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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33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1. 9. 2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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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33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B4hbDm3gAS8

     

    441-3

    윤회, 환생 또한 사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목적은 깨우치고 진화해가는 것이며 여러번의 삶이 이러한 과정을 촉진시킨다.

    그 세계가 존재하는 목적의 일부는 그들로 하여금 다음 생을 준비하고 그들이 다음 생에서 경험하는 중요한 사건과 상황을 설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도기의 영역에 들어가면 비범한 의식상태(자신의 잘못, 악행 인정 투명하고 정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에 들어간다. 이처럼 양심이 고도로 예민해진 마음 상태를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 상태와 구별하기 위해서 후단의식 後段意識 metaconsciousness 이라고 부른다.

    이번 생에 태어나기 전에 스스로 그 사건을 계획. 즉 다음 생을 계획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자신의 운명의 윤곽을 대략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현되도록 사실상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미래를 예지하고 그 정보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용의주도한 선택이든, 우연이든 간에 우리는 지상의 삶의 조건을 스스로 선택한다. 후단의식의 작용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모든 인간이 겪는 삶의 조건은 임의적인 것도 아니고 부당한 것도 아니다.

    삶과 삶 사이의 과도기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모든 인간의 경험은 단지 우주라는 학교 속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교훈일 뿐이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의도의 존재가, 우리의 삶이 엄밀히 예정된 것이며 모든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단지 개괄적인 윤곽만 정해진 것이며 아직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무의식이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운명을 중재하고 있는 힘은 우연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외양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 기쁨과 슬픔, 인격의 내면적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 우주적으로 단죄를 받는다는 어떤 단서도 없다. 또한 우리의 행위에 대한 어떤 외부적 심판도 어떤 존재도 없다.

    전생이 현생의 육체적 조건이나 형태에 뚜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체상의 흔적들이 윤회론을 지지해주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을 생에서 생으로 전달해주는 기능을 가진 비육체적인 모종의 중간 신체가 존재함을 암시하고 있다. 전생의 상처 자국은 모종의 확장된 신체에 의해 생에서 생으로 전달되는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전생의 인물의 몸에 난 상처와 일치하는 모반이나 기형상태가 새로운 신체에 생겨나도록 하나의 거푸집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체의 에너지장이 신체의 형태와 구조를 규정하는 하나의 홀로그램 거푸집이다. 그것은 일종의 3차원적 청사진으로서, 그것을 중심으로 육체가 형성한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한낱 인상 즉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홀로그램적 구조물이라는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그리고 어느 정도는 신체까지도 창조하는 창조자임을 시사하지만 이 과정에 매우 수동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거의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감추어진 질서와 훨씬 더 깊은 교감을 유지하고 있는 무의식의 심층부가 이러한 선택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식기능 보다도 훨씬 더 심층적인 차원의 정신작용이 현실의 과정을 지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깊은 무의식이나 영적인 부분이 시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운명에 관여한다.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일은 그 자신의 영혼, 즉 톤디 tondi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은 다음 생으로 윤회하며 그 사람의 전생의 행동뿐만 아니라 신체적 특성까지도 재생해 내는 매개체이다.

    사람의 삶은 보이지 않는 영, 혹은 영혼에 의해 시나리오가 정해지고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배워야 할 교훈을 다 배우지 못하고 죽으면 그들의 영적인 몸은 또 다른 육신 속에 태어난다.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아우마쿠아 aumakua 즉 더 높은 자아라고 부른다. 후단의식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결정화 된, 혹은 정해진 미래의 일부분을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부분이다. 그것은 또 자신의 운명을 지어내는데 관여하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생각은 물체이며 그들이 키노메아 kinomea  배후의 신체질료라고 부르는 미세 에너지로 된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 두려움, 계획, 근심, 죄책감, , 상상은 우리의 마음을 떠난 후에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염체 念體 thought form 로 변하며, 이것은 또 높은 자아가 우리의 미래라는 직물을 짤 때 사용하는 재료의 일부가 된다.

    자신의 생각에 책임지고 높은 자아와 소통하고 자신의 삶 되돌아보고 심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배후의 신체질료가 육신이 주조될 거푸집을 형성시킨다. 또 높은 자아와 잘 조율되어 있는 카후나들은 다른 사람의 배후 신체질료를 다시 빚고 다듬어서 그들이 신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으며 이것이 기적적인 치유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이다. 이러한 생각은, 생각이나 이미지가 건강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에 대한 우리의 결론과 일치한다.

