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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34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3. 8. 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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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34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s7nJLFppoqQ

     

    538.

    대승불교의 열반;1.불완전한 유여의 열반, 有餘依 2.완전한 무여의 열반,  3.절대적인 무주처 열반 無住處

    열반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그것은 환영과 무명과 덧없는 현상계를 초월한 상태이다. 불성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깨달아지며 그것은 불성이 태초부터 마음의 자연스런 본성으로 존재함을 깨닫는 것이다. 불성은 천부적으로 자기 내부에 존재하면서 무명이 사라질 때 빛을 발하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삼계를 두루 찾는다해도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는(마음속 아닌 다른 곳에서는) 불성(붓다)를 발견할 수(이룰 수) 없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찾는다면 그는 정말로 바보다.

    외부 세계의 이름과 형태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은 미묘한 마음이 뇌와 감각을 통해 밖으로 그 자신을 투사할 때이다. 마음이 그 근원인 흐리다야(Hridaya-)에 머물 때 이름과 형태는 사라진다. 마음의 외향성이 억제되고 마음의 주의력이 그 자체로만 향하게 되면 마음은 흐리다야 속에 안주하며 그 상태는 주관적 시각, 또는 內向見이라 불린다. 마음이 흐리다야에서 나와 외부 세계를 창조하느라 바쁠 때 그 상태는 객관적 시각, 또는 外向見이라 부를 수 있다. 마음이 흐리다야 속에 머물 때 에고는 라는 사념이 차츰 사라지고 眞我 Atman (대승불교의 한마음)가 남는다. ‘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 이 상태는 참다운 시각, 또는 自色見과 정적이라 불린다. 이 정적은 베단타 철학에서는 지혜의 시각, 또는 知見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정적은 단지 마음이 범아일여에 머무는 상태일 따름이다.

    사후의 지각자가 보는 모든 신이나 영적인 존재들이 실제의 개별화된 존재가 아니며 인간적이거나 비인간적 존재 및 객관적 형상이 아니다. 마음을 제외한 아무것도 상상될 수 없다.(마음이 아니고는 상상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이므로 마음 이외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객관적 물체와 현상계, 윤회와 열반들도 본질적으로 마음이다. 그들은 마음을 떠나서는 상상될 수 없으며 상관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으로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나 사물을 설명하는 모든 어휘는 지적 개념의 상징들일 뿐이다. 상황이나 사물들 그 자체도 마음의 구체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환영이다.

    우주는 위대한 건축가인 한마음의 사념이 창조한 것이다. 꿈꾸는 자가 꿈을 만들듯이 그 마음은 현상계를 만든다. 윤회계에서 지각되어 오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의 자궁속에 잉태되었던 것들이다. 고요한 바다(한마음)의 본성은 움직임이 없는(그래서 알기가 더 쉽다.) 물이다. 바람이나 지진같은 외부의 영향(사고작용)이 있을 때 바다는 자신의 본성을 잃으며, 거기에 움직임이 주어지고 표면에서 파도(사고 작용의 산물)가 일어난다. 사고 작용과 시각화와 지적 개념들이 요가를 통해 억제되어야 하는 것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다. 존재를 알려는 자가 존재하기를 멎어야 하듯이 진리를 알려는 자는 아는 자이기를 멎고 진리가 되어야 한다. 물은 비를 가르키며 이 물의 원천은 하늘이 아니라 바다이다. 마찬가지로 한마음의  속에는 다른 모든 이원성이 그렇듯이 그들도(, )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한마음은 바다와 마찬가지로 나뉠 수 없는 동질성을 갖기 때문이다.

    명상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사고 원리가 마음의 핵심이며 마음은 창조되지 않는다.

