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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31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3. 7. 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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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31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TOuv0wgV_MQ

     

    535.

    육법의 요가;지식의 길, 유형의 도, 쿤달리니 요가

    1.생명열 요가(툼모 Tummo); 요가에 의해 발생시키는 특수한 身熱을 의미, 자연계의 무한한 프라나()를 채취하여 체내에 축적한 뒤 그것을 사용해 정액을 신비한 불의 에너지로 바꾸는 법을 가르킨다. 이로 인해서 체내에 심신 상관성의 열이 생겨나서 정신신경 계통의 통로(척추와 좌우)를 타고 정신신경 에너지(프라나)를 흐르게 된다. 초심자는 자연계와 지구의 기운이 가장 평화로운 해뜨기 전의 시각에 요가를 실천해야 한다.

    일종의 하타요가(건강요가)

    심령의(생명의, 비밀의) (온기)란 뜻. 육체가 비어 있음을 관상하기, 보호막(자세, 호흡, 집중 또는 심령적 방어벽)을 관상하기, 심령신경 통로를 정화하기(수련하기), 심령신경 중추에 은혜 파동을 수여하기(받기)

    5대원소;파랑(에테르, 의식, 무저항성), 초록(공기, 투명성과 운동성, 생명력), 빨강(, 열기, 뜨거움), 하양(, 유동성, 피와 체액), 노랑(, 고체성, 뼈와 살)

    마음의 두 문;의식과 기억

    지복감의 정도;환희(보통)의 지복, 초월적(황홀한) 지복, 경이로운(최상의) 지복, 동시발생의 지복

    3가지 지혜:(3가지 의식상태) 空性(지혜), 極空(방편), 大空(지혜와 방편이 평등 화합한 경지) 이것이 다시 일체 공의(모든 구성 요소의 허망한 본성을 꿰뚫는 투시력으로 정광명을 깨닫는다.) 광명으로 나아간다.

    2.幻身의 요가;규뤼, 환영의 몸(몸의 환영성)이란 뜻으로 자신의 육체와 모든 구성 요소가 본질적으로 덧없고 허망함을 깨닫는다. 마야 사상으로 온 세상과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창조물들이 모두 허상이고 오직 깨달음만이 실재이다. 마야는 자연계(위대한 어머니 이시 Isis)에 드리워져 실재를 덮어 가리는 마법의 장막이다. 이 장막을 찢고 자각과 자기 초극을 달성하여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요가 뿐이다. 궁극적 진리는 착각 속에서 항시 오류를 낳지만 요가의 달인은 정신의 연금술사와 같이 무명이라는 광재로부터 올바른 지식의 황금을 추출한다. 그리하여 자연을 바르게 알고 현상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원성과 다양성을 사실로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적 구조물로서의 매력을 지닌 현상계 우주이다.

    밀봉된 항아리 속의 공기(소우주-아트만)는 그 주변의 공기(대우주-브라만)와 다르지 않다. 마야의 그릇이 깨어질 때 소우주적인 마음은 항시 그 자신이었고 항시 그 자신일 것인 대우주적인 마음이 된다.

    모든 세계와 모든 우주는 마음의 산물이며 그들은 꿈의 질료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들의 비실체성이 곧 마야이다. 외관을 지닌 사물들은 마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에 눈떠 존재의 신기루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럿은 하나를 알지 못한다.

    마야 사상은 여럿으로 오인되는 하나에 관한 가르침. 모든 소우주들의 총화로서 대우주에 관한 가르침의 철학적 기반이다.

    환신은 자신을 포함한 전우주와 마찬가지로 단지 하나의 허상이고 자연계의 모든 허망한 사물과 같은 일시적 사념 형태일 뿐이다. 환신은 자신을 낳은 지구나 우주와 마찬가지로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 존재이다. 인간의 환신은 마법적 환영과 비슷한 어떤 형체이며, 육화한 응신을 나타내는 티벳어의 툴쿠 tulku와 같은 의미에서 마음의 방사물일 뿐이다. 그것은 생존 의지가 낳은 환상이며, 욕망의 결과이며, 마음의 윤회적 건조물일 뿐이다.

    불순한 환신(육체)을 마야(환영, 규마)로 인식하기, 순수한 환신(尊像)을 마야로 인식하기, 모든 것을 마야로 인식하기

    하늘의 궁전은 자기 안에 있다.

    三界;欲界, 色界, 無色界

    자연계의 현상들(오감)은 최종적 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겉으로 드러난(현상적) 진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 보이는 이원성의 법칙은 궁극적이지 못한 외관상의 진실이다. 이원성은 모든 것의 근저를 이루는 통일성의 양 관점일 뿐임을 아는 것이 궁극적 진실이다. 모든 현상적 자태는 허상이라고 하는 깨달음이 정광명의 상태(진실을 명료히 깨닫는 시각적 상황)로 깊어진다.

