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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76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5. 3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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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76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478wuQ1hb3o

     

    482.

    절대적인 현재 안에서 과거는 없다. 과거가 없는 것은 지금 막 태어난 어떤 것이다. 탄생이란 어떤 과거도 보유하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현재 안에는 미래도 없다. 미래가 없는 것은 지금 죽은 어떤 것이다. 죽음은 어떤 미래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순간은 과거가 없기 때문에 지금 막 태어난다. 미래가 없기에 그와 동시에 죽는다. 따라서 탄생과 죽음은 초시간적인 동일한 현재에 대해 논하는 다른 두 방법일 뿐이다. ‘모든 사물들을 동시 발생적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시간적 연속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환영적으로 분리된다. 요컨대, 탄생과 죽음은 이러한 초시간적 순간에서는 하나이다. 인간은 삶-그리고-죽음의 통일체를 분리하고, 그 통일체를 억압하고, 죽음에 대항한 삶의 전쟁으로 투사한다. 동시에 현재 순간의 통일성마져 분리하고 부정하게 된다. , 죽음, 현재, 순간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시간이 창조된다. 죽음을 거부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현재에 존재할 수 없고, 시간 안에 존재해야만 한다.

    장미는 과거의 장미나 더 예쁜 장미를 참조하지 않는다. 그 꽃들은 지금의 그것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 꽃들에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꽃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의 매 순간 완벽하다. 하지만 인간은 현재에 살지 않는다. 시간을 초월한 현재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기전까지 인간은 행복할 수 없고 강해질 수 없다.

    죽는 것에 대한 무능력은 불가피하게 인류를 삶의 현실 밖으로 던져버린다. 그 결과는 삶의 부정(억압)이다.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하기에 인간은 죽음이란 본능을 특이하게 인간적인 것이거나 병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죽음에 대항하는 특이성은 삶에 대한 죽음의 지배란 결과를 낳는다. 죽음에 대항한 전쟁은 과거와 미래에의 몰두란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현재() 시제는 잊혀진다.

    현재는 그 자체 안에 존재의 완벽한 합을 보유한다. 앞으로 그리고, 뒤로, 시간의 전체 넓이를 말이다. 그래서 현재는 영원이다.’ 따라서 죽음에서 도망치는 와중에 인간은 현재 밖으로 내동댕이 침을 당하고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초시간적인 순간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미래를 향한 경주로 들어간다. 동시에 영원한 순간의 통일체를 분리한다.

    삶과 죽음의 분리는 시간의 분리이다. 시간안에서의 삶은 억압속의 삶이다.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는 맹목적인 삶(공포)으로 향한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에고라 불리는 이상화된 이미지의 창조이다. 죽음으로부터의 도피하고자 하는 걱정 속에서 인간의 삶 자체는 분리되고, 통일성은 억압된다.

    물질의 진실은 인간의 에고가 실재, 특히 죽음이란 최고의 실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만들어진 특별한 구조이다.

    인간의 두 부분(육체와 정신)이 무리없이 재결합될 수 없기에 그는 실재가 없는 이미지, 에고를 숭배하고자 노력한다. 동물적 부분을 위한 추상적인 부분의 올바른 사랑이 없을 때 인간은 오로지 대용품, 자존심, 자신의 이상적 이미지를 위한 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사랑만을 갖게 된다.

    첫 번째 제1의 이원주의-억압-투사는 비이원성(, 정신)에서 분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실존수준으로서 근본적인 이원주의에서-억압-투사로 발생

    2의 이원주의-억압-투사는 시간속에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때 발생한다.

    3의 이원주의-억압-투사는 인간의 죽음으로부터의 도피는 육체로부터의 도피이다. 생물체는 분리되고, 그것의 통일성은 억압되고, 육체 대 정신으로 투사된다. 따라서 에고 수준에서 인간은 자신이 육체를 소유한다고 상상한다. (자동차나 주택처럼) 이것은 완전히 이원적이고 상징적이고 선형이고 시간적인 앎의 방식이다.

    유기체적 자각(감각적 자각-)은 현재의 자각이다. 초시간적이며 초공간적이다. 과거나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내부나 외부, 자아와 타자를 알지 못한다.(=절대 주체성, 비이원론적 자각, 우주적 의식=내부도 외부도 없는 오직 의식만이 존재한다. 전혀 경계가 없다.) 내부 대 외부라는 주요한 이원성은 단지 당신이 지금까지 교육 받아온 생각일 뿐이다.

