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58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6. 3. 23. 23:22
    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58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NeadIXVQ7Nk

     

     

    662.

    인간은 완성품으로 태어나지 않은 실험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그대는 진보해야 한다. 그 진보에는 한계가 없다. 삶은 아무 목적도 없는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순례여행이다. 진정한 진화는 내면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실험적 존재에서 경험적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외부에 있는 사물을 실험한다. 과학은 실험적이다. 그러나 내면에 있는 것은 경험적인 차원에 속한다. 따라서 종교는 경험의 영역에 속한다. 인간은 두 가지 차원을 병행해야 한다. 존재계의 차원에서 하나의 실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며, 인간의 고유한 권리와 주체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하나의 경험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숭배는 매우 교활한 장치이다. 만일 과학자가 자신의 실험 기구를 숭배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에 무슨 진보가 이루어지겠는가? 화가가 물감과 캔버스를 숭배한다면, 거기에 무슨 창조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겠는가? 음악가가 악기를 숭배한다면, 그는 세상에 위대한 음악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뭔가를 숭배하고, 숭배가 곧 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숭배는 종교가 아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사랑을 최상의 가치로 둔다. 사랑은 신과 동의어이다. 그러나 예수는 신을 먼저 내세운다. 사랑은 그 다음이다. 즉 ‘신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랑이 신의 여러 가지 속성 중의 하나라는 것을 나타낸다. 신은 사랑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신이라면, 신은 사랑이 가진 하나의 속성이 된다. 창조적인 사랑, 그것이 종교의 모든 것이다. 최상의 가치는 공통적이지 않다. 그대의 사랑은 매우 흔하고 공통적인 것이다. 그대의 사랑은 명분일 뿐, 그 뒤에는 생물학적 욕망이 숨어 있다. 최상의 가치는 수단이 아니다. 목적 그 자체이며 절대적으로 독창적이고 독립적이다. 대지는 그대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추구한다. 그대는 대지의 가장 진화된 부분에 속한다. 그대의 육체, 머리, 가슴은 대지에 속한다. 그대는 대지의 가장 만개한 꽃이며 위대한 변형이다. 그대의 눈은 바로 대지의 눈이다. 뭔가를 보려는 대지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대의 귀는 음악을 들으려는 대지의 활동이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의 되어감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나무처럼 늙어가지만, 또한 더 높은 차원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깨어 있는 의식과 사랑, 존재에 대한 감사함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대지가 추구하는 의미를 가져올 수 있다. 만물은 변화한다. 그러나 공자나 예수나 부처의 말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에 의해 주어진 가치는 변함이 없다.(고정된 가치) 항상 그대의 가치를 새롭게 하라. 고정된 가치에 대항하여 싸울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투사가 되라. 그대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현 시대에 알맞은 가치, 모든 분야의 최신 실험에 의해 인정되는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그럴때에만 인간은 어딘가에 고착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신은 살아 있은 적도 없다. 신(초인)이 창조되어야 한다. 초인은 우리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창조해 내는 새로운 신이 될 것이다. 예수나 붓다는 믿지만 그대의 믿음은 그대 안에 아무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신앙은 우리를 흰두교인, 모하메트교인, 기독교인으로 만들었다. 신앙은 우리를 여러 종족으로 분열시켰다. 신앙은 하나의 지구, 하나의 인류, 하나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파괴했다. 신은 공허한 단어일 뿐이다. 관념에 불과하다. 신은 그대와 전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신은 그대의 공포에서 비롯된 상상의 산물이다. 신은 출발점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장 진화된 형태로 와야한다. 신은 순수성의 사랑, 진리의 궁극적인 형태이며, 궁극적인 조화이며 침묵이다. 그대가 신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때 신은 실재가 된다. 하지만 신을 창조할 수 없다면 신은 하나의 가정으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가정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충분히 고문당해 왔다. 수천년 동안 노예 신세가 되어 왔다. 이 가설을 파괴하지 않는 한 인간은 스스로 설 수 없고 자유로울 수 없다. 그대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대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신이 그대를 창조한 것은 변덕에 의해서이다. 창조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언젠가 그는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창조했던 모든 것을 순식간에 파괴할 수도 있다. 만일 그대가 피조물에 불과하다면, 깨달음이나 자신의 실현에 대해서는 말할 여지가 없어진다. 그땐, 사랑이나 자유에 대해 말할 여지가 없다. 그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신이 실체라면 그대는 가짜가 된다. 그러나 창조는 그대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창조는 그대를 신으로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창조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 신이 된다는 것은 그대보다 높고 우월한 어떤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단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감각은 그대의 본성이다. 감각은 그대와 존재계를 이어주는 창문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관념이 제거되면 그대는 신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는 세상을 창조해야 한다. 그때 세상은 더욱더 인간적이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랑과 기쁨으로 넘칠 것이다. 신이라는 가정을 제거하면 그대에게 자유를 준다. 또한 창조성과 사랑, 신성함을 되돌려 준다. 그러면 이 지구 자체가 하나의 낙원으로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대의 손에 달려 있다. 그대의 운명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지 않다. 생애 최초로 그대는 그대 삶의 주인이 된다. 유일한 것, 완전한 것, 움직이지 않는 것, 충족된 것, 불멸하는 것, 이런 것에 대한 모든 가르침은 악이며 염세적인 것이다. 의지는 그대를 해방시킨다. 왜냐하면 의지는 그대를 창조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의지는 그대를 신으로 만든다. 의지는 그대를 초인으로 변형시킨다.