    3.夢幻의 요가;미람 Rmi-lam 꿈이란 뜻으로 꿈속의 체험이 비현실이듯이 깨어있을 때의 모든 체험도 비실재임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꿈꿀 때의 인식은 내부적이고 깨어있을 때의 의식은 외부적이라는 점만 다를 뿐 두 상태는 똑같이 객관적 감각적 인식 법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만이 그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몽환 상태와 각성 상태의 모든 것이 사실은 환영이다.

    브라마는 잠들고 깨어난다. 그가 잠잘 때 그의 몸은 우주적 창조이고, 그가 깨어날 때 그의 꿈은 끝난다. 그의 꿈은 윤회이고, 그의 깨어남은 열반이다. 창조된 것과 창조되지 않은 것인 윤회와 열반은 온 마음에서 유래하며 이 온 마음의 궁극적 포용 속에서 둘은 하나이다.

    가능한 만큼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면 우주의 모습이 창조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 경계에 이를 것이다. 그 모습의 창조는 화가가 캔버스 밖에 있듯이 그 모습을 넘어선 곳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시공의 차원에서 우주 창조를 논하는 것이 그림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화가와 그의 그림 그리는 행위를 발견하려는 것과 같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주를 창조주의 마음속 한 사념으로 간주하는 그런 철학체계들에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해, 변환, 몽환상태를 마야로 인식하기, 몽환 상태의 본질에 대한 명상

    (깨어있는 ) 동안의 모든 상황에서, 모든 것이 꿈의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형상과 장소를 지니는 일체 유정과 마찬가지로 신들의 천국과 신들 그 자체 역시 꿈을 이루는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꿈속의 다양한 형상과 내용들이 단지 마음의 작용일 뿐이며, 깨어있을 때 인식하는 모든 것도 꿈속에 반영된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실재적이며 두 상태가 모두 윤회적임을 안다. 마지막 단계는 윤회계의 그 어떤 것도 꿈의 비현실과 다르지 않으며 다를수도 없다고 하는 위대한 깨달음이다. 수많은 물리적 관점(오감)을 지닌 물질이나 형태를 지닌 그 안의 모든 현상은 단지 지고한 꿈의 내용물일 뿐이다. 대우주의 소우주적 관점이 철저히 밝혀지고, 이슬방울은 빛나는 대양으로, 열반의 지복과 합일로, 한마음(모든 소유물을 소유하고 모든 앎을 알며 모든 창조물을 창조한 실재 그 자체)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신과 인간이 실제로 하나다. 왜냐하면 본질 속에서 그 둘은 공통되기 때문이다. 그 둘이 분리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양자가 일시적으로 그들 나름의 가공적 형상을 취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지 못한 마음은 자연계의 현상을 자기 자신과 다른 어떤 것으로 바라본다. 평상심의 근원인 인간의 무의식은 거울에 비친 몸이나 꿈 속에서 보는 몸과 마찬가지로 우주심의 한줄기 광선이다. 우주심 속에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4.淨光明의 요가;외세, 투명한 빛의 뜻으로 실재를 체험할 때의 시각효과이다. 원초적 광명은 제약이 없는 순수한 열반의식을, 無上正等覺者의 초월적이고 초세속적인 의식을 상징한다. 모든 윤회적 어둠을 초월한 法身의 비밀스런 빛이다. 그것을 앎은 모든 것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제약없이 모든 곳에 스며드는 지성이며, 윤회적 관점에서 알 수 없는 무형의 공이다. 모든 인간이 죽음의 순간에 잠시 경험하는 이 빛을 요가의 달인은 최고의 삼매 속에서 자유로이 향유하고 붓다들은 끊임없이 누린다. 육화해 있는 동안 이 빛과 의식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성불했다는 것이다.

    편만 遍滿;카르마, 비라 Vira;영웅, 다키니 Dakini; 요정

    5.中有의 요가;바르도 Bar-do 중간상태의 뜻으로 죽음과 재탄생 사이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르킨다. 이 요가는 사후의 상태가 꿈의 상태(살아있는 상태라 불리는 똑같이 비실재적인 상태로 이어지면서 거기 의존하는)의 연속이라고 본다.

    마야를 정복한 사람은 삶과 죽음의 지배자이고 어둠속의 빛이며 중생의 인도자이고 노예 해방자이다.

    망자가 보는 허깨비 같은 장면들은 모두가 환영이며, 죽음의 과정에 반응하면서 자극 받은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사념체들의 환각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정신적 충동들이 사후의 꿈 속에서 구체적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바르도에서 법신(또는 진리의 신성한 몸)의 정광명 상태를 깨닫기, 바르도에서 보신(또는 완전한 자질의 신성한 몸) 상태를 깨닫기, 바르도에서(또는 툴쿠로 태어나면서) 응신(의 신성한 몸) 상태를 깨닫기

    황도 黃道;태양의 궤도, 백도 白道;달의 궤도

    죽음의 왕이나 신이나 악귀와 같은 것들은 자신의 환각에서 생겨난 것이며, 자기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 이하의 존재로 환생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런 얘기들은 반드시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상징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라도 요가를 통해 사실로 입증된 것이 아니면 받아 들이지 말라.

     

    풍경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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