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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62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6. 4. 2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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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62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fRkz-sLRJFw

     

     

    666.

    각성된 의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임을 안다. 기쁨이 지나가듯이 고통 또한 자나가는 것이다. 기도는 비겁한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는 복종적이며 자신의 존엄성과 긍지를 내팽개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는 구세주가 내 삶에 간섭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 것이며, 나 자신으로 남을 것이다.’ 그대의 비겁함이 신을 발명한 것이다. 그대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형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대의 비겁함이 사라질 때, 신 또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신은 비겁합의 그림자이니까 말이다.

    모든 존재는 신성하고 신성은 모든 곳에 있다. 종교는 고향을 찾는 행위이다. 진짜 집은 그대의 고독과 홀로 있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우리는 항상 바깥을 헤매고 있다. 그대의 집은 그대 안에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선 고독이 필수적이다. 그대 자신과 함께 있는 것, 이것이 고독의 의미이다. 우리는 군중 속에 있는 법을 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잊었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다. 외로움은 항상 다른 사람을 요구한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외로움은 휴식이 아니라 불안이다. 집이 될 수 있는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홀로 있음이다.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고독은 명상과 침묵의 꽃망울이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고독은 내적인 잠재성의 개화이다. 연인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것은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하나가 되고 싶은 깊은 열망 때문이다. 고독 안에는 의문이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를 소개할 필요도 없다. 그대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다. 그대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과 홀로 있음은 모든 존재를 그대와 분리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하늘 전체가 그대의 것이 되고, 나무가 곧 그대가 된다. 산이 그대 안에 있다.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박동이 자기만의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주의 심장이 뛰는 소리이다. 이제 그대는 집에 돌아왔다. 이것은 귀향이라 불려질 수 있다. 그대가 찾고 있는 자는 바로 그대이다. 찾는 자가 찾아지는 자이다. 화살이 곧 표적이다. 관찰자와 관찰되는 자는 똑같다. 그대는 하나가 된다. 그대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둘 다이다. 이 하나됨은 인간의 의식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엑스터시이다. 하늘에 있는 신을 섬기라고 하지만, 그대의 신은 그대 안에 있다. 숭배하는 자가 곧 숭배받는 자이다. 성직자들은 사원과 교회에 그대를 데리고 가지만, 그대가 곧 사원이며 교회이다. 그대는 어느 곳으로도 갈 필요가 없다. 깊은 침묵과 정적 속에 잠기기만 하면 그뿐이다. 그러면 수많은 경전을 읽고, 종교 의식을 수 없이 행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그대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엔가 방황과 탐험에 지쳤을 때, 조용히 침묵하고 앉을 것이다. 그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는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내 찾아 헤매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사물이 지닌 고유의 의미를 발견하라. 무엇을 보라고 가르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가를 가르쳐라. 투명하고 명확한 시각은 진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박탈해야 초월할 수 있다. 고정관념, 선입견이 산산조각 나고 종교, 신, 철학 그 모든 것이 불태워져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철저하게 발가벗겨져야 한다. 모든 종교는 그대에게 절망감, 실패감, 무가치하다는 느낌, 노예근성을 주입시켜 해결할 수 없는 죄의식을 심어 주기 위함이다.

    감각적인 쾌락을 포기한다면-성직자들은 그것을 요구한다-그대는 더욱더 무감각하게 될 것이다. 감각적인 쾌락은 그대의 감각을 생동감 있게 지켜준다. 그것을 포기하면 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달을 볼 수는 있어도 달의 아름다움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예술도, 보고 듣지 못할 것이다. 시체나 다름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민감하고 예민하다. 이것은 아무 조건 없이 감각적 쾌락을 허용할 때만 가능하다. 그것을 멀리하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잃어 허약해질 것이다. 그대는 감각을 통해 존재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작부터 부정한다면 목적지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지배욕은 추악한 욕망이다. 그러나 권력에의 의지는 창조적인 욕구이다. 지배욕은 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지만 권력에의 의지는 통합적이며 사자에 가깝고 개체성을 지닌 개인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또한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고취시키고, 자유롭게 되려는 의지이고, 창조하려는 의지이고, 영원 불멸성을 획득하려는 의지이고 자기 자신이 되려는 의지이다. 힘에 대한 욕구는 긍정적인 면에서는 권력에의 의지이고, 부정적인 면에서는 지배욕이다. 그러나 종교는 부정적인 면만 조명해 왔다. 자연 그 자체가 우리의 종교이다. 그밖의 다른 종교는 필요 없다.

    비범한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고, 그들에게는 어떠한 법률도 위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인가? 인류의 은인과 건설자들(대부분 전쟁의 영웅들)의 대부분이 무서운 살인자들이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상궤를 벗어난 사람,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천성상 분명히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더 좋은 것의 이름으로 현재의 것을 파괴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유혈을 공식적으로,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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