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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74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5. 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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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74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yKepgwWYlnA

     

    480.

    정신에 있어서 실로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없다. 오직 기억과 예상을 포함한 지금만이 존재한다. 과거와 미래는 오로지 현재의 생각일 뿐이다. 기억과 예상은 둘 다 현재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기억을 과거 지식과 혼동함으로써 우리는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시간 이라 불리는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시간이 생겨나게 된 방법이다.

    지금 현재의 순간은 모든 시간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그 자체는 초시간적이다. 그래서 이 초시간적인 현재는 그 자체가 영원이다. 동시에 존재 전체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원의 본성이다.

    만일 우리가 영원을 무한한 시간의 기간이 아닌 처음도 끝도 없는 초시간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영원한 삶은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것이 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시야에 한계를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끝이 없게 된다. 영원이란 끊임없는 시간의 기간이 아니라 초시간적이다. 무한함은 크기가 없고 공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함이란 바로 지금 온전히 그대로 존재하는 날짜나 기간이 없는 순간이다. 이 현재 순간 그 자체는 무한하고, 그 무한한 것이 영원하다. 따라서 영원한 삶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선견, 예측이라기 보다는 통찰력이라고 불러야한다. 이유는 신이 가장 높은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시간에서 시작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에서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은 초시간적이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즉 우주와 삼라만상은 지금 창조되고 있는 중이다.

    신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초시간성, 존재하지 않음, 절대적인 공으로부터 나온다. 신의 작품은 항상 절대적인 현재에서 만들어 진다. 신은 항상 세상을 지금 이 순간 창조하고 있다. 바로 시간의 창조물들에게만 창조는 일련의 사건, 또는 진화로 느껴진다.

    이원주의나 그것을 없애려는 시도는 잘못됐거나 틀렸다기 보다는 환영이며 무의미하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폐지될 수도 없다. 과거는 기억에 불과하고 미래는 예상에 불과하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행동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유일한 시간은 현재(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상을 포함하는)의 순간이다.

    이 순간은 모든 시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시간을 초월하거나 무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영원의 본질이다. 모든 시간이 지금이라고 말하든, 혹은 지금 외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든 그것은 같은 얘기다. 시간은 거대한 환영이고 이 시간을 초월한 순간은 영원 그 자체이다. 따라서 영원은 끊임없이 존재하는 시간이 아니라 진정하고, 퇴색하지 않고, 파괴할 수 없고 초시간적인 현재다. 현재는 끝이 없는 유일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객체로부터 분리된 주체인 독립된 자아를 실제로 발견할 수 있는가? 환영일 뿐이다. 당신이 어떤 소리를 들을 때, 당신 자신이 듣고 있다고 들을 수 있는가? 어떤 음식을 맛볼 때, 맛보는 사람을 맛볼 수 있는가? 냄새맡는 사람을 냄새맡을 수 있는가? 느끼는 사람을 느낄 수 있는가? 당신이 나무를 볼 때, 동시에 보는 사람을 볼 수 있는가? 당신이 지금 이 모든 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당신은 동시에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모두 객체와 동 떨어진 분리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아닌가? 항상 이 안에 너 자신이라 불리는 감각과 저기 바깥 객체라 불리는 감각은 하나이고 동일한 감각이다.

    관찰자가 동시에 관찰 대상이며, 항상 존재해왔던 비이원론적 의식의 상태를 우리는 정신이라 부른다. 그것만이 항상 사실이다. 우리가 깨닫든 말든 주체는 결코 객체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생생하게 다른 식으로 상상하더라도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는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절대 주체성 Absolute Subjectivity)

    이는 인식자가 그것을 인식하는 우주와 하나라는 가장 분명한 표시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적해왔듯, 비이원론적 이해는 그 자체가 정신이다. ‘여기 주체로서의 당신 자신과 저기 객체로서 우주는 사실 미묘한 환영이며, 우주는 절대로 보는 자와 보이는 것으로 분리되지 않고,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은 항상 현재의 보는 행동 안에서 통합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진짜 세계는 오직 정신뿐이다. 또는 오직 의식뿐이다. 또는 절대 주체성이다라고 불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의식과 우주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 , 다르마다투 法界, ‘오직 정신뿐 혹은 브라만처럼 절대 주체성은 그 자체와 불분명한 따라서 그 자체에게 진실한 진정한 세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과거 대 미래와 주체 대 객체라는 이원주의는 거짓이라기 보다는 환영에 가깝다. 당신의 의식 상태는 지금 혹은 이 순간처럼 항상 궁극의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의 문제는 실재를 어떤 미래에서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로 이해하는데 있다.

    요컨대, 당신 내부 안에는 인식하는 것, 목격자, 절대 주체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정신이요. 신성 그 자체다. 그러나 이 절대 주체성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우리 자신이라고 알고 느끼는 분리된 주체가 아니다. 이런 분리된 주체의 감각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신이 이 주체를 찾으려할 때마다 오직 인식의 객체들만을 찾게 된다는 사실로 입증된 바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인식주체 knower는 지식의 우주와 하나이다. 당신이 관찰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관찰하는 당신이다. 의식의 기저로 내려갔을 때, 당신은 우주를 발견한다.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그릇된 객체들의 우주가 아닌, 더 이상 주체 대 객체로 분리됐다고 상상할 필요없는 진정한 우주 말이다.

    여기 안에서 관찰하는 주체로서의 당신과 저기 밖에서 관찰당하는 객체들 사이 공간은 절대 주체성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 바로 무한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 사이 시간은 절대 주체 안에서는 찾을 수 없다. 시간이 아닌 지금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초월한 그것이 바로 영원이다. 결국, 절대 주체성은 연속적인 시간이나 공간이라 불리는 거리를 통해서 우주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우주를 인식한다. 이것이 우리가 깨닫든 아니든 상관없이, 현재 상황이다.

    우리가~이었다. 나는 ~일 것이다.  ‘~이다.’로 만들어야 정신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이원주의는 시간을 통해 진화하는 점진적 변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가 실제로는 과거의 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일임을 항상 명심하라.

    오직 정신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원성이 없는 실재이다. 이러한 단계에서 우리는 삼라만상과 동일해지고 우주의 기본적인 에너지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의식의 첫 번째 수준인, 정신의 수준이다.

    다음에 이원론 생각인 마야를 통해 환영의 이중성 또는 분리를 도입, ‘하나의 세상으로부터 두 개의 세상을 창조한다. 그리하여 이런 분리는 허구이지만 진짜인양 행동하며 이원론에 매달린다. 이 시점에서 인간은 삼라만상을 가진 우주적 존재로서 육신을 가진 개인적 존재로 변한다. 여기서 두 번째 주요한 의식의 수준인, 실존의 수준이 만들어 진다. 자신의 생물체와 동일시되는 인간으로 말이다.

    이원성을 통한 인간의 분열은 계속된다. 심지어 자신의 육체와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육신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정체는 전체로서의 육신으로부터 에고로 변화한다. 이러한 세 번째 주요의식의 단계를 에고단계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인간은 에고에서 달갑지 않은 일면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의식에서 자신의 원하지 않는 면들을 인정하기 거부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의 정체는 스펙트럼의 다음 단계를 만들어 댄다. 이것이 그림자단계이다.

     

    풍경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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