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71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2. 4. 27. 00:54
    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71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QOzN8gIDkPQ

     

    477.

    참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또 다른 심오한 진리()이다. 앞과 뒤, 이원론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하나의 진실로 접근하는 두가지 방법일 뿐이다. 하나에서 두 세계를 창조한 이원론 때문이다.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표상적 지식과 본질적 지식. 통상적인 형식의 추론은 주로 표상적 지식만을 위해 발전됐다. 본질적 지식은 성문화 成文化와 분석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분석하려 시도할 때, 본질은 사라지고 상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주체-객체란 이원론이 나타나자 본질은 사라지고 상징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즉시 분석적이고 이원론적인 세상으로 되돌아간다.

    표상적 지식은 이원론적 지식이다.

    주체와 객체의 분리는 환영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기인한 표상적 지식은 환영이다.

    달의 그림이 진짜 달이 아닌것처럼 실재가 아니다.(지도-영토, 도로지도-영토...)

    단어 자체는 그것이 언급하는 사물이 아니다.

    (스테이크)이란 단어가 목마름(배고픔) 해소 못한다. 당신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 단어, 생각, 개념, 이론, 일상의 언어조차 실제세계 즉 영토의 지도이다. 미국지도가 진짜 미국 영토가 아닌듯 실재에 대한 과학과 철학의 생각 역시 그 자체가 실재는 아니다.

    현실의 상징을 현실과 혼동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

    두 가지 기본적인 앎의 방식

    1.상징적, 지도, 추론적, 이원적지식, 과학, 그림자, 전통적인지식(, 수학기호), 낮은지식, 개념적, 비교적, 인식자와 인식대상의 구별, 정교함, 황혼의지식, 감각과 지성의 세계, 추상, 대표적 생각, 외부사슬설치

    2.본질적, 직접적, 비이원론적지식, 실재에 대한 지식, 자연적인 지식, 비전통적인 지식, 높은 지식, 단계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갑자기 직관적으로 얻어지는 지식, 비이원론, 현실적이며 비상징적 자유롭다. 새벽녘지식, 비개념적, 보이는 것과 보는 자는 동일, 파악, 정신적 내용과 객체가 동일

    지성 대 직관, 지식인 대 융합지식, ditention  contention, 직접적 대 황홀한 지식, 생각 대 인식, 외면 바라보기 대 내면 바라보기

    비이원론적 앎의 방식은 특정한 사상이나 상징이 아닌 실재 그 자체, 즉 어느장소나 시대나 상관없이 동일한 실재를 채택한다.

    우주적 범위의 단일한 철학적 합의로 실재의 이해는 단 하나이고 모두 같다.

    (비언어적, 비회화적)

    우주는 그것 자체를 나눌수 없다. 일종의 거대한 원자로서 우주는 완전하게 형성되어 있다. 강력한 방법을 이용하여 물질을 더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는 부분들의 상호의존성에 더욱 당황하게 된다. 우주의 각 요소는 모든 다른 요소들과 절대적으로 엮여있다. 정말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우주 전체를 하나의 조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조각을 더하는 것(사물은 전체의 일부분으로서만 실재를 갖는다.)은 조각을 나누는 것만큼 지적인 회피이다.

    비이원론적 앎의 방식은 어떤 조각, 어떤 분리, +,-의 어떤 이중성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각각의 분리된 것은 전체 그 자체라기보다는 전체의 한 일면에 불과하다. 우리 각각의 정체성은 그 자신이 영향을 받는 의식의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실재라고 불리는 것과 실재의 지식(비이원론적 지식)은 별개가 아니다. 아는 것과 실재는 주요한 경험 안에 합쳐져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

    지식의 방식은 의식의 수준과 일치. 실재는 지식의 특정한 수준.

    실재는 의식의 한 단계이다. 실재는 이상적이지, 물질적이지, 영적이지, 개념적이지, 기계론적이지, 생명적이지 않다. 실재는 의식의 한 수준이고 이 수준만이 실재적이다. 즉 오직 마음 뿐이다.(=심상이 없는 인식=모든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신=無念 생각이 없는 상태의 정신=실재를 부인하는 이원론적 생각은 그 자체가 부정돼야 한다.)

    앎의 방식의 변화는 의식의 수준에서의 변화와 일치한다. 실재를 아는 것은 실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실재란 이미지가 아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환영의 거울에 비친 실재의 영상일 뿐이다.

    상징적 설명의 유형

    1.선형(차원적, 분석적, 논리적, 연역적, 귀납적, 무논리적, 유추적, 이원적, 논리학적-저널, 논문, 철학적 저서, 문장)

    2.상상적, 그림, 다차원적-예술, 신화, , 상상, 

    위의 방법은 실재를 부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실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두 유형은 정신을 가리키기 위해 3가지 방법으로 이용될 수 있다.

    1.유추적;전능, 무소부재, 전지, 무한한존재, 지복, 최고의 지혜와 사랑, 무한한 의식-종교적인 아이콘

    2.부정적;조각(방해물 깎아서), 그가 좋다면 그는 나뿔수 없다.

    3.명령적;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단어와 이름만을 찾게될 것이다. 실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실재를 혼자의 힘으로 발견하기 위하여 일련의 경험적 규칙이란 형태로서의 안내. 요리법, 음악의 악보(작곡가의 명령), 부처의 길은 부처의 명령을 의미한다. 그러한 명령들이 경험되는 실재는 보편적으로 하나이며 동일하게 될 것이다.

    이 세가지 방법들은 각각 실재는 어떠하다. 실재는 어떠하지않다.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실재가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미하거나 자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시공간 안에서 우리 개개인들은 분리된 존재로 나아간다. 반면 시공간을 초월한 더욱 심오한 실재에서 우리는 모두 한 몸의 부분이다.

    이 삶은 전체 존재의 일부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실재=정신=의식

    모든 의식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외부적 세계와 의식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그것들의 다양성(개개인) 만이 우리 눈에 명백하게 보이지만 사실 오로지 하나의 정신만이 존재한다. 다수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이 하나의 것의 다른 측면이며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거울이 많은 방에서도 이와 동일한 환영이 만들어 진다.

    언어 자체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비이원론적 통찰을 통해 현명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적 자기실현이다.

    정신의 미혹적인 투영은 모든 다양한 형태의 현상을 만들어 낸다.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정신일 뿐이다.

    모든 부처와 지각력 있는 존재들은 오로지 하나의 정신일 뿐이다.

    정신=절대자=존재===신성=브라만

    당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당신 안에 있다. 그리고 당신은 존재한다. 따라서 당신을 제외하고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바람과 같다. 비록 하나이지만 등장할때마다 새로운 형태를 갖게된다. 어디 안에 깃들든 새로운 형태를 지닌다. 오직 현명한 사람들만이 그들의 영혼 언에서 그를 보고 영원한 기쁨을 획득한다.

    이것(주관적)과 저것(객관적)이 상호관계없이 존재할 때, 그것이 바로 도의 축 Axis of Tao 이다. 그 축이 모든 무한대가 보이는 곳을 통과할 때, 긍정과 부정은 똑같이 무한한 하나 속으로 합쳐진다. 여기서 하나는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평범한 범신론이나 무미건조한 일원론에 빠지면 하나를 글자 그대로 하나로 받아 들인다. 절대적인 하나의 문자상 이론은 가장 이원론적이다.

     

    비포장 도로와 포장 도로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