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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15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3. 3. 2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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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15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SAo2Pjx9x78

     

    519.

    맛있으려면 적당한 공복이 필요하다. 기분 좋다는 단독의 실체는 없다. 기분 나쁨 없이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없다.

    만물 모두에 공통되는 유일한 법칙. 그것은 활동을 정지하지 않는 것.

    의의, 의미, 가치관, 희망, 동기, 목적, 철학, 종교, 사회, 과학, 예술... 그런 것은 활동의 촉진을 위해 덧 붙여진 구실에 불과하며 그 총칭은 움직임이다. 우주는 움직이기 위해, 즉 만물에게 멈추지 말라는 명령을 실행시키기위해, 개개의 생물과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그 활동이 감소하면 고통신호로 압박하는 수단을 쓴다. 그 근거와 동기는 그거 붕괴하여 가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다.

    모든 쾌락은 고통으로부터 생겨난다.

    우주의 먹거리;생물에게서 나오는 생존의지’, ‘소멸에 대한 공포’, ‘삶에의 집착 즉 인류는 상위존재에 있어서는 그저 식용생물이다. 또 우주라는 기계의 생물 연료이고 누군가의 식용 가축이며 우주라는 밭에 주는 비료이고 우주의 의료 연구용 실험 동물이며 우주가 앞으로도 그저 목적없이 살아남기 위한 식량이다.

    모든 의술이 애당초 이 세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근원적 원인의 하나였다. 아무 것도 없다. 탄산 가스와 대소변 뿐 60년 이나 살면서 은혜를 입은 자연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생물은 우리 인류밖에 없다. 의학이 육체의 생명을 지나치게 연장해버린 것에 대하여 종교는 관념의 생명을 연장해 버렸다. 그리하여 상상이나 기대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자유란 결국 완전히 아무 것도 없는 허무에 동화하여, 지성이나 사고 속에 짜 넣어진, 인류를 제작 관리하고 있는 그들의 프로그램 시스템을 전부 무효화 하는 것이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 신들은 인류의 설계자인 그들에게 관리되고 있는 상태이다.

    스스로의 허무에 귀착한 자만이 그들의 조작으로부터 분리된다.

    당신의 분노란 죽음의 미약한 경험이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싸움만 한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것은 그것을 버리기이다.

    주장하지 말라

    사고 보존욕, 사고가 부정되는 혐오감, 무릇 심리적 고통은 사고가 죽지 못하는 데에 있다. 하잘 것 없는 연애관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당신들은 끌어 안고 다닌다. 끊임없이 당신은 자기가 짊어진 무거운 짐에 짓눌려 버린다. 누구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괴로운 것은 언제나 당신의 사고에 대립하는 다른 사고와의 투쟁이다.-마음의 괴로움, 고통, 공포, 물질의 무저항성이 있었기에 과학은 발달할 수 있었다. 우리들보다 상위의 존재는 우리들의 감정, 기억, 사고, 지각, 의식이라는 것들 자체를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먹이)로 삼는다. 우리들은 싸우고 괴로워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전쟁, 논쟁...)

    절대적인 지배자인 그자는 왜 먹이를 필요로 하는가? 단 한 가지 이유는 우주의 절대자는 존재 유지병’, ‘활동병이라는 신경증을 가진 거대한 병자이기 때문이다. 그 자는 어째서 그처럼 비열하게 존재를 유지시키려는 걸까? 실은 그자 가 무서운 것이다. 당신이 누구도 되지 않도록 침착하라. 개성 그 자체가 충돌을 일으키진 않는다. 개성의 주장이라는 것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뇌로부터의 탈출 뿐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가지면 이미 자유로울 수 없다. 믿는 것이 있다면 사람은 꼭 언젠가 그것을 의심할 때가 온다. 사고가 만드는 그 어떤 개념도 신뢰도 희망도 결코 영구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는 어떤 효력도 가질 수 없다. 당신의 고뇌의 원인은 자아가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고뇌를 소멸시키는 핵이다. 고뇌는 모두 이 어둠과 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에 대한 공포, 절대의 부재, 아무 것도 없는 것, 완전한 무, 죽음을 당신이 의식하고 두려워 하는 데서 유래하고 있다. 당신의 생명은 그 무로부터 계속 도망가도록 설계된 것이다. 무는 생명에 있어서 죽음(소멸)이다. 본성, 실제 본질에 있어서는 소멸, 죽음이나 무나 어둠은 바로 자기실현 그 자체로의 길이다.