    ()은 마음속 아닌 어디에도 없고 마음 이외의 다른 명상 장소도 없다. 자기 자신의 마음은 공성의 투명한 빛이고 법신이며 특성이 없고 구름없는 하늘과 같다. 그것은 多數가 아니라 全知이다. 자기가 자신의 근원이며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 이 투명한 빛은 부모가 없는 지혜의 신생아이며, 창조되지 않는 자연의 지혜이며, 죽음도 모르며, 절대적 실재이며, 모든 존재에게 점유되지만 그것은 인지되지 않는다. 실재의 투명한 빛이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서 빛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찾는다. 참 상태를 들여다 보라. 거기에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와 자기 조명의 찬란한 빛이 있나니, 그처럼 빛나는 이것들은 보살의 마음이라 한다. 사물(대상)의 본래 상태를 알고(보고) 마음속의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윤회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자기 마음속의 붓다를 보지 못하는 한 열반은 가려진다. 마음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원초적 의식으로서의 그것이 자신의 장소에 머물게 함으로써 존재는 해방을 얻는다. 그렇게 하지 않은 잘못은 마음 그 자체의 무지에서가 아니라 진리를 알려고 애쓰지 않았던데서 비롯되나니 그대 자신의 자기 조명적이고 자기 발생적인 마음 안에서 찾으라. 모든 개념이 그로부터 생겨나 거기 존재하고 결국 그 속으로 사라진다. 한마음에서 방사하는 광휘는 그대 자신의 마음에서도 똑같이 방사되면서 마음을 해방한다. 한마음은 모든 것을 알고 비어 있으며, 순수하고 영원히 명료한 공이며, 하늘처럼 무특성이고 투명하게 빛나며 스스로 생겨나는 불멸의 지혜이며 그 자체가 진리이다. 눈에 보이는 우주의 모든 것 역시 한마음을 상징한다. 자기 마음속의 전체 의식을 앎으로써 그것이 하늘처럼 무특성임을 알게된다. 존재하는 것은 대양의 파도와(사고 작용의 산물) 같다. 마음은 자연 너머에 있으나 육체적 형태 속에서 체험되고 한마음의 인식은 모든 것을 해방시킨다. 지적인 작용을 파악하지 못하면 깨달음도 없다. 참깨가 기름의 원천이고 우유가 버터의 출처이지만 참깨를 압착하고 우유를 저어야 기름과 버터가 나오듯이 중생이 불성의 원천이지만 그들은 이것을 깨달아야만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대 안에서 그대 자신의 지혜를 찾으라. 그것은 넓고 깊다. 너 자신이 너의 등불임을 알라. 너 자신이 너의 안식처임을 알라. 너 자신 이외의(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안식처를 찾지 마라.

    생로병사의 바다를 건너는 다리는 없으니 지금이라도 그 바다를 건널 배를 건조하라. 육신의 유혹은 언제나 우리를 배반한다. 마음을 신성한 보배로, 인생의 가장 훌륭한 재산으로 알라. 그것만이 영속하는 보배이다. 결과를 기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 좋고 싫음은 새들이 공중을 날 때와 같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체험에 집착하지 마라. 그들은 항시 변화한다. 쾌락은 호수의 잔물결처럼 항시 덧없으니 찾지마라. 그것은 착각이다. 기억된 욕망들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니 약함을 보이지 마라. 집착할 대상이 없어지면 약함을 초월한다.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열등한 성향 감정, 사념들을 무조건 억제하지 말고 사고를 자연스레 흐르도록 놓아두라(허약하게 무너지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지 말고) 그로부터 수행자는 조금씩 심령적 내구력을 얻는다.

    진리는 오직 깨달음에 의해서만 알 수 있으며,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왜냐면 모든 언어는 윤회 체험으로부터 생겨난 윤회적 개념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현명한자는 먹을 것이 아니라 신앙만을 생각한다. 왜냐면 그의 생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라. 그때 신념은 활기를 되찾고 등잔의 심지를 다듬는다. 기쁨과 슬픔의 원인은 자기속에 있다.

    독과 해독제;탐욕과 자제, 분노와 사랑, 무지(나태)와 지혜(근면), 자만과 겸양, 질투와 무욕

    사라진 과거를 슬퍼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라. 현명한 사람은 오직 현재를 생각한다. 구원은 어떤 최고 신의 은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모든 것은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의 결과이다. 자신의 한계와 속박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알 때 인간은 저절로 완전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세속적인 눈은 세속적인 것만 본다. 초세속적인 것은 오직 내관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영원으로 통하는 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이다. 삶은 하나의 게임이니, 맘껏 즐겨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근심하지 말라. 세상은 메아리의 세계이다. 우리가 분노하면 세상도 분노로 되받아친다. 우리가 사랑을 주면 세상도 사랑으로 화답한다. 사회와 자연이 충돌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항상 자연의 편에 서라.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

    삶은 불안정하다. 이것은 삶이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삶이 안정적이라함은, 곧 그대가 그 속에 구속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삶을 즐길 수는 있지만 조종(통제)할 수는 없다. 삶은 논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일단 논리가 그대를 장악하게 되면, 그것이 많은 것들을 죽인다. 그대가 삶을 즐기게 되면, 공포 또한 그대를 떠날 것이다.

    깨달음은 때가 되면 스스로 찾아온다. 단지 그대가 할 일은 깨달음이 오도록 길을 트는 것 뿐이다. 소음을 없애는 방법은 그것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젠가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더 이상 갈구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일어나는 그대로 즐기는 날이 오면, 그날로 그대는 성숙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삶에는 궁극적인 목표가 없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의 모습으로 영원하다.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다. 증진할 것이 없다.

    인생은 하나의 과정으로써 결말이 없다. 어리석은 자만이 결론을 내린다. 두려움 때문에 항상 지식에 매달린다. 그리고 일단 지식에 집착하는 순간, 그는 죽은 사람이 된다.

     

    풍경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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