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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00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5. 1. 11. 07:40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00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9l_ByFE_zGg
604.
탄트라 비전 세 번째 차트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3가지 수행법이 있다.
우주는 그대를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고, 그대의 죽음에 대해서 무심하다. 그대의 삶과 죽음은 우주와 무관하다. 그대가 우주의 유일한 주인공은 아니다. 그대가 존경하든 말든 우주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그토록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어리석음이 계속 남아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무의식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어디에도 없다.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모든 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모든 것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대의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미래를 꿈꾸고 과거의 추억에 집착한다. 그러나 붓다는 오늘을 산다. 그는 바로 이 순간에 존재한다. 일단 그대가 뭔가를 원한다면 거기에는 항상 불만족이 뒤따른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메꿀 뭔가가 또 필요하다. 모양만 바뀔뿐 욕구불만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뭔가가 되려는 것을 포기할 때 지금 있는 그대로를 전적으로 받아 들이면 긴장도, 번뇌도 없어진다. 그대는 푹 쉬게 되고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곧 無爲의 마음이다. 자신의 중심에 이른 마음이다.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마음이 그 기능을 멈출 때 그대는 중심에 이르게 된다. 즉 일상에서 벗어나거나 충격적인 일을 당하는 순간이다. 섹스, 도박, 마약 등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다. 이 경험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지 그대가 의도해서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의도하는 것은 이미 마음의 작용이 거기까지 손을 뻗쳤다는 뜻이다. 매일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대의 마음이 어떤 틀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즉 그대의 마음이 미래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이 새로워 질 것이다. 사실 마음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새롭고 신선하다. 변하기 때문이다. 늙고 진부한 것은 오직 마음 뿐이다. 그것은 항상 오래된 것으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마음은 과거와 미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은 현재를 필요로 한다. 생명은 항상 존재의 축복이 담겨 있다.
탄트라 비전 세 번째 차트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수행법 열> 10.사랑의 달콤한 애무를 받을 때 사랑 자체가 되면 어여쁜 공주는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나 미래가 없으면 우리는 이 순간을 현재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재를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른다. 시간은 오직 과거와 미래 뿐이다. 현재는 시간에 속한 부분이 아니다. 현재는 영원의 부분이다. 흘러간 것과 다가올 것이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존재하는 상태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이다. 만약 그대가 과거에서 논다면 결코 현재로 들어올 수 없다. 과거는 항상 미래로만 통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들어오는 문은 없다. 그리고 그대가 현재 속에 있다면 절대로 미래로 들어갈 수 없다. 과거와 미래는 서로 통하지만 현재는 오직 현재 속에서만 깊어질 따름이다. 그대는 더더욱 현재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사랑이 그곳으로 들어가는 첫째 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서 그대는 시간의 궤도를 벗어날 수 있다. 보통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 뒤엔 좌절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다. 그대가 어떤 사람을 시간 속에서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실패할 것이다. 시간 속에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 사랑하려면 사랑 자체가 되라. 영원 속으로 뛰어들라. 애무나, 키스나 하건 받건 바로 애무 그 자체가 되라. 키스 자체가 되라. 그대가 행위자로 거기에 남아 있다면 그대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 되고 그대의 사랑은 거짓이 될 것이다. 그대가 사랑 속에 있을 때 따로 존재해 있어서는 안된다. 거기엔 오직 사랑만 남아야 한다. 사랑 속에 녹아 들어야 한다. 행위에 깊이 빠져들 때 더 이상 행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이스트들은 사랑할 수 없다.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설명할 수는 있어도 사랑에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 자체가 되라. 포옹할 때 포옹 자체가 되라. 그대 자신을 잊어버리고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라. 그때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뛰며, 피가 도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돈다.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보며 손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움직인다. 사랑은 깊은 명상이다. 섹스는 하나의 씨앗이며 사랑은 그 꽃이다. 섹스는 섹스로 남아 있으면 안된다. 그것은 사랑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그것은 행위하는 자를 잊어버리고 행위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을 뜻한다. 사랑 또한 사랑으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빛으로, 명상적 체험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그것은 궁극으로, 신비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대의 사랑도 나의 사랑도 아니며 그 누구의 사랑도 아니다. 그저 사랑일 뿐이다. 그대가 거기에서 사라질 때 궁극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사랑의 꽃을 피우는 에너지가 된다. 그대의 마음이 억압 때문에 성욕으로 가득찰 때 그대는 다른 사람을 속이기 시작한다. 그때 상대방은 그대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그러나 섹스가 사랑으로 변형될 때 상대방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대는 더 이상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때는 상대방이 목적이 되고 그대는 사라진다. 그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깊은 체험을 하게 된다. 서로를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가 된다. 그때 두 사람은 서로 돕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의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그때 그것은 하나의 명상이 된다. 그 속에서 그대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다면 사랑하는 자는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게된다. 그렇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은 그대의 것이다.
