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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52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1. 1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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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52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k3PFy9DJlh0

     

    556.

    그대는 이미 인정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신이 그대를 받아 들이고 생명을 주었다. 신은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보물을 그 안에 쌓아 두었다. 살아있는 동안 춤추고 행복을 누리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명상하라. 의식의 초점이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게 되면 엄청난 행복감과 지복을 느끼게 된다.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지복감이 솟아난다. 춤과 노래 지복이 모든 것이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 안에 포함된다. 그 안에 신이 포함된다. 그대 자신의 신성을 자각하라. 그러면 아무것도 성취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저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신처럼 살아라.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는 이미 신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잊지 말라. 삶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이미 주어진 선물이다. 삶은 철학적인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이다. 선은 가장 곧은 길이다. 우회하지 않는다.

    신비로운 것은 세상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그대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있는지)가 아니라 그대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존재)는 사실 자체가 가장 신비로운 것이다.

    대답도 질문도 언어화 할 수 없다면 수수께끼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과 대답 둘 다 언어화 시킬 수 없는데 어떻게 수수께끼가 이루어지겠는가? 문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마음의 창작품이다.

    그대가 나를 이해하는 순간 나의 말 전부가 무의미해진다.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그 말들이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의미는 오해에서 나온다. 진실로 이해했을 때에는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오직 삶이 존재할 뿐이다. 의미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투영이며 해석이다. 어떤 의미나 목적도 없이 삶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큰 신비이다. 그러므로 의미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다. 진정한 탐구는 삶 자체, 적나라한 삶의 실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질문은 어리석다. 즉 질문은 모두 마음의 산물이다. 그리고 마음은 그대와 실체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마음은 계속해서 문제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대의 탐구를 지연시킨다. 마음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삶의 실체가 그대 앞에 드러낸다.

    깨어있으라. 이미지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지 말라. 실체에 관심을 기울여라. 실체는 그대 안에 있다. 그것은 그대의 에너지이다. 그대 자신을 아는데 거울은 필요없다. 자기자신에 대한 앎은 거울에 비친 상이 아니다. 그 앎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만남이다. 그대 자신의 존재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그대가 마음의 주인이 되는 순간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그대가 노예일 때만 존재한다. 그대는 몸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우주 전체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그대는 하나이다. 주인이 된 사람 모두가 존재계와 하나이다. 오직 노예들만이 분리되어 있다. 분리는 일종의 질병이다. 그대는 전체와 하나이다. 그대가 마음을 자각하는 이유는 그대의 삶이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협화음으로 분열되어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조화를 이루면 모든 분열이 사라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모든 문제의 뿌리이다.

    행위가 에고를 축적한다. 에고는 긴장(싸움)을 통해 존재한다. 에고는 이원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깊은 방임 속(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일체를 내맡기는 것, 삶의 에너지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평정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악마는 상상의 산물, 그래야 싸움을 멈추지 않기 때문

    하나가 존재계의 본질이다. 둘은 우리의 상상일 뿐이다. 사랑은 전체와 다시 하나가 되고싶은 갈망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신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기도 또는 명상은 마지막 걸음이다.

