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53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1. 22. 00:12
    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53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FQlLkV8a9FQ

     

    557.

    생각을 할 때 마음은 용감하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땐 너무나 무능하고 비겁하고 의지력이 없다. 머리(생각)는 자기에게 편한대로 듣는 법을 개발해 냈다. 그저 머리를 굴리며 생각만 하고, 해석하고 자신의 이론으로 정립하고 설명을 붙이고 주석을 단다. 그 모든 것을 머릿속에 우겨넣은 다음에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실행에 옮길 힘이 없고 의지박약하고 무능하다. 생각에 골몰하는 삶은 허망하다. 그런 삶은 내용이 없고 연옥과 같이 어중간한 삶이다. 밖으로 나가기를 원할 때 문이 어디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이해 자체가 실천을 동반한다. 따로 실천을 결심할 필요가 없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태도의 문제이다. 죽음 또한 신의 얼굴이다.

    그대의 능력이 닿는 한 더 많이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그대의 에너지를 받아준 사람에게 감사하라. 더많이 나누어 줄수록 더 젊어지고 더 새로워지고 순수해진다. 나누어 주지 않으면 에너지가 새어나가기 시작한다. 즉 썩어 버린다. 삶 자체가 에너지의 접촉이다. 모든 것은 그대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새어 나가게 하지 말고 사랑으로 흘러 넘치게 나누어 주라.

    시간은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낼 뿐이다. 죽음으로 종말을 고하는 이 삶은 진짜 삶이 아니다. 이 삶은 꿈이다. 영원한 삶만이 참된 삶이다. 진정한 삶은 죽음을 모른다. 죽는 것은 라고 하는 에고가 죽는 것이다. 에고는 죽음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無我가 되면 죽음은 없다. 에고가 사라질 때 죽음 또한 사라진다. 죽음, 절망, 무력함, 불쌍함, 그 모든 것은 에고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 들이고 싸우지 말라. 이제 더 진척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신선한 육체가 필요하다. 不死의 경지를 엿본 사람은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는 죽겠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는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휴식한다.

    점프는 에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에고에 의해 결정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점프이다. 점프는 그대가 소유한 모든 것을 전체가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점프는 과거와의 단절이다. 만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결정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연장이다.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가? 사랑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다. 점프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지 생각하고 갈등하고 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고 낙하이다. 에고로부터 머리로부터. 인위적인 통제로부터, 과거의 연속선으로부터의 낙하(fall, 落下)이다. 사랑 안에서 그대는 더 이상 생각과 과거의 일부가 아니다. 돌연 어떤 틈이 생긴다. 사랑은 죽음과 같다. 그대 쪽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이 와서 그대를 사로 잡는다. 그것은 그대의 결정이 아니다. 그대애게 일어나는 아름다운 일들은 모두 그대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즉 탄생, 죽음, 사랑, 명상...

    강물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흐른다. 언제나 본성에 충실하다. 평정과 고요함은 그대가 그대 자신으로 충실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이 될 뿐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욕망(욕심, 질투, 경쟁심...)에 사로 잡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욕망은 본래부터 그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 둑위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정신이 빼앗겨서 흐름을 중단하는 것과 같다. 이제 강물은 자신의 본성에서 이탈했다. 강물은 그 자신의 고유한 참됨과 진실로부터 멀어졌다. 모든 장벽은 그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에너지의 본성은 흐름이다. 인간은 신경과민에 빠지는 유일한 동물이다. 일단 어떤 이상향을 마음 속에 품으면 그대는 신경증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대가 바로 이상향이다. 그대가 바로 그대의 운명이다. 본래부터 진리는 청정하다. 처음부터 진리는 숨겨져 있지 않다. 진리는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처음부터 진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그대 때문이지 진리 때문이 아니다. 신은 비가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다만 그대가 보는 능력을 잃은 것 뿐이다. 우주 삼라만상 모두가 신이다. 신이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형상 속에서 신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그는 흐름으로 존재한다. 붉은 꽃 속에서 그는 붉은 색으로 존재한다. 그대는 종교, 문화, 사회, 세뇌, 문명 이 모든 것이 눈가리개로 작용하여 거기에 집착하고 있어 보지 못한다. 그대는 거짓에 익숙해진 나머지 진리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진리를 보는 것에 두려워한다. 진리를 보는 순간 그대가 쌓아 올린 모든 이미지가 산산히 부서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너무나 오랫동안 꿈과 욕망의 세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실체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모든 이상을 버려라. ‘~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라. 선은 아무 이상도 주지 않는다. 그저 그대가 자연스러워지도록 돕는다. 그대 자신으로 존재하라. 무엇이어야 할 다른 목적은 없다. 깨어있는,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아라. 규칙에 따라 살지 말라. 그대의 자연스러움으로부터 자발적인 규칙이 흘러 나오게 하라. 자연스럽게 존재할 때 그대는 주시자가 된다. 욕망은 바다에 파도가 일었다가 스러지는 것과 같다. 거기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그대는 어떤 형상도 그대 자신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한때 그대는 어린아이(청소년)이었다. 그 형상은 왔다가 사라졌다. 만일 어딘가에서 어린시절의 그대를 만난다면 그대는 그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형상은 물결처럼 오고간다. 형상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 분노는 왔다가 사라진다. 그것에 대해 손 쓸 필요도 없다. 형상의 한 가운데 머물되, 어떤 형상도 그대가 아님을 자각하라. 그대의 존재는 어떤 형상에도 갇히지 않는다. 그대의 참된 존재는 순수한 각성이다. 무형의 깨어있음이다. 폭력과 비폭력 둘 다 마음의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형상이고 그대는 관람객이다. 그대는 모든 형상을 넘어서 있고 그 어떤 형상도 필요치 않다.