    티베트의 탄트라 신비가들은 생각의 질료를 ’ tsal 이라고 부르며 모든 정신작용이 이 신비한 에너지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들은 온 우주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며 모든 존재의 집단적 이 우주를 움직인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넓은 대양에서 분리된 작은 웅덩이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페르시아 수피 sufi 들도 운명을 바꾸는데 심상화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들은 생각의 미묘한 질료를 알람 알미살 alam almithal' 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차크라 에너지 중추에 의해 제어되는 미묘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생각을 실제적인 물체, 즉 섬세한 형태의 물질이다. 생각이 운명을 만들어 내며 생각은 건축가이다.

    삶의 매순간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에너지와 형상을 주는 이미지와 패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이 소망하는 미래를 심상화하고 거기에 집중된 의식의 에너지를 충전시켜라.

    의지의 힘과 집중된 의식으로써 적절한 심상을 만들어 내면 우리는 생각을 정신영역 속의 꿈이나 환시로서만 아니라 물질영역 속의 경험으로 현현시킬 수 있다.

    생각이 자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마음으로 우주를 지어낸다. 행위하는 대로 그렇게 된다. 욕망하는 대로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 된다. 자연의 만물은 운명에 의해 지배된다. 왜냐하면 영혼은 자신의 법칙을 가지고 있으므로

    구하라 얻을 것이다.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 한 것은 없다.

    사람의 운명은 그가 스스로 지어내고 행하는 바와 연결되어 있다.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지어낸다.

    마음의 패턴을 바꿈으로써 암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미래를 바꿔 놓기 위해 심상화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지어낸다.

    마음이 현실에 참여하며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질료가 객관적 세계 속에서 동시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의 창조자이다.

    마음이 사람의 운명을 만들어 낸다.

    현실을 재구성하는 의식영역에 접근하는 열쇠는 무의식(규칙적인 명상으로)과의 접촉이다.

    이미 일어난 일(과거)을 염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은 개운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는 표본화된 나비처럼 고정되어 있다고 믿도록 깊숙이 프로그램되어 있어서, 다른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한갓 환상이고, 현실이란 마음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지나지 않다고 보는 홀로그램 우주에서 그것은 우리가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르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의 마음과 신체까지도 우리가 이제까지 상상해온 것보다 시간이 구속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롭다.

    의식이 육신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해방되면 홀로그램 현실에 대한 접근은 경험적으로 가능해진다. 육신과 그 감각적 현실에 매여있는 한 홀로그램 현실은 기껏해야 지적인 상상물 밖에는 될 수가 없다.

    홀로그램 우주에서는 시간만이 유일한 환영이 아니다. 공간 또한 우리의 지각방식의 산물로 봐야한다. 우리는 공간을 절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공간이 존재한 적이 없는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시간에 의해 구속되지 않듯이 공간에 의해서도 구속된 존재가 아니다.(유체이탈)

    우리는 우리가 두뇌를 통해 생각한다고 배웠지만 적당한 조건에서 우리의 의식(생각하고 지각하는 우리의 부분)은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이 원하는 어떤 곳에나 존재할 수 있다.

    홀로그램 우주에서는 위치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영이다. 사물 역시 특정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의식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초공간적이다. 꿈속에서는 위치라는 것 또한 하나의 환영이다. 꿈속에서는 의식은 모든 곳에 있다.

    도플갱어 doppelganger ; double-goer 살아있는 사람의 유령같은 몸. 자신에게만 보이고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음

    우리의 사고 습관이 유체이탈 시의 형체를 만들어 낸다.

    유체이탈자들은 전혀 다른 감각기관을 사용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공명하는 다양한 주파수들로 이루어진 파동의 패턴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하나의 파동현상이며 그것을 우리의 마음이 다양한 홀로그램 현상으로 변환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또 우리의 의식이 두뇌 속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둘러 싸고 있는, 또한 속으로도 침투해있는 플라스마 같은 홀로그래픽 에너지장 속에 담겨 있다는 결론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유체이탈자들은 모든 방향 그냥 볼 수 있다. (눈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다는 믿음 때문) 우리는 또한 단지 육안으로만 볼 수 있도록 한계지어져 있지 않다. 눈 없이 볼 수 있는 능력 자체도 사실은 현실이란 것이 진정 마야 maya 즉 환영이며 우리의 육신, 그리고 일견 절대적인 것 같은 그 생리작용까지도 2차 신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각이 만들어내는 홀로그램 구조물임을 말해주는 또 다른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고 믿는데 너무나 뿌리 깊이 친숙해져 있어서 우리의 온전한 육체적 지각범위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켜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유체이탈의 또 다른 홀로그램적 성질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유체이탈 중에 들어가게 되는 세계가 현실의 더 미묘한 차원들 중의 하나, 즉 감추어진 질서에 더 가까운 영역으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차원에 더 가까운 곳임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면 현재를 표현한 주파수에 동조하는 대신 미래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주파수에 동조하여 그것을 현실의 홀로그램으로 변환시킨 것으로 보인다.

