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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00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11. 25.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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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00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pLk4ghjQuZM

     

    504.

    열반이 궁극적으로 적멸하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끝내 적멸에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행이 없음 無行을 보면서도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나 없음 無我을 보면서도 중생에 대한 대비심을 버리지 말고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 헛되다(실 없다. 독립적이 아니다.)는 것을 보면서도 닦아놓은 지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늘 원만한 사유에 안주, 늘 부지런히 자연지 구하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무위에도 머물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藥王如來, 應正等覺, 明行提, 善逝, 世間解, 無上師, 調御丈夫, 天人師, , 世尊=如來十號, 별칭

    神特伽羅;개체(), 개인,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주체=

     (지혜 , 法性)에 의지하지 문자 (알음알이 , 보특가라의 소견)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사물의 이치를 인식하여 깨닫고,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는 뜻

    薄伽梵;세존

    는 모든 이야기가 쓰여지는 빈 노트이다. 우리의 지각은 모든 것을 왜곡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

    무는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무는 절대 직접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는 형체도 없고, 경계도 없는 무한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무가 산산히 흩어질 때 모든 것이 탄생한다.

    역사가, 작가, 철학자, 화가들도 언제나 부재에서 정보를 얻는다.

    언어가 의미를 가리는 베일과 같다. 배후에 있는 사물들()을 얻기 위해(언어를) 찢어버려야 한다.

    기법은 없애는 것. 즉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장인들은 모두 자신의 재주를 연마하기 위해 거기에 없는 것들을 찾는다.

    없다는 것은 있다는 것만큼 중요하다. 산수에서 1의 중요성은 그 뒤에 0이 몇 개 나오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없음은 유무를 뜻하는 이중성을 가진다.(강력한 힘과 호소력이다.) 단순한 결핍이면서 풍부한 함축과 가능성을 가진 여백이다.

    구멍 또한 양면적이다.(이중성)

    우주의 경계나 시간의 시작과 끝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

    물고기는 물의 존재를 모른다. 물은 모든 곳에 있지만 형태가 없으므로 전혀 감지할 수 없다.

    무는 접근하면 사라진다. 찾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해도, (진공)는 여전히 남는다. (진공)는 형식이자 내용이다. 진공이란 더 이상 아무것도 제거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고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 차이도 만들지 않는 것을 . 우리는 무를 변화 시킬 수 없다. 무는 그 불변성으로 인해 우주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재료가 된다. 무가 변하면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무가 변했을 때, 우주가 탄생했다.

    유는 무가 변한 것이다.

    빈 공간이 없으면 사물들이 움직일 수 없다.

    침묵이 없으면 말도 없고 음악도 없다.

    무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한 유가 없다면 우리는 무를 알 수도 없다. 유가 없다면 우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을 단단하고 형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자는 대부분이 빈 공간이다. 게다가 그 빈 공간을 온갖 입자와 에너지 마당을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생산자이다.

    도 우연과 필연에 따라 진화한다.

    그렇게 작은 규모()에서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무는 시간에 따라 점점 더 늘어난다. 물질들 사이의 공간에서 무가 끊임없이 창조되기 때문에 우주가 팽창한다.

    이 무(진공)는 광대한 우주를 멀리멀리 밀어낼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빛과 중력과 원자는 이 세계의 구성요소이다.

    우리의 눈과 뇌가 보는 모든 것들은 정신의 눈이 만들어 낸, 추상적인 개념들이다. 우리는 눈으로 들어온 뒤죽박죽된 정보들을 재조립하여 의미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만들어진 뇌 속의 이미지를 외부세계에 투영한다. 마찬가지로 소리는 머릿속에서 들리지만, 우리는 그것을 외부의 원인 탓으로 돌린다. 이런 맥락에서 무는 원, 중력, 원자, 지각, 의지와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할 뿐이다. 어떤 것이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무는 우주를 탄생 시켰다.

    무를 유로 본다.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빈 공간이 많다는 뜻이다.

