니다. 그대의 고요함, 평온함, 비어있음, 릴랙스 된 상태에 의해 사라진다. 깨어있음을 목표로 삼지말라.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 그대는 행위자가 아니다. 어둠은 실체가 없다. 어둠은 빛의 부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명상은 무심이고, 침묵이고, ‘나는 마음이 아니다이다. 자연스런 상태, 순수함, 삶의 근원이 내면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 음식은 미묘한 방식으로 젖가슴을 상징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결코 많이 먹지 않는다. 마음은 세상을 알고 객체를 이해하고 내용물에 관심있고, 구름에 집착하지만 명상은 신을 알고, 주체를 이해하고, 내용물이 담긴 그릇, 의식이라는 그릇에 관심 갖고, 하늘을 추구한다. 구름이 오고 가지만 하늘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삶은 죽을 운명이지만 명상가만이 진정한 삶을 안다. 그는 영원이라는 근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외부, 마음-다라나 dharana

    내부, 명상-드야나 dhyana

    초월, 삼매-사마디 samadhi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명백한 진리다. 음식은 그대다. 무엇을 먹든간에 그 음식은 그대가 된다. 세상의 모든 채식주의 종교는 환생을 믿는다. 육식을 하는 모든 종교는 삶이 단 한 번 밖에 없다고 믿는다.

     

    풍경 142.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