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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48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3. 12.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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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48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JZ5sKLAoCPs

     

    552.

    찾고 찾다가 자기를 잃어 버렸네. 이슬 방울 하나가 바다로 흘러 들었네. 그러니 어떻게 이슬 방울을 다시 찾을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슬 방울이 바다로 흘러들어 간 것이 아니다. 바다가 이슬 방울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에너지의 진동 자체가 되었을 때 무한한 에너지의 바다가 우리 안으로 녹아든 것이다. 신과의 만남은 우리의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난다.

    춤을 통해 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발견했을 때 춤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물질은 잠들어 있는 의식이며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깨어 있는 물질이다. 물질과 마음()은 하나다. 그것들은 똑같은 것의 다른 표현 양태일 뿐이다. 그 하나가 잠들어 있으면 물질로 나타나고 깨어 있으면 마음 또는 의식으로 나타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식이다. 지성은 방향감각을 가진 마음이다. 명상은 시간이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간이 멈출 때 명상이 일어난다. 진정한 앎은 생각이 없을 때 얻어진다. 생각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에 앎이 찾아온다.

    하나의 파편으로서 자신을 인식할 때 이 나뭇잎(우물)은 분리된 개인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거대한 전체로서 인식하면 이 나뭇잎은 개인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개인이 사라진다. 많은 종교인들이 아트만의 단계에 묶여있다. 그들은 아트만 또는 영혼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 아트만은 궁극적인 경험이 아니다. 여기서 계속 나아가면 궁극적 단계에서는 파라마트만 paramatman(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최고아 最高我) 신 또는 전체만 남는다. 여기서 더 나가면 신마저 사라지고 결국엔 , 니르바나만 남을 것이다.  ()만 남는다.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전체를 깨달음과 동시에 그대는  또는 을 깨닫는다. 절대는 이다.

    제로=전체, =전체, =절대, =충만함

    같은 것을 가르키는 두 가지 이름이다.

    제로를 종이에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0이라는 숫자는 상징일 뿐이다. 0이라고 쓰자마자 그것은 이미 제로가 아니다. 그대가 선으로 경계를 만들고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의 제로가 아니다. 길이와 넓이를 갖고 있는 한 그것은 제로가 될 수 없다.

    허공에서 허공을 빼면 여전히 허공이 남는다. 공은 제거될 수 없다. 항상 똑같이 남는다. 전체는 아무것도 더해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제로나 공은 아무것도 빼낼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절대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없고 공에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없다. 전체에서는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 그 어떤 경계선이 있는 곳에 전체성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전체는 무한하다. 그러나 전체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체만이 홀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공에도 한계가 없다. 전체가 되는 길을 갈 수도 있고 공이 되는 길을 갈 수도 있다. 두 가지 길 모두 그대를 궁극적인 목적지, 모든 것의 목적지로 데려 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나의 소멸과 더불어 브라흐만도 무의미해 질 것이다. 이 때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모든 경험의 초기 단계에는 개인이라는 우물이 있지만 그 끝 단계에는 비개인적인 바다 또는 신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에너지의 쿤다는 하나며 우주적이다. 그대가 더 깊이 들어간다면 쿤다는 더 이상 그대의 쿤다가 아니다. 오직 우주적 쿤다가 있을 뿐이다. 그대는 아무것도 그대의 것이 될 수 없다.

    신에게는 생명이 없다. 존재가 있을 뿐이다. 그는 존재 자체다.

    두려움을 버려라. 벌거벗은 사람이 옷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삶에는 사실 지킬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는다.