    유기체적 자각의 억압은 제1, 2차 이원주의와 함께 즉시 시작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이 매우 제한되고 피부로 보호된다고 상상한다. 그 결과 정체성은 자신만의 유기체 속으로 붕괴되고 환경과 대항하게 된다. 그것이 실존적 수준(실존적 자각, 켄타우로스 자각)이라 부르는 의식상태이다. 즉 공간(1차 이원주의)과 시간(2차 이원주의) 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유기체와만 동일시한다.

    1,2차 이원주의는 경계가 없던 유기체적 자각(절대 주체성)을 실존적 자각 상태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주적 의식을 초보적이고 개인적인 의식으로 변환시킨다.

    실존적 수준에서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즉 머무르는 지금, 영원한 현재는 움직이는 지금 지나가는 지금으로 나타난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우리는 미래를, 우리의 현재가 지나가길 원한다. 이러한 의지는 모든 소망, 의도, 욕망의 원형이다.

    자비는 집착으로, 머무르는 지금은 움직이는 지금으로, 비이원론적 인식은 이해로, 자발적인 유희는 의지와 의도로 변한다. 이것들은 오염된 유기적 자각이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가 제3차 이원주의=에고수준

    상상은 에고를 보호하는데 에고는 사실 환상이다.

    언어는 구별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인간의 이원주의의 주요 원천이다. 우리는 자연을 분할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조직화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 약속은 우리의 언어 사회 안에서 지속되고 언어의 패턴 안에 성문화된 것이다. 하지만 자연 그 자체는 그렇게 양극화되어 있지 않다.

    우주의 모양이 반드시 우리가 이용하는 언어의 모양은 아니다.

    언어로서 강요할 때 치명적인 폭력을 자연에 행사하게 된다. 언어와 논리같은 사회학적 제도의 보고라할 수 있는 생물사회적 대역은 구별의 모체이다. 우주라는 이음매 없는 코트를 관습적으로 묘사하고, 해부하고, 분리하는 형식과 패턴을 생산해 내는 모체 말이다.

    생물사회적 대역의 세가지 기능

    1.인간이 분리된 개별적 존재라는 핵심 감정의 일부분을 형성한다.

    2.더욱 고차원적인 사고를 위한 상징, 구분, 논리체계를 제공하면서 추상적 사고를 위한 저장소로서 작용한다.

    3.생각을 위한 양식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고를 위한 양식도 제공한. 즉 에고의 특징 중 많은 것들이 형성되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인간의 자의식이란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통하여 스스로를 바라봄으로써(일반화된 타자), 스스로에 대한 사회적 대상이 되었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의식의 스펙트럼 발생은 제1차 이원주의가 발생했고, 정신을 억압하고, 그것을 유기체 대 환경으로 투사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이 환경과 대조하여 자신의 유기체와 동일시하는 실존수준을 야기했다. 이는 삶 대 죽음이라는 제2차 이원주의를 촉발시켰고, 이는 다시 정신 대 육체라는 제3차 이원주의를 만들어 낸다.  3차 이원주의는 에고 수준의 발생을 나타낸다.

    전통적인 자아 또는 사람은 선택된 기억들로 이루어진 역사로 구성된다.

    나는 누구인가?’ 과거에 당신이 했던 것들로 이뤄질 것이다.

    과거에 대한 그런 환영은 어떤 만족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한 좌절감을 얻기위한 시도로 에고는 미래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에 행복도 존재할 수가 없다. 미래가 현재가 됐을 때 그 미래를 누릴 수 없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에 기쁨은 영원한 환희이고, 초시간적 기쁨이고, 어떤 미래도 알지 못하는 기쁨이며 따라서 죽음의 수용을 수반하는 기쁨이다. 그러나 에고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에고는 행복을 찾을 수없다. 에고수준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 안에 살아가면서 절대로 도래하지 않을 미래를 추구함으로써 시간을 초월한 순간의 죽음을 피하려고 시도한다.

    상징적, 커뮤니케이션, 선형적, 이원론적, 객관적, 개념적 앎의 방식이 바로 이곳 에고 수준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풍경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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