    명상이란 전면적으로 죽는 습관이며, 죽음 그 자체로서 태어나는 것이다. 당신의 사고가 그것(슬로건, 화두...) 理想으로 삼는 순간, 무거운 짐이 된다. 명상가의 경우 명상이 빠지고, 선방에 있는 이는 선이 빠진다. 자기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빠져 나간다. 변용하고 싶다. 깨닫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빠진다.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즐거움이 빠지게 된다.

    마법사로부터 마술을 빼앗으면 무엇이 남을까? 그렇게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자고 있을 때 그들은 자기 상실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설사가 나서 화장실에 뛰어들 때 수행 승려로서의 그들에게 세계정세, 세기말의 문제는 어디로 날아가 버리는 것일까? 그들은 화장실에서 무슨 존재일까? 그들은 화장실에서 그냥 사람이다. 그러나 실로 광명이란 거기에 있다.

    쓸데없는 사고, 철학, 비전 등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것을 시시한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하지 말 것. 은 그냥 오직 사는 것이다.

    죽을 때 당신의 현실은 혼자서 죽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가 당신이 직면한 현실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일은 꿈이 되고 말 것이다.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의식 속에 비친 세계일 뿐. 잠이 들 때는 조금 전까지의 일이 꿈이 되고 만다. 즉 이번에는 꿈의 세계가 모든 현실이다.

    어떤 관념도 가치관도 갖고 다니지 말라. 죽을 때 아무 것도 갖고 갈 수 없다.-절대적 침묵

    헤맨다면 이미 당신은 좋은지 나쁜지를 분별하고 무심하지 않다는 것이다.-자신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행복이란 행복이라고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만 불행의 不在.

    깨달음과 이해를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벌써 안심의 순간에 있으면서 그런 것을 얻으려고 하는 당신이 큰 문제이다.

    침묵은 언제나 당신을 변화 시키는 힘이다. 침묵은 어두운 것이 아니다. 다만 조용할 뿐. 無視가 아니다. 다만 있음 . 즉 통과할 뿐이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 주의깊게 상황을 본다. 되고자 하지 않아도 되어져 있다.’

    애초 자연 만물의 반대쪽 면은 죽음에 의해 성립되어 있다. 당신은 이론이나 지식 종교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고 있다.

    최저라는 것은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최저가 되라. 그리하면 당신은 만물과 사람이 모두 붓다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누구나 또는 존재하는 것 전부가 이게 그러하기 때문에=중생이 이미 부처다.=눈에 보이는 모든 이가 깨닫고 만다.=정적, 침묵, 무지, 고통의 부재 그 곳에 단지 있는 당신의 존재성(의식성)을 즐겨야만 한다.

    누구건 어느 것에 의해건 꼭대기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우주에서는 가혹할 정도의 투명성 무심, 단순함이 요구된다.

    우주(자연)는 인간을 중심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생사 그것과의 계약 파기이다. 解約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

    탐구의 원인은 불만(현 상황을 싫어함) 이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원대립이 모든 불행의 원인 중의 하나다. 처음부터 두 개로 나누고 나서 그것을 통일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씨앗은 전부 당신 안에 있다.

    존재하는 한, 만물은 틀을 갖는다. 최종적으로 우주라는 한 개체와 그것을 둘러싼 허무와의 틀, 경계선이 존재한다. 처음부터 일원적인 당신의 본성이 육체 존재로 압축(조금이라도 통에 구멍이 뚫리면 곧 해방된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되었다. 육체가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여기서 우리들은 자신의 원래 상태와 같은 해방을 원한다. 이것이 생물 활동의 모든 것이다.

    고뇌의 원인은 애초에 무리한 것을 하려는 짓에 있다. 무리한 일인줄 모르고 마치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방황이다.

    자아의 확립도, 무아의 확립도 무리다. 우리들은 그 전체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여기저기, 일일이 탐색해서는 당신은 피로해지기만 할 뿐, 원래부터 광대한 의식이 부분적인 육체에 압축된 이 시점에서 이미 무리해진 것이므로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애초부터 우리들의 의식이 너무나도 광대하기에 제한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다.

     

    경기도의 어느 유원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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