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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35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3. 8. 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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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35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1b-HXTPkJKE

     

    539.

    모든 것은 신성하다. 이것을 그대의 근본원리로 삼아라. 그리하면 그대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진리에 대한 모든 관념을 잊어야만 한다. 그대가 어떤 것을 갈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것에 관한 철학과 관념을 만들기 시작한다. 깨달음은 황홀경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상태이다. 철학자들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한다. 즉 지적인 발명품에 불과한 것이 진리이다. 아름다운 모든 것은 항상 홀로 있을 때 일어난다. 그 어떤 것도 무리지어 있을 때 일어나는 법은 없다. 초월적인 모든 것은 절대적인 고독속에 있을 때만 일어난다. 부정적인 것들로 힘들어 하지 말라. 촛불을 밝히면 어둠은 저절로 사라진다.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메시지)이다. 꿈은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을 만나게 해 주는 다리이다. 모든 행복은 상상의 소산이다. 그것을 손에 넣으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을 더 이상 끌지 못한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의 지배(굴레)를 받는 것은 물질이며 초월하는 것이 자유이다. 시간은 마음의 산물이다. 당신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도 따르지 말라. 나무의 가지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표면에서만 분리되어 있다.) 그들의 몸통은 하나이듯, 우리의 사고와 느낌, 마음과 가슴 둘은 하나인 우리 존재의 가지들과 마찬가지이다. 마음과 가슴은 표면에서만 분리되어 있다. 깊은 곳에서는 그것들은 결합되어 있으며 하나이다.

    =명상=디야나 dhyana, 베다;순수의식

    존재하는 것들은 실존이 드러남이오. 있는 것 자체는 존재가 표현된 것이다. 또한 존재는 모든 힘의 원천이다. 존재는 사물의 궁극적 실재이며 피조물의 어느 층에나 있다. 모든 창조물은 서로 다른 형체와 현상으로 나타내어진 의식의 펼쳐짐이다. 이 의식은 순수 존재의 근본자리에서 비추어진다. 마음은 대체로 바깥에 드러나 있는 세계만을 오관을 통해 내다보고 있을 뿐이므로 제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온 세상을 다 보는 눈이 제 자신을 못보는 형국과 같다. 모든 것이 마음의 본질, 무소부재한 그 존재에 근거하고 있건만 마음은 나타난 여러 가지 모양을 쫓아 다니느라 저를 이루고 있는 존재를 모른다. 존재는 사물의 뿌리, 생명(창조물)의 본질, 영원한 생명, 절대 순수이다. 우리의 생명은 숨쉬기와 생각의 활동으로 출발한다. 활동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이 있으려면 최소한 우리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존재는 생각의 기반이며 또한 생각은 행동의 기반이다. 존재가 모든 생활의 기반인 것이다.

    존재=절대계(영원히 불변하는 침묵의 세계)+상대계(항상 변하는 움직임의 세계)

    존재는 다양한 형체와 세계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불변, 절대, 영원의 성격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절대불변의 절대자가 항상 변하는 창조계에 상대적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데 불과하다.

    존재=아난다=극치의 환희=프라나(生氣) 속의 브라만=궁극적 실재=분리될 수 없는 자아=우주심

    존재가 주체적 성질을 취하면 마음이 되고 객체적 성질을 취하면 물질이 된다. 존재는 순수무구인 채로 주체와 객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프라나는 존재가 창조계의 주체와 객체의 입장을 취하여 외부로 나타나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존재의 힘이다. 창조의 목적은 기쁨의 확대이다. 이원성은 곧 단일성이다. 절대 존재와 상대적 창조계는 함께 하나의 실재를 구성한다.

    마음=프라나+카르마로 구성되며 프라나를 통해 숨어있는 존재와 연결된다. 마음은 존재의 바다 위에 이는 물결이다. 절대 존재가 그 본성인 프라나에 자극되어 마음으로 나타난다. 감추어진 존재의 바다에 바람이 불 듯 작용하여 마음에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카르마이다. 따라서 프라나가 카르마의 영향을 받은 상태가 마음이다. 창조는 카르마를 매개로 한 프라나의 추진력을 받아 마음에 의해서 온갖 형태와 현상으로 시작된다. 마음 역시 존재와 구별되지만, 동시에 그 본성에 있어서는 존재인 것이다. 상대적 현상 세계는 창조와 해체가 반복되는 주기속에 영원한 것이다. 존재만이 유일, 최고의 실재이며 창조를 위해서 그 본성 속에 카르마라는 수단을 품고 있는 것이다.

    카르마=행위, 활동=원인, , 결과의 법칙

    카르마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원한 존재의 자리에 도달하는 길이 된다.