    금욕주의는 위험하다. 다만 성욕(섹스)의 형상과 동일시되지 말라. 성욕이 떠오를 때 주시자로 존재하라. 비난하지 말고 선입견도 가지지 말고 주시자로 초연하라.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다만 깨어 있으라. 성욕을 좋고 나쁘고 판단하지 말라. 모든 판단은 동일시가 미묘하게 변형된 것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말고 그저 지켜보라. 문제는 그대가 그들 세상을 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마음은 온갖 이론과 망상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을 개입시키지 말라. 평가하고 판단할 때 에고가 들어온다.

    개들이 그대의 명상을 방해한다고 말하지 말라. 그들은 그대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 그대가 명상 중이라는 것도 모른다. 그들은 개다. 그들에게는 짖는 것이 명상이다. 그대가 명상을 즐기는 것처럼 개들 역시 그들의 명상을 즐기도록 놔 두어라. 받아들이기만 하면 즉시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개들은 계속 짖고 그대는 명상을 계속한다. 둘 사이에 어떤 마찰도 없다. 마찰은 그대의 마음과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만물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갖고 있다. 그대 또한 그대만의 본성에 따라 존재한다. 세상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완벽하게 아름답다.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은 있을 수 없다.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은 아직 에고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상대방 안에 깃든 신을 인정하라. 상대방 내부의 신을 경배하는 것이다.

    완벽한 원을 이룬 붓다는 누구나 세상 속으로 돌아온다. 이 세상이 바로 모든 사람이 출발하는 곳이며, 모든 사람이 끝맺음을 해야하는 곳이다. 다른 세상은 지금 여기를 제외한 어디에도 없다. 지금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이다.

    지복은 나의 본질적인 특성 자체가 된다. 지복은 나의 본질 자체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지복으로 충만하다.

    육체와 동일시하여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비법(장수) 등에 관심을 가진다. 일단 그대 자신을 이해하면 영원한 삶의 문이 열린다. 내 수명을 연장하는 따위에 신경 쓰는가? 진정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죽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죽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죽음이 일어나는 것은 그대가 육체와 동일시되어 있으며 그대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가 육체와 너무 달라붙어 있으면 이 분리가(육체와) 죽음처럼 느껴질 것이다. 만일 그대가 육체와 동일시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 자신이 의식이고 깨어있음이며 주시하는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죽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오가 완전히 사라져야만 에고가 사라진다. 불성은 그대의 본성이다. 내가 나 자신을 알게 된 날, 바로 그 날에 우주 전체가 깨달았다.(모든 사람이 장차 깨달을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일단 깨닫고 나면 그대는 깨닫지 못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그대는 내면에 신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은 그대 자신의 거울이다. 만일 그대가 깨달았다면 그대는 깨달은 존재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그대는 어디에 있든 그대만의 세상을 창조한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대의 에너지가 내면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다면 세상 전체가 축제의 교향악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대가 바로 세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언자, 모든 선지자가 신의 전령이다.

    그대의 신앙(깨달음)을 간직하라(비밀로).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진리를 얻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쉽다. 신뢰가 생겨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허물어지는 것은 아주 쉽다.

     

    어느 꽃집에서 3.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