    구름은 달의 본질이 아니다. 구름 뒤에 숨어 있을 때에는(밖으로 나와도) 달은 똑같은 달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구름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마음은 구름이다. 사념은 구름과 같다. 그대는 달이다. 세상은 구름과 같지만 이 구름은 그대에게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대 내면의 본성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대는 순수함과 神性을 그대로 유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는 신이다. 사념과 꿈 실재를 구별할 수도 구별할 필요도 없다. 마음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사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실제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무엇인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간 그것은 사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길로 접어들지 말라.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상물에 신경쓰지 말라. 무엇이 떠오르든간에 그것들은 마음을 이루는 재료이며 훼방꾼이다. 그저 지켜보는 자가 되라. 구별하려고 하지 말라. 무엇이 떠오르건 그저 주시하라. 그것이 떠오르는 것을 주시하고, 그것이 자리잡는 것을 주시하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주시하라. 그대가 확고한 중심에 존재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마음 전체가 사라진다. 생각, , 실체 이 모두가 끝장난다. 돌연 그대는 텅 빈 공간에 존재한다. 아무 대상도 없다. 마음속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신, 실체, 진리 어느것이라고 불러도 좋다. 마음에 지나치게 사로 잡혀있을 때 그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그저 지켜보라. 마음은 거울이다. 오직 비추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생각의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지 말라. 그렇게 되면 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생각을 통해 생각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없다. 생각은 끊임없이 자가발전 自家發電한다. 단 하나의 길은 거기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관찰(지켜)하라. 마음속에 무엇이 지나가건 그것을 판단하려고 하지말라. 모든 것이 꿈인 것처럼 지켜보기만 하라.(위파사나 남방불교의 특징) 마음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모인 곳이다. 삶을 즐겨라. 그러나 그대는 삶을 즐기고 있다는 꿈을 꾸는 중이다. 희망은 즐거움이 아니다. 희망이란 위안을 받으려는 마음의 속임수이다. 그러나 진실로 삶을 즐기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는 결코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살되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 집착은 불행한 마음을 대변한다. 그대가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꿈꾸는 천국과 행복은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결코 그대와 함께 있지 않다. 그러니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를 제외한 다른 시간과 공간은 모른다. 진실로 행복하다면 오직 행복이 존재할 뿐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 속에서는 그대와 불행 둘이 존재한다. 즉 이원적이다. 조각조각 나뉘고 분열된 상태가 불행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즉 내일은 괜찮아질거야하는 희망을 안고 고통을 겪고 있다. 어제를 돌이켜 보라.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는 오늘이 바로 내일이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오늘이 왔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일은 항상 오늘로 온다. 결코 내일로 오지 않는다. 사실 내일은 오지 않는다. 지평선과 같은 꿈이다. 내일은 꿈꿀수는 있지만 허구이다.

    신은 심각하지 않다. 삶은 즐겁고 유쾌하다. 신은 놀이를 즐긴다. 또한 순수한 에너지로 넘쳐 흐르고 즐거워 하고 온갖 노래와 춤을 즐기면서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활력으로 넘치며 계속해서 인간을 생산해 낸다. 그러므로 인간 각자가 신의 새로운 춤이며 노래이다. 사람 하나하나가 사랑과 삶을 위해 신이 기울이는 노력의 산물이다. 모든 인간이 신의 계획이며 노력이다. 신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그의 놀이는 끝이 없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심각하거나 근심걱정에 매달리거나 불안에 떨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흥겨운 놀이를 즐기고 있다. 기도조차 흥겨운 놀이처럼 하고 명상도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 미묘한 기쁨과 환희,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즐거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

    명상은 과거의 망령과 미래의 헛된 꿈을 몰아내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즐거워하고, 춤 추고, 사랑할 때,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 이때 그대는 아무 이유도 없이 행복하다. 행복에는 아무 이유도 필요없고 동기도 필요로 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비논리적이다. 만일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결코 행복해질수 없을 것이다. 행복을 원하면 기다리지 말라. 무엇인가 준비를 하려고 애쓰지 말라. 사전 준비가 필요없다. 그냥 행복하라!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다. 동기란 그대의 불행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다. 불행한 마음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시간에 의지한다. 그러나 행복은 시간과 무관하다. 즉 자각의 문제이다. 완벽함이란 마음의 희망사항일 뿐 에고의 장난이다. 삶은 불완전한 채로 아름답다. 행복은 오직 자연스럽게 즐기는 습관, 즐기는 능력을 필요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런 능력은 오직 즐김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즐기면 즐길수록 그대는 더 많은 것을 즐기게 된다.

    모든 순간이 지금 이 순간에서 나온다. 다음 순간도 지금 이 순간에서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사랑과 기쁨으로 산다면 다음 순간 역시 이 순간에서 비롯될 것이고 그대는 이 순간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행복이란 그대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즐기는 능력이다. 삶이 곧 길이요 목적이다. 버려야 할 것은 라고 하는 에고이지 삶이 아니다.

     

    어느 꽃집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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