    초월 명상은 존재와 카르마는 서로 대립된다 하더라도 카르마의 세계를 존재의 빛으로 채워 영광되게 하는 기술이며, 존재의 가치와 카르마 편의 활동 가치를 조화시키는 방법이다. 즉 마음을 근원으로 오게하여 생각이 나오는 자리, 바로 거기서부터 의식적 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다. 곧 마음을 매개로 하여 존재의 힘을 카르마 세계에 주입하는 것이다. 우선 행동을 제로 지점에 이를 때까지 줄이고 그 지점에서부터 행동을 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위자가 존재의 영원한 자유 속에 확립된 채로 행동함으로써 카르마의 구속력에서 풀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존재의 기쁨으로 카르마를 빛낼 수 있어 사람이 활동의 세계에 살면서도 동시에 절대 존재의 환희의식을 안고 영원한 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의를 피조 세계 내부의 미묘한 층층을 통과하여 가장 안쪽의 미묘한 차원의 마지막에까지 오게 한 다음, 그것마저 초월하게 되면 존재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외부의 지각 활동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미묘한 세계도 우리 느낌의 대상이 된다. 경험의 주체가 대상의 가장 미세한 상태를 넘어가 그 대상을 잊고 홀로 남게 되면 그는 경험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존재의 자리에 닿는 것이다.

    초월적 존재의 차원까지 주의를 이끌어 가는 과정을 초월명상이라고 한다. 즉 적당한 상념 하나를 고르고(간화선-좋은 파동의 성질을 골라야 한다. 화두, 공안...) 상념을 첫단계부터 차차로 경험해 나가면서 의식적 마음이 생각의 근원 존재의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곧 상념-구체적인 형체-내면-그 이상 지각이 안되는 지점-마음의 눈으로 그 다음을 느껴가면-마음 안에 그 대상의 이미지가 생겨난다.-더 미세한 안쪽 상태를 경험-그 미세함의 끝을 느낀 다음-그것을 지나면 존재의 자리에 이른다.

    생각은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마음의 바다 깊은 속을 점차로 지나 표면으로 올라온다. 개인의 하나하나의 생각, , 행동에 우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대기 중에 진동의 파문으로 퍼져가는 말의 영향은 말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다. 퍼져가는 파동의 성질(좋고 나쁜)에 따라 정해진다. 마음이 개성을 잃고 우주적 마음이 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빛, 거룩한 신성의 나타남이다. 그것은 영원한 존재의 흐름이요. 기쁨과 순수, 창조성과 지성 또는 실존의 유동이다. 또한 생명은 통일이요. 절대 영원한 생명의 유일성 위에선 통일체이다. 생명은 신의 의식 안에서 하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빛을 투과하는 다양한 표현체이다. 생명은 본질에 있어 곧 존재이다. 생명은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의 바다이다. 생명은 연속적이고 균일한 한덩어리의 삶이다. 생명의 큰 바다에서 이는 개체 생명의 물결은 우주에 편만한 영원, 절대의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어진 채로 움직인다. 생명(우주 창조)의 목적은 기쁨의 확대(확장)이며 이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진화이다.

    과거 행위들의 결과에 현재의 의도(자신이 만듬)가 보태어진 것이 지금의 환경이다.

    받고 싶으면 주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당신이 남을 해쳤는데도 그가 가만히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나 물건 또는 환경 등 자연의 다른 사물들에 의해 반드시 응보가 온다. 당신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데도 당신의 주변에 무언가 잘못이 있다면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것은 과거의 어떤 행동의 결과인 것이다.

    악에 저항하지 마라. 악에 저항하려면 당신이 악의 자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사실상 살아있지 않은 사물은 우주 안에 없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은 파동이고 활동이며 가만히 있는 사물은 아무것도 없다. 베풀어야 받는다. 우리가 주면 보답이 주변의 여러 곳으로부터 온다. 우주 의식 차원에서야 사랑은 진실로 줄 수 있다.

    존재는 생각의 근원이다. 무엇을 느끼는 과정은 마음의 본성을 덮어서 가리는 과정이다. 이것을 대상물에 대한 존재의 동화라고 부른다. 마치 내가 바깥의 사물에 동화되어 본질을 잃는 모습과 같다. 이리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일이 느끼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본질인 존재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사람을 거듭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은 경험과 인상, 그리고 욕구의 쳇바퀴인 것이다. 존재의 가치를 모르는 마음은 경험과 인상, 욕구, 행동의 고리에 항상 매여있다. 마음 속에 존재를 확립하는 길이 존재의 기술을 완성시킨다. 어떠한 생각, 어떠한 느낌에 의해서도 존재가 가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 마음에서의 존재의 기술이다. 생각도 하나의 행동이다. 생각하는 과정은 생각이란 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기술;개체 생명이 우주 생명과 합치되는 과정

    카르마;좋고 나쁨을 구별하지 않는다. 단순히 행동이란 뜻이다.

    생각은 그 속성으로써 참자아를 잃게한다. 마음이 생각을 시작하면 벌써 차별의 무대로 나오는 것이며 생각이 마음의 본성을 덮어 가리는 것이다. 인간 의식의 완성은 삶의 절대적인 가치와 상대적인 가치가 하나로 합해지는 거룩한 의식, 곧 신의식에 도달할 때 이루어진다. 절대 존재의 환희 의식과 창조 세계의 다양한 기쁨들을 함께, 동시에 살아져야 한다. 이것이 우주 의식 안에서 삶이 완성된 모습이다. 우주 의식이란 절대 존재의 상태를 지니면서 상대적 세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의식을 말한다. 이 우주 의식의 상태는 상대 세계의 모든 활동을 하면서도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마음이 영원한 자유를 사는 경지이다. 경험의 구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때 우리는 우주 의식 안에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경지는 깨어 있거나 꿈꾸거나 잠자거나 상대적 삶의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영원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풍경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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