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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61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6. 4. 1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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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61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4Tt-mCvJNKA

     

     

    665.

    인간은 고정된 존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존재라는 말은 마치 인간이 완성된 단계인양 그릇된 관념을 심어준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의 되어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완성되지 않은 유일한 존재이다. 끊임없이 진보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영광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초월하여 깨달음, 또는 신성이라고 부르는 초인적인 경지에 도달하여 죽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움직임은 곧 삶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그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신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신은 방랑을 위한 최고의 구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방랑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신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아무도 신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신을 부정하는 사람은 신이라는 허구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것이다. 신과 천국, 사후의 세계를 부정한다면 그대는 곧 인간의 움직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신을 부정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다. 인간의 정신은 염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 더 많이 알고 싶은 열망,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곳을 탐험하고,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산을 오르고 싶은 열망, 미지의 별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 등이다. 즐거움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위험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 자체이다. 일단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새로운 구실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목적지는 무덤이 될 것이다. 그곳은 그대의 자살을 유발할 것이다. 가능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진정한 거인은 불가능한 것을 염원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방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방랑의 기쁨과 낯선 공간은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서서히 그대는 모든 목적지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재난이 일어나는 것은 특정한 길을 가기를 원하는 데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방해물과 장애 요인으로 인해 그대는 원하는 길을 가지 못했다. 그것이 재난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집은 편안히 안주하는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랑이 그의 집이다. 그는 자신의 가장 순수한 열망을 발견했다. 그 열망은 그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을 귀향이라고 부른다. 귀향은 모든 조각을 한데 모아 유기적인 통일체를 이루는 것, 즉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정 종류의 군중(국가, 종교, 단체, 정당, 모임)에 집착한다. 그것은 단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중에 속함으로써 그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잘못될리 없다고 자신을 확신 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데 있다. 그대는 군중 속에 있기를 좋아 한다. 그것은 그대에게 충고를 해 줄수 있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기 때무이다.

    그대의 꿈과 생각, 상상, 편견, 철학 등 그대의 퍼스낼리티를 형성하는 모든 것을 뒤에 남겨 두고 나아가야 한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지 못하는 한, 불가능한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그대는 하나의 화살과 같다. 그리고 그대에게 맡춰야할 표적이 없다. 그대는 전속력으로 날아가지만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대의 존재에 대한 이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그대에게 위안을 주는 모든 것은 가짜이다. 그대의 보호막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삶의 매순간마다 그대는 심연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죽음은 가장 깊은 심연이다. 정상과 심연은 아무 차이도 없다.

    동양의 종교는 극단적인 권태감을 안겨주기 위해 윤회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만일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변화하라. 여행 자체가 목적이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을 추구하라.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라. 영혼의 방랑자가 되라. 씨앗은 파괴되어야 한다. 초인은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정원사가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듯이 초인을 잉태한 자궁이 되어야 한다. 그대 내면의 깊은 곳에 초인은 씨앗처럼 잠자고 있다. 초인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군중 심리에 반대해야 한다. 군중은 자기들의 개체성을 희생시킨 자들을 성자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자신의 개체성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군중은 그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자신의 개체성을 선언하지 않는 한, 초인을 잉태할 수 없다. 군중은 홀로 떨어져서 침묵하고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매우 화를 낸다. 군중 속에서는 집단적인 의식을 느낄 수 있을 뿐, 그대 고유의 의식을 느낄 수 없다.

    욕망은 성취 가능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염원은 항상 신선하고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다. 불가능만이 인간의 의식이 도전하는 유일한 것이 되어야 한다. 불가능은 곧 신과 동등해지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은 다만 불가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염원하지 않는다면 초인이 될 수 없다. 그대는 아름다운 꽃과 석양, 별이 빛나는 밤, 그 아름다운 침묵 속에서 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와 사원에서는 신을 볼 수 없다. 성직자들은 인류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 신을 창조했다.

    강박관념, 목적의식, 죄책감은 소인배들의 것이다.

    매순간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며 보상이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매순간 그대는 삶의 화환을 엮어간다. 그 삶은 어떤 목적이나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삶 자체가 의미이며 즐거움이다. 그대의 행동 자체가 보상이며 벌인 것이다. 삶은 하나의 신비이다. 삶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누리며 살아야 할 신비이다.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인류는 신을 선택함으로써 제 스스로를 부정해 버렸다. 일단 노예가 되면 자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면제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대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자유와 책임은 항상 함께한다.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인간 이외의 다른 신에 대한 믿음이다. 다른 신을 믿을 때, 인간은 숭배자나 신봉자 이상이 될 수 없다. 존엄성을 갖춘 사람은 그 자신을 신뢰한다. 그러나 신은 그대의 실체성을 파괴하려는 성직자들이 꾸며 낸 가상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신이라는 가설은 인간의 삶을 비극으로 만들어 왔다. 인간은 노래와 춤을 잊고 자기 자신을 잊었다.

    종교는 경전이나, 성직자들이나, 사원에 있지 않다. 종교는 그대의 지성, 의식이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그대 스스로 사원이 되지 않는 한, 하늘처럼 광활하고 순수하게 되지 않는 한, 결코 종교적인 경험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초인이 될 수 있는가? 그대는 초인의 씨앗을 갖고 있다. 이웃을 그대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거울에 비친 그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것에 자니지 않는다. 이웃을 이웃으로 사랑하라. 그들이 그대의 생각에 맞든 맞지 않든 상관하지 말라. 그들은 그대와 같은 인간이고, 그대의 사랑이 그에게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항상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한다.

    초인은 가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화될 수 있다. 인간 안의 추악한 요소와, 인간을 작게 만드는 모든 것은 제거될 수 있다. 초인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대 안에 있다. 초인은 그대의 가장 순수한 상태, 최고의 의식적인 각성이다. 초인은 그대가 삶의 영원성과 가장 순수한 사랑을 경험할 때 그대 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대가 할 일은 자신을 초월하는 것이다. 모험을 감수해야 초인을 잉태할 수 있는 것이다.

    홀로 있음은 같이 있음이다. 그것은 엄청난 합일이다.

    보통 사람은 숨쉬는 시체에 불과하다. 그들은 다만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걸어 다니는 시체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신앙은 항상 공허하다. 그것은 진실을 위장할 뿐이다. 무지를 감출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신앙을 긁어 모으는 것이다. 그들은 똑같은 가방을 갖고 다닌다. 단지 상표(기독교, 불교, 이슬람교...)가 다를 뿐이다. 신앙은 장님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신앙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독약이다. 신앙은 그대의 영혼에 초인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한다. 신앙은 지성을 파괴하고 저능아처럼 만든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착각 속에서 산다. 이 세상이 진실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탐구보다는 믿음을 강요 받아왔기 때문이다. 온갖 신앙과 믿음에서 해방되면 사람들의 본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영상

    개미들
    https://youtube.com/shorts/7lR7Z_XEAFY?si=wSiOjEuUwcw-v__t

     

    달 뒤의 구름

    https://youtube.com/shorts/wbIDg_9N7U0?si=Z5P_tE7QLiLv1zko

     

    동정일여

    https://youtube.com/shorts/dYfrQsVTHJw?si=4W7SHRo8xI4JnG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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