    데자뷰현상;기시감 旣視感 처음보는 광경을 과거에 본 듯이 느끼는 현상

    시간역행 환시 또한 일종의 과거로의 유체이탈이라고 볼 수 있다.

    유체이탈 상태를 시공간이 더 이상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 생각이 홀로그램 같은 형상으로 변환될 수 있는 세계, 의식이 궁극적으로 파동, 혹은 주파수의 패턴인 세계로 묘사하는 것에 덧붙여서, 유체이탈 중의 지각이 빛의 반사 reflection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방사 radiation 되는 빛의 인상에 근거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유체이탈의 영역에 들어갈 때 사람은 주파수 영역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시사해준다.

    유체이탈 영역이 파동적이고 전자기적으로 보이는 성질을 묘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유체이탈 상태에서 경험하는 우주적 일체감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만물은 만물 everything is everything 그리고 나는 그것 I am that 이라는 느낌으로 요약했다.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환상을 보거나 착각적인 공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현실을 실제로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도 여행할 수 있다.

    차원이 다른 영역의 현실과의 모종의 조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 또한 모종의 초월적 병존우주의 존재를 시사하는 경향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임사체험 또한 현실의 더욱 파동적인 측면 속으로의 탐험이다.

    홀로그램적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성질은 사후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주파수의 영역에서는 시공간이 붕괴되고 위치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면, 그리고 임사체험이 홀로그램적 의식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성질이다.

    유체이탈과 임사체험이 모두 마음이 두뇌와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면 마음은 또한 홀로그램적으로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은 임사차원의 높은 파동 속에 있을 때도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그 주파수들을 환상의 세계로 변환시켜 놓는다. 이것이 상호작용하는 사념의 구조물에 의해 창조되는 세계이다. 이러한 구조물 즉 염체는 서로 조합하여 패턴을 만들어 낸다. 마치 간섭파가 홀로그램 필름위에 패턴을 만들어 내듯 말이다. 그리고 레이져 빔을 비추면 홀로그램 이미지가 완전히 실제처럼 나타나듯이 상호작용하는 사념체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도 마치 실제처럼 나타나 보인다.

    임사체험이 더 높은 주파수의 홀로그램 영역으로의 여행이다.

    사후세계의 경치, , 물리적 구조물 등이 상호작용하는(혹은 간섭하는) 생각의 패턴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임사체험은 생각과 빛 사이의 구분이 힘들어진다. 생각은 곧 빛처럼 보인다.

    임사체험 속의 인생복습의 중요한 목적은 기억을 새롭게하여 다음 생을 좀더 의식적으로 계획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빛의 존재가 도움을 준다. 사후세계에서 지각하는 형상과 구조물들은 마음이 만들어 낸 사념체들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없이는 존재의 경험도 없다.

    생각하지 않으면 몸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색깔이 있는 빛의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리로도 이루어져 있다.

    인생복습은 그 입체성에서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보여주는 놀라운 정보저장 능력에서도 홀로그램적이다. 인생복습을 지각하는 능력조차도 그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세부 내용을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린, 그야말로 역설적인 무엇을 경험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홀로그램적이다. 그것은 전체와 모든 부분부분을 동시에 이해하는 능력이다.

    빛의 존재들에 의해 결코 심판받지 않았다. 유일한 심판은 오직 자신의 죄책감과 후회로부터 일어나는 자기심판이다. 즉 우주적 심판이다. 상벌체계가 전혀없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로운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빛의 세계에 들어온 후에는 고양된 상태, 혹은 후단의식 상태에 들어가는 듯하며 반추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투명하고 정직해진다.

    빛의 존재들이 체험자들에게 두 가지 점(가치)을 강조한다.

    1.사랑

    2.지식

    어떤 존재들은 그들에게 육신으로 되돌아가면 특히 자기성장이나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나서도록 터놓고 충고했다.

    배움은 끊임없는 과정이며 사후에까지 이어진다.

    지식은 사후에까지 가져갈 수 있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다.

    갑자기 모든 지식을 직접 알 수 있게 된다.

    임사체험자들은 정보가 덩어리로 들어와서 즉시 생각 속에 입력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실, 세부내용, 이미지, 정보의 조각 등이 문장형식의 말이나 영화의 장면들처럼 직선적인 형태로 줄줄이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이 정보의 물결을 생각의 다발 혹은 정보의 순간적인 폭발은 사념의 공 thought ball' 이라고 부른다.

    사후세계는 생각이 지배하는 존재계이다.

    우리의 삶은 최소한 어느정도는 미리 계획되어 있으며 우리는 각자 이 계획을 만들어 내는데 한몫한다.

