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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78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6. 1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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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78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8PfUJ9hct8

     

    484.

    순수하고 비공식적인 무명의 비이원론적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은 내부도 외부도 인식하지 않고 따라서 위치를 찾아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에너지가 붕괴되어 수많은 이미지로 나눠질때 다시 말해서, 이러한 생의 약동을 지적으로 곰곰이 생각할 때, 1차 이원주의는 이미 발생했고 그리하여 이 에너지가 우리의 신체 내부에 그 원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대한 원천이 어딘가에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경험을 지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근본적인 실수이다.

    매일 브라만을 분해(상징, 개념, 이미지, 생각)하는 과정

    나의 상상적(감정적) 의식은 이원론적이다.

    나의 유기체 의식만이 우주를 인식한다. 그것의 작용이 초시간적, 초공간적이고 따라서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무한하고 영원한 모든 것은 동시에 공간과 시간의 모든 지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사실을 앎으로써 당신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절대적 현재를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모든 시간을 이해한다. 절대적 여기를 앎으로써 당신은 모든 공간을 안다.-그리하여 그 둘을 이해함으로써(그 둘은 실제로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은 우주를 완전하게 알게된다. 또한 추상적인 사실들’(사물)이 단순한 반영물에 불과하다는 실재를 알게 될 것이다.

    에너지는 신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일 뿐이다.

    창조는 에너지. 즉 앎의 비이원적 방식을 형태, 사물, 개념 즉 상징적 앎의 방식으로 분리하는 행위로 대표된다. 따라서 이원론적 지식이란 형식에 의하여 객관적 우주가 창조된다. 우리의 지식의 형태는 매일 우리를 분해하기 때문이다.

    여러 층의 밑에 놓인 아트만이란 단순한 은유이다. 아트만은 위나 아래에 놓여 있지 않다. 그것은 층 그 자체이다. 아트만은 모든 층의 진정한 본질이다. 그 은유는 편의를 위한 것이지 사실은 아니다.

    암흑시대 연금술사들의 업적은 금속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근본적인 천국을 복원시키는 일과 관련 있다. 인간이 기쁨과 광휘로 가득찬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일 말이다.

    인간의 본능 또는 욕구의 본질;성과 생존-사랑과 공격-삶과 죽음, 요구, 본능, 소망, 동인, 동기, 욕망, 강하고 건설적인 의지를 위한 욕구, 권력에의 의지, 사랑과 수용의 욕구, 안전을 위한 욕구, 생물학적 만족과 안전의 욕구, 의미를 위한 욕구, 성장하고 성숙하려는 욕구, 자기-보존과 향상의 욕구, 사랑과 자기-가치의 욕구... 이것들은(모든 학파, 치료법, ,서양) 모두 의식의 동일한 수준을 바라보고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다른 수준에 접근하고 따라서 상보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 안에 있다.

    격렬한 부정은 투사의 표시이다. 사람은 자신을 아는데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만일 누군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가 다른 사람에 관하여 말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라.

    감정이란 (에고수준에서) 나와 당신 사이가 아닌 나와 나 사이에서 경험된다.

    걱정이란 흥분에게 거절 당하여 나타나는 존재이다.

    에너지가 샘 솟을 때 어른들은 그것을 막고(걱정) 투사해 버리지만 어린아이들은 그 에너지가 흐르도록 내버려둔다.

    에너지는 영원한 기쁨이다.

    끈질긴 압박감이란 그 자신의 투사된 욕구란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압박감을 초월하는 것이 자발적인 대안이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스스로의 욕구란 점을 깨닫는 사람은 화를 내지도 압력에 저항하지도 않는다. 그는 행동할 것이다.

    앞과 뒤는 서로 뒤따른다. 부정적인 경향과 긍정적인 경향은 아름다운 경치의 계곡과 산과 같다.

    악마적인 양상들이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경향에 필수적인 평형추로서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대신 환경에 존재한다고 잘못 상상할 때 이런 환영의 폭력에 가장 폭력적이고 심술궂게 반응하고, 종종 극도로 분노하여 성전 聖戰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을 위해 마녀들을 죽이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안전한 영혼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우리는 오직 친구가 됨으로써 악을 길들일 수 있다. 악을 소외시킨다면 자극하는 결과만을 낳게 될 뿐이다. 통합될 경우 악은 부드러워진다. 투사될 경우 악은 매우 심술궂게 변한다. 따라서 악을 소외시키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악이 승리하도록 도울뿐이다. 악을 증오하는 행위는 악을 강화 시킨다. 반대는 반대되는 것에 기운을 불어 넣는다.

    우리 모두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부정적인 것들) 거부하고 환경 속으로 내동댕이 치는 경향과 특성이 그것이다. 이는 만성적인 좌절감과 긴장을 야기한다. 환경 안에서 투사된 특성들은 두렵거나(공포) 무서운 모습을 띄게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에너지로 우리 스스로를 공격하는 결과를 얻게된다.

    첫 번째 방법은 환경이 기계적으로 우리에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행하고 있는 어떤 것-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어떤 것-임을 깨닫는 일이다. 나와 나 사이의 문제이지 나와 환경 사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 긴장감이 존재한다.(긴장감을 느낀다.)가 아니라 나는 스스로를 긴장시킨다.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 맡기는 습관을 버려라. 투사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라.

    두 번째 방법은 타인에게 상냥하게 행하는 것이다.

    타당한 결정이나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양쪽면, 또는 두 개의 서로 반대되는 면을 충분히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과(긍정적일 때) 반대되는 것(부정적인 것, 죄의식, 공포, 걱정, 우울, 욕망...)과 직면하고 그것들을 다시 소유해야 한다.

    긴장을 푸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이 긴장하도록 자극(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증상에 대한 의식적인 집착은 당신을 그 집착에서 해방되도록 만든다. 증상이 사라지기를 걱정하거나 희망하지 마라. 그보다는 그러한 증상을 충분히 그리고 완벽하게 경험하고 강조하고, 그림자와 접촉하고, 우리의 정반대의 것들과 대적하는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바로 그때 증상은-우리가 감언으로 설득하지 않아도 제멋대로-자발적으로 떠난다. 정신이란 자신이 자신을 꼬집고 있다는 올바른 정보를 얻기만 한다면, 자동적으로 그 일을 멈추는, 자발적으로 자기-조직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그 고통을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가 나를 다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는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로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나의 분노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비록 대신 베개를 두둘겨 패기는 하겠지만) 분노를 통합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환경이 우리에게 행하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실제로 우리가 우리에게 행하고 있는 어떤 것이고, 이것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꼬집고 싶은 우리 자신의 위장된 욕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타인에 대한 열광, 애정, 집착... 그러한 열정은 우리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는 강렬한 욕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인간은 그 자신이 공간에 존재하고 시간을 경험하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유기체라고 느낀다.

    우리는 에고수준에서 에 관심을 가지고 생물사회적 대역에서 우리는 나와 당신’(사회)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화(상징화 과정);상징의미(분리의 과정)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옮음과 그름에 대한 관심은 마음의 병이다. 세상에 근본적으로 틀린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삶의 문제란 없다. 우리는 오로지 순수한 그러함을 산산조각 냄으로써 순수하게 그러함이란 영역 안에서 의미를 설립할 수 있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가리킨다는 뜻이다. 가리킨다는 것은 분리하고 이분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상징화가 하는 행위이다.;아주 쉽게 말해서 지도란 경계선을 그림으로써만 가능하다.

    생물사회적 대역이란 구별(분리)의 모체이다. 그 구별은 다시 행동을 통제한다.

     

    풍경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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