    공간이 모든 물질을 이루는 본질적인 성분이다. 물질적 대상이란 공간의 영역 속에 물질의 형태가 조각된 것이다. 모든 원소들이 공간의 본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 속에 다른 것들이 들어갈 때마다 성질이 바뀌고 또 바뀐다.

    공간에는 중심이 없기 때문에 가장자리도 없어야 하며, 따라서 끝도 없다.

    가계도에 나무가 없듯이, 세계에는 공간이 없다.

    암브로시아 ambrosia;신들의 음식

    빛 입자인 빛알은 그들의 모든 운동을 공간방향으로 이동하는데 소모한다. 따라서 빛알은 시간방향으로 여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빛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대폭발 때 나타난 빛알은 오늘날까지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빛의 속도로 달릴 때는 시간이 경과하지 않는다.

    유와 무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무에서 유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이유는 단순히 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무가 하는 일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무가 원래부터 많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원자는 99.99% 이상이 빈 공간이지만 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사실 빈 공간을 채우는 힘의 기하학적 구조를 물질이라고 말한다. 입자보다 입자들 사이의 공간이 중요해졌다.

    물질이 아니라 힘이 세계의 진정한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곳에 충만해 있는 것은 에테르가 아니라 힘이다. 물질의 점(원자)들은 그 중심에서 퍼져나와 우주 전체를 엮어짜는 수많은 力線들의 교차점일 뿐이다.

    입자와 빈 공간에서 마당으로 실재 개념이 변화. 마당 개념은 무와 유의 차이를 영구히 없애버렸다.

    물질은 단순히 마당이 집중된 곳일 뿐이다. 물질 입자가 움직인다는 것은 마당이 뭉친 부분이 이동하는 것이다. 마당 자체는 이동하지 않으면서 뭉친 곳의 위치만 바뀔 수 있다. 입자는 사람보다 는 소문과 더 닮았다.

    물질 덩어리는 공간을 전혀 점유하지 않는 마당이 모습을 드러낸 것 뿐이다. 입자 자체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다만 마당이 특별한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아, 마당은 모든 곳에서 똑같다.

    마당은 본질적인 재료이며, 원료 중의 원료이다. 마당은 물리적 실재이다. 마당은 공간을 차지한다. 마당은 에너지를 가진다. 이제 진공은 물질이 점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영역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에너지와 물질은 같다. E=mc²

    물질은 에너지가 많이 집중된 것이고, 마당은 에너지가 조금 집중된 것이다. 물질과 마당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다를 뿐이다. 물질과 마당이 다르다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다. 마당은 물질과 빈 공간, 유와 무 두 가지 형태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중간상태로,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우주 전체가 마당일 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물질들은 모두 각각 특유한 마당의 요동이며, 각각의 젤리가 내는 특유한 맛이다.

    흔드는 것이 없으면 마당은 진행하지 않는다. 마당이 가장 조용하게 있는 상태가 곧 진공이다. 마당은 그 어떤 것들보다 더 무에 가깝다.

    힘은 작용하고 물질은 작용을 받는다. 우리는 벽(물질마당)을 지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힘마당(전자기 마당, 중력 마당)을 쉽게 헤집고 돌아 다닌다. 그것은 힘 마당과 물질 마당의 교란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힘 마당의 교란은 서로 겹칠 수 있지만 물질 마당의 교란들은 서로 겹치는 법이 없다. 그러나 다르게 보일 뿐, 가면을 벗으면 그들은 똑같다. 물질과 힘은 (에너지와 물질처럼) 배후에서는 같은 종류이다. 힘과 물질의 구분은 낡고 신화적인 것이다. 결국 이 구분들은 무의미하다. 힘을 운반하는 것과 물질을 구성하는 것의 구분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결국 어떤 종류의 교란을 힘 운반자라고 하고 다른 종류의 교란을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와 비존재, 즉 유와 무의 본질에 전혀 가깝지 않다. 유일하게 유와 무를 구별하는 것은 에너지이다. 마당이 에너지를 갖지 않으면, 그것은 진짜 무이다.

     

    풍경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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