    몇 개의 병존하는 홀로그램 우주가 존재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은 다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슬픈 착각이다. 나는 이제 숲과 꽃과 새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나다. 나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만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 연결을 통해 사랑을 보낸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다.

    사후의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생각과 욕망과 상징들을 반영하는 홀로그램적 형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다.

    사실상 이승의 현실과 저승의 현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것은 아니다. 이 둘이 다 홀로그램 같은 구조물이며, 오직 의식과 그 주변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빚어내지는 현실이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의 현실은 사후세계보다 약간 더 응고된 세계일 뿐이다.

    인생복습=생명의 책 개봉식

    생명의 책을 개봉하는 동안 나오는 정보들은 그 사람의 영적인 신체 속에 신경계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천사가 인생복습 내용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손가락 하나하나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를 검사해야만 했다.

    천사들이 의사소통을 위해서 사용한 홀로그램적인 사념의 공은 사람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파동질 속에서 모든 동영상과 다르지 않다. 이 텔레파시적 지식의 폭발을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1000 가지의 생각을 담고 있는, 정보가 고도로 농축된 이미지 언어이다.

    영의 세계에서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대신 정보가 영양의 공급원이다. 영들과 천사들이 이야기 할 때는 그들의 생각이 계속 3차원의 상징적 이미지로 특히 동물의 모양으로 합성되어 나타난다.

    천국에는 다른 별에서 온 영들도 있다.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우주적 일체성 속에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는 작은 천국이며 모든 사람이, 아니 실로 물질우주 전체가 그보다 더 큰 신성한 실재의 소우주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배후에는 파동질이 존재한다.

    우리의 우주가 파동같은 흐름에 의해서 끊임없이 창조되고 유지되고 있다. 그 흐름은 두 가지로 하나는 천국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나는 우리의 영혼, 혹은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흐름의 교차에 의해 형성된다. 천국은 물질적 세계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의 현실이다. 천국(감추어진 질서)은 모든 지상의 형체들이 그로부터 비롯되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원형적 근원이다.

    사후세계와 물리적 현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정조만 다를 뿐이며 물질계는 사념으로 빚어진 천국의 현실이 더욱 응고된 것일 뿐이다.

    영들이 사는 땅, 미묘한 신체, 특정한 감각기관, 영적 스승들 즉 이맘 imam이 사는 세계, 숨어있는 이맘의 나라, 알람 알마살, 즉 사념으로만 지어진 세계, 공간조차도 생각에 의해 창조된다. 하지만 이것이 비현실 즉 순전히 무  로 이루어진 세계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존재계이며, 동시에 그것의 고유한 구조체와 규모를 가지고 있고 고유의 숲과 산과 심지어 도시까지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상상으로 창조된 세계지만 물질적 현실보다 존재론적으로 덜 현실적이지 않은 세계이다.

    상상 그 자체가 하나의 지각기능이다.

    사후세계가 그 유령같은 성질에도 불구하고 물질우주 전체를 탄생시키는 모태이다. 모든 물질적 현실은 바로 이 영적 현실로부터 발생한다. 명상을 통해 깊은 무의식 속으로 내려가면 처음에는 외부에 있고 눈에 보이던 것이 모든 것을 감싸고 포함하고 있는 무엇으로 변하는 내부세계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현실의 초공간적이고 홀로그램적인 본질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 각자가 모두 천국 전체를 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모두 천국의 장소를 담고 있다. 영적인 실재를 어떤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우리 에 있는 것이다.

    사후세계의 초공간적 성질을 위치가 없는 세계라고 부른다.=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 이러한 개념이 실제로 현실의 미묘한 차원이 지니고 있는 초공간적 측면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유체이탈 체험을 하는 사람이 실은 어떤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환영같은 홀로그램 현실을 교체할 뿐으로서, 그것을 마치 어딘가로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홀로그램 우주에서는 의식은 이미 모든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아무데도 없다.

    사후세계가 무의식의 초공간적 영역 깊은 곳에 숨어 있다.

    죽음은 마음 속으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

    죽음의 경험 속에서 당신은 바로 그런 상태에 도달한다.

    영원과의 만남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에 의l해 매개된다. 그것은 의식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단지 의식을 전환시키기만 하면 현실의 미묘한 차원으로 다가갈 수 있다.

    사후세계는 다양한 빛과 색깔의 미묘한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질우주보다 백배 더 큰 세계이다. 그들은 거의 먹을 필요가 없고 오직 새로운 지식의 신성한 식사만을 즐긴다. 그들은 텔레파시로 통하는 일련의 빛의 사진으로 의사소통하는 지혜롭고 조화로운 빛의 형체이다.

     

    풍경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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