탄트라 비전 세 번째 차트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수행법 열하나> 11.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느낄 때 감각의 문을 닫아라. 그때 그것이 일어난다.
몸에 어떤 종류의 고통(부상, 두통...)이 있을 때 이 방편이 적용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감각의 문을 닫을 수 있는가? 먼저 그대의 눈을 감아보라. 그리고 그대가 맹인이며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라. 귀를 막고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라.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 모두 그렇게 해보라. 그때 호흡을 멈추어야 한다. 호흡이 멈추어지면 모든 감각은 호흡이 멎어 있는 동안 일시적으로 멈춘다. 개미가 어디에 있느냐? 갑자기 그대는 저멀리 나가 떨어진다. 돌처럼 되라. 그대의 육체는 그대에게 속한 부분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부분이다. 그대가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닫혀질 때 그대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닫혀진다.
탄트라 비전 세 번째 차트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수행법 열둘> 12.침대에 눕든지 자리에 앉든지 그대 자신을 무중력 상태에 있게 하라. 그때 마음은 넘어선다.
무게를 가진 몸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는 본래 무게가 없다. 무게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물질은 무게를 갖고 있고 그대는 물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대는 비물질적 존재인 것이다. 그대가 무게를 느끼지 않을 때 그대는 마음마저 초월한다. 깊은 명상 속에서 그대가 자신의 육체를 잃어버릴 때 무중력 상태를 느끼게 된다. 그때 종종 육체도 함께 떠오르는 수가 있다. 갑자기 그대는 육체가 아니다. 물질이 없는 세계 속에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무게가 없는 것은 육체가 없다는 뜻이다. 그때 그대는 마음도 초월할 수 있다. 마음은 육체의 부분이다. 마음은 물질이다. 물질은 무게를 갖는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어떤 무게도 갖지 않는다. 사념(마음의 일상적 상태)-사색(방향성)-집중(요가, 마음의 한 점)-명상(無心의 상태, 마음이 사라진 상태) 공간은 본래 거기에 있었다. 단지 잠시동안 가구에 의해서 점유된 것 뿐이다. 가구를 치울 때 공간이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저 공간이 복구된 것일 뿐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무심의 공간이 마음의 조각들(사념, 생각)에 의해서 점유되어 있다.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치우면 무심의 공간을 다시 복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이 바로 명상이다. 마음의 조각들을 점차로 치울 수도 있고 갑자기 없앨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는 텅 빈 공간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구를 조금 치워 버리면 그 자리에 다른 새 가구를 들여 놓는다. 옛 생각들을 조금씩 치워버리면 새로운 생각들이 그 자리를 메꾼다. 그래서 그대는 영원토록 완전히 텅 빈 공간을 접할 수가 없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모든 가구들을 치워버릴 수도 있지만 그대는 가구가 있는 방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가구 없는 방을 상상도 못해 봤기 때문에 텅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 마져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의 결심에 달려 있다. 그대가 준비되지 않는한 갑작스런 방법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대는 현재 속에 존재해 본 적이 없다. 항상 과거 아니면 미래에 머물러 있었다. 그대가 처음으로 현재 속으로 들어오면 자신이 미쳤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갑작스런 방법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 즉 사념-사색-집중-명상.
단기 4358년 을사년 새해의 태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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