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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73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5. 1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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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73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JF4Pk9RSXXU

     

    479.

    실재는 에고의식과 에고를 덮은 육체의 상태를 목격한다. 또한 의식의 모든 상태를 알고 있다. 그것은 정신과 그 기능의 존재와 부재를 의식한다. 그것은 당신의 진정한 자아이다. 그 실재는 우주에 충만하다. 그것만이 밝게 빛난다. 우주는 그것이 반사한 빛으로 빛나게 된다. 그것의 본성은 영원한 정신이다. 옛적부터 항상 존재한 자아이며 그것은 항상 똑같다. 그것은 정신 그 자체이다.

    절대 주체성=절대 목격자=정신=비이원론적 의식=진리의 세상=다르마다투=그것은 사고될 수(보여질 수, 알려질 수)없는 것이다. 그것이 생각하고(보고 있기, 알기를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이 다른 사물을 태울 수 있지만 자신을 태울 수 없듯이 말이다.=그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의식=無心=칼이 그 자체를 자를수 없듯이 정신은 그 자체를 볼 수 없다.

    세상이란 의심할 여지없이 그 자체이다.(그 자체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객체로 보려는 그 어떤 시도도... 그 자신을 다르게 만들고 결국 그 자체와 모순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원론적 환상의 원천은 객관화(개념화)의 과정, 주체를 통해서 실재를 객체로 알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객체 안에는 절대로 어떤 실재도 없다. 오직 실재의 상징만이 있을 뿐이다.

    개념화가 발생할 때 무지와 환영이 발생한다. 주체와 객체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때 개념화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더 이상 개념화의 보고서에 현혹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한 마리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천마리의 개가 그것을 실재라고 착각한다.

    내 마음 속=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가장 순수한 본질=우주 전체의 자아=그것은 실재이다.=아트만=그것은 당신이다.=실재의 자궁=여래장=주인의 위치=君子=차별없는 참 사람 無位眞人=절대 인식자=-인산 al-insan=-카밀 al-kamil=프네우마 pneuma=루아크아도나이 ruarch adonai=정신=아트만=프루샤 prusha=아담의 원형 Adam-kadmon=성스러운 인간=보편적인 인간=초인 superman=계급이 없는 사람=영원, 무한손님, 채색된 베일, 역겨운 가면, 에고, 개별적 인간, 분리되고 고립된 자아

    무엇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오류에 빠지고 만다.=성서는 모두 헛되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무한함은 반대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경계도 없다. 끝없는 무한은 우주의 모든 지점에 존재하고 따라서 무한대까지 우주의 모든 지점은 절대적으로 여기이다.

    거울과 거울 사이의 반영물들은 거울 자체는 이런 반영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들과 분리되어 있지도 않다. 유한과 무한 사이에는 장애가 없다. 유한과 무한을 반대 개념으로 보는 입장은 무한을 유한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실재를 하나의 존재 옆에 또 다른 존재로 만든다.

    佛性의 본질은 완벽한 전체이다. 거기에는 넘침이나 모자람이 없다... 불성은 존재의 유한한 영역에 고루 미친다. 그러면서도 모든 곳에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수많은 현상들 각각은 모두 예외없이 절대자이다.

    내 자신을 잡으려하면 항상 인식을 잡게 된다. 오직 인식만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주체와 객체 사이 공간이 절대 주체성 안에는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명이다.

    보는 자는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관념은 마음에(생각) 있다. (절대주체성)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보는 자는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

    당신은 당신이 관찰하는 것이다. , 객체 사이 공간, 분열은 환영이다. 공간이 없는 그것이 무한한 것이고 무한한 것이어야만 한다.

    영원과 시간과의 관계는 무한함과 공간과의 관계와 같다. 무한함이 공간의 모든 지점에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영원함은 시간의 모든 지점에 완벽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영원함이란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시간은 절대적으로 현재 now이다. 무한함에서 모든 공간이 여기 here인 것처럼 말이다. 모든 시간이 현재이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는 착각이고, 유일한 실재는 현재의 실재이다.

    모든 시간은 현재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사는 사람은 과거도 미래도 알지 못하고 오직 영원함만을 알고있다.

    영원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바로 지금-순간 안에 동시에 포함된다. 모든 일시적인 연속물은 하나의 동일한 영원한 지금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따라서 과거나 미래 따위는 없다.

    실재는 영원하다는 보편적인 범위의 철학적 일치.

    불교의 목표는 단지 영원한 현재를 깨닫는 것

    당신은 오로지 시간은 진정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실재란 한순간 刹那 ksana 안에 존재하는 수십억년  kalpas 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의 거처

    정신이 영원함을 깨닫는 것은 최종적인 깨달음. 내일을 생각하지 마라라. 시간으로 정신을 파괴할 수 없다. 즉 정신은 항상 지금이다. 정신에게는 이전이나 이후란 존재하지 않는다. 끝이없는 현재만이 유일하다. 지금은 모든 시간이 존재하는 순간이다.

    우주란 물체와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다. 공간과 물체는 하나이다. 시간과 물체도 하나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 또한 하나이다. 그리고 공간, 시간, 물체는 상호 의존적이고 분리할 수 없다. 만일 이전과 이후가 하나이고 동일한 지금이라면, 만년전에 일어났던 일은 오늘 일어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 이전 또는 이후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어떤 것 안에 존재할 것이고, 우주는 기장 한 알 속에 있다. 기장 한 알과 우주는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는 그 낱알 에 있고, 동시에 그 낟알은 우주 안에 있다. 진짜세계는 동시에 그것의 존재 전체를 가지고 그것은 영원의 본질이다.’

    생각은 연속적이고 계속적이고 1차원적이다. 반면 진정한 세계는 다차원적이고 비연속적이고, 무한하게 풍부하고 다양한 동시발생적 패턴이다. 사물은 단지 생각의 산물이지 우주를 구성하는 실재의 존재가 아니다. 사물이란 선택적인 관심의 한정된 조각에 불과하다.

    공이란 특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음매가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연속적인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연을 습관적으로 이런 선형의 연속적이고 임시적인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망치에게 세계전체는 하나의 못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의 산물이란 사실이다.(과거미래, 원인결과, ) 그러나 자연은 일렬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연은 동시에 도처에서 한꺼번에 발생한다. 자연은 시간으로 차례로 진행되지 않는다. 자연은 동시 다발적인 존재 전체이고, 그것이 영원의 자연이다. 사실 연속이라는 개념의 우리의 기억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의 단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진정한 과거가 존재함에 틀림없다고 추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의 가장 생생한 감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과하여 미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상상한다. 따라서 시간이란 생각 전체는 우리가 기억력을 통해 실제 과거를 알 수 있다는 개념에 직접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우리는 절대로 직접적으로 진정한 과거를 알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오직 과거의 기억-사진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기억은 오로지 현재 안에 현재로서 존재할 뿐이다. 당신은 과거의 현재 자취를 보고 있다. (과거의 일에 말을 걸 수도 행동할 수도 없다.) 기억으로부터 당신은 과거 사건들이 있었음을 추론한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 과거 사건을 인식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오직 현재에서만 현재의 일부로서 과거를 안다. 절대로 어떤 실제 과거를 인식하지 않는다. 오로지 과거의 희미한 그림들만을 인식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은 오로지 현재 경험으로서만 존재한다.

    미래도 마찬가지 미래의 어떤 생각도 현재의 생각이다. 오직 현재 안에서 현재의 일부로 과거와 미래를 인지한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하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이다.

     

    서울의 어느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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