    공간은 비어있음으로 해서 온갖 사물을 그 안에 담을 수가 있다. 우리들 마음 속에 각양각색의 생각들이 제멋대로 떠오르는 것도 마음이라고 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에 주인이 있다면 가슴 속에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현상과 진리는 원래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것이다. 외부에 나타나 있는 행위가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면의 깨달음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전에서의 형식적인 태도를 보고 신앙이 없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를 부러워하며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하는 것이 좋을까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하고 망설여질 때는 대체로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 어떤 영화든 간에 거기에는 우연성이 끼어들 수 있는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샤르트르-존재와 무)

    편안한 거처가 없어서 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풍족한 재물이 없어서 유족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자신이 어려워도 남들을 편하게 해주며 소인들은 자신이 편하고 남을 어렵게 만든다. 군자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 그에게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활은 당기기는 어렵지만 높이 날아 깊이 박히며, 훌륭한 인재는 명령을 내려 부리기는 힘들어도 군주를 존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양쯔강과 황허강은 작은 시냇물을 싫어하지 않으므로 자기를 가득채워 그렇게 크게 될 수 있고,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물이 아니다. 천냥의 값진 가죽 옷은 한 마리의 여우 가죽이 아니다. 대저 어찌 도리가 같은 자를 취하지 않고 자기에게 동조하는 신하만을 기용한다면 널리 아우르는 임금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큰물은 지나치게 맑은 것에 있지 않다. 그래서 천인의 우두머리가 되려면 화살처럼 곧고 숫돌처럼 공평한 것만으로는 만물을 덮기에 부족한 것이다.

    선비는 학문이 필요하지만 행실을 근본으로 삼는다. 군자란 가까운 것을 잘 살피고 닦는 사람이다.

    행실과 소리와 성품은 물들여지는 것이다.

    오곡중에 한 가지 곡식을 추수하지 못했을 때를 근 이라 하고, 두 가지 못했을 때를 한 , 세 가지는 흉 , 네 가지는 궤 , 다섯 가지 오곡을 모두 추수하지 못했을 때를 기 

    백성들은 항심 恒心을 가질 수 없다.

    창고에 병장기를 비축하지 않으면 비록 의로운 자라도 불의를 물리칠 수 없다.

    성인이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직책으로 하는 사람이다. 의사가 질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하듯이 반드시 어지러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만 능히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혼란이 일어나는 원인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남을 이롭게 하지 않는데서 일어난다. 도적은 제 집안을 사랑하면서도 남의 집안은 사랑하지 않으므로 남의 집안을 훔쳐서 제 집안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제후들은 제나라는 사랑하지만 남의 나라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의 나라를 침범하여 제나라를 이롭게 한다. 남을 사랑하면(이롭게 하면, 미워하면) 남도 역시 나를 사랑(이롭게, 미워)할 것이다.

    계획이 실패하거든 옛일을 살펴 앞 일을 알고 드러난 것을 살펴 숨겨진 것을 알아야 한다.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역사)을 거울로 삼는다.

    진실로 도를 지키고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어짊과 의로움(仁義)의 뿌리인(근본) 하늘의 뜻을 본받고 살펴 따라야 한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의로운 것을 본받는 것이다. 의로움은 바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은 천하 인민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겸애-兼愛交利), 묵자는 하늘의 뜻을 세워 놓고 이것을 표준과 법도로 했다. 하늘의 뜻은 의로움의 표준인 것이다. 평등을 도로 하는 것은 의로운 정치요. 차별을 도로 하는 것은 폭력의 정치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도피할 곳이 없다.

    仁者의 정사는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찾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 힘쓴다.

    말에는 세 가지 표준(법칙)이 있어야 한다.

    三表;근원 , 원인 , 실용 

    三法;표본 , 근원 , 실용 

    三法;고증 -옛 성왕들의 사적, 근원 -사람(백성)들이 보고 들은 실정(사실), 실용 -, 국가와 백성과 인민의 이익에 맞는가?

    운명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얻는 것이다. 운명이란 폭군이 지어낸 것

    대저 도리와 정책, 학문과 사업이란 한마디로 어짊과 의로움이다. 크게는 사람을 다스리고 작게는 벼슬을 감당하며 멀리는 그것을 인민에게 널리 베풀고 가깝게는 그것으로 몸을 다스린다. 의롭지 않은 곳에 처하지 않고 도리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오로지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인민에게 이로우면 행하며 이롭지 않으면 금지한다. 이것이 군자의 도리다.

    ;개별적인 사랑, 自己愛

    (의로움) . 의는 뜻으로써 천하를 아름답게 하고 힘껏 이롭게 하는 것이다. 반드시 재화일 필요는 없다.

     

    풍경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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