    사랑은 창조적인 경험이다. 그대가 배워야할 것은 어떻게 존재계의 언어를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존재계는 단 한 가지 언어만을 아는 데, 그것은 바로 침묵의 언어이다. 침묵할 수 있다면, 삶의 의미와 존재계의 모든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대를 위해 삶과 존재계의 의미를 해석(성직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아무도 그대를 위해 대신일 해 줄 수 없다.

    진리는 경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리는 다만 명상적인 각성과, 내면의 침묵을 필요로 한다. 유일한 사원은 바로 그대의 내면이다. 그 외의 다른 사원은 모두 가짜다. 우주 전체가 신의 사원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것 중에 신성하지 않은 것은 없다. 아무것도 저속하지 않다. 신성함과 저속함이라는 구분은 성직자들이 만든 것이다. 신성함과 저속함, 영혼과 육체라는 구분은 그대를 둘로 쪼개어 놓는다. 그런 구분은 인류를 정신분열증적인 상태로 몰아 왔다. 깊은 조화 속에 하나가 되지 않는 한, 이 우주의 음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음악은 세상이 잘못된 곳이 아니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세상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의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한다. 우주의 음악이 그 증거이다.

    그대는 다만 초인에 이르기 위한 다리일 뿐이다. 그대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되어가는 (becoming) 존재이다. 완성된 것은 죽어간다. 거기엔 성장의 가능성이 없다. 무의식적인 사람일수록 더 많은 중력(중력의 정신)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더 의식적이 될수록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된다. 그대는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붓다, 예수)이 될 수 없다. 숭배에 의해서는 고유한 영혼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본 적이 없는 공간 안으로 혼자 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대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받을 자격을 따질 필요도 없다. 그대는 살아 있는 존재이고, 그것은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충분한 증거이다. 마치 그대에게 숨쉴 자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는 자신에게 숨 쉴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음식이 육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듯이 사랑은 영혼의 영양분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타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돌보는 것의 차이점은, 간호원은 돌보지만 엄마는 사랑한다. 예수는 너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없다. 그대는 그대의 첫 번째 이웃이다! 타인은 그 다음이다. 그러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할 것이고, 이웃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기적이 되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대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랑이 흘러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 전체를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곧 신이다. 삶은 결코 견디기 힘들 만큼 무거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삶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자연풍경 17.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