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9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12. 25. 22:05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99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NFo9RJqDrXk
603.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 5가지 수행법
그대는 호흡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공기의 흐름을 느낄 뿐이다. 바다의 파도도 바람을 볼 수 없다. 단지 물 위에 생겨나는 바람의 효과만 볼 것이다. 그대는 콧구멍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만을 느낄 뿐이다. 그것은 호흡 자체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이다. 먼저 공기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 흐름을 완전히 인식하게 될 때 호흡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호흡의 정지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키스하면 먼저 촉감부터 느낀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랑을 느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호흡도 마찬가지이다. 호흡의 촉감만을 느끼지 말라. 그러나 먼저 공기의 흐름에서 생기는 촉감부터 느껴라. 그대의 감각은 점점 예민해지고 관찰력 또한 섬세해질 것이다.(비파사나) 그리고 계속 정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촉감이 아니라 호흡 자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호흡이 멈추는 순간이 나타나며 호흡 사이에 간격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호흡의 회전점이 보일 것이다. 이것이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은 바로 그대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바로 장애물이다. 그대만 사라진다면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실제로 거기에는 어떠한 함정도 문제도 없다.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은 그대가 마음을 통해서 실체를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쉴새없이 문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자체에는 절대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대는 문제없이 사물을 볼 줄 모른다. 그대가 무엇을 보든지 거기에 문제가 만들어진다. 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수행법 다섯> 5.미간에 집중하고 마음을 사념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에 있게 하라. 정수리까지 호흡의 정수로 가득차게 하라. 그리고 정수리에서 빛이 쏟아지듯 호흡의 정수가 쏟아지고 있음을 느껴라.
반드시 두 눈을 감고 행하라. 그대가 제3의 눈에 한번 집중하게 되면 그때는 사념의 주시자가 될 것이다. 성 속에 있을 때 성이 되고, 욕망 속에 있을 때 욕망이 된다. 제3의 눈을 통해서 그대는 사념들을 구경할 수 있다. 즉 사념의 이동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분노가 있으면 분노를 볼 수 있다. 방관자로서 분노를 하나의 사물처럼 볼 수 있다. 즉 주시자가 되는 것이다. 그대의 몸에 통증이 일어날 때 이를 주시하라. 그것을 그대 자신이라고 여기지 말라. 동일시하지 말고 방관자, 주시자가 되라. 그렇게 하면 그대의 의식은 제3의 눈에 고정될 것이다. 우리는 호흡을 할 때 공기를 통해서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는 단지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공기라는 매개체에 실려오는 프라나(prana, orgone, elan vital)에 의해서 호흡한다. 이것들은 비물질적 존재다. 공기는 땅 속을 뚫고 들어갈 수 없지만 프라나는 가능하다. 이를 안다면 매개체(공기)가 필요없이 그대는 프라나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제3의 눈에 집중함으로써 그대는 호흡이 아니라 호흡의 정수, 즉 프라나를 느낄 수 있다. 이 프라나를 느낄 수 있다면 그대는 삼사라(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이 호흡의 정수를, 프라나를 느낄 때 정수리까지 가득 넘치고 있다고 상상하라. 그대 머리 전체가 이 호흡의 정수로 가득 채워진다고 상상하라. 그 다음 빛이 쏟아지듯 정수리로부터 쏟아지고 있다고 상상하라. 그러면 그대는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것이 내적인 재탄생의 의미이다. 제3의 눈에 집중되어 있을 때 프라나가 아침 햇살처럼 그대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넘치고 있다고 상상하라. 이 상상만으로 프라나의 이 충만은 그대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수행법 여섯> 6.일상적인 활동 속에서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 항상 유념하라. 이 수련을 계속하면 머지않아 그대는 다시 태어나리라.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격에 집중하라. 들숨이 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리고 날숨이 다시 돌아오기 직전, 거기에 틈이 있다. 호흡의 정지 상태가 있다. 바로 이 틈에 대하여 계속 지켜 보아라. 이 수련은 반드시 일상의 활동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밥을 먹으면서, 걸어 가면서, 잠자면서도 두 호흡 사이의 그 틈을 지켜보라. 그대는 마치 붓다나 도둑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뿐이지 그대 자신이 결코 붓다나 도둑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행동하되 그대의 의식은 언제나 그대의 중심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즉 그대의 의식은 끊임없이 호흡과 호흡 사이의 간격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그대의 삶은 드라마에 나오는 하나의 배역이다. 이 사회가 그대에게 맡겨준 배역인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그 배역은 또 바뀐다. 그런데 그대는 하나의 배역을 그대 자신과 동일시해 버렸다. 그래서 이 방편을 통해 바로 그 동일시를 부숴버려야 한다.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수행법 일곱> 7.만져지지 않는 호흡의 정수는 미간에 있다가 그대가 잠드는 순간 가슴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꿈의 세계를 넘고 죽음의 세계까지 넘어간다.
제3의 눈을 알게 되면 만져지지 않는 호흡의 정수, 프라나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프라나가 가슴의 한가운데에 닿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꿈의 세계, 그리고 죽음까지도 넘어가게 될 것이다. 호흡 속에서 프라나를 느껴라. 미간을 집중하면 이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숨결 사이의 틈을 집중해도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미간보다는 좀 어렵다. 단전에 집중하게 되면 역시 가능하지만 좀더 어렵다. 그러므로 호흡의 만져지지 않는 부분을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제3의 눈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을 느낄 수 없다. 호흡의 만져지지 않는 부분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공기의 흐름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와 프라나가 같이 들어왔다가 숨을 내쉴 때 공기만 빠져 나가고 프라나는 몸 속에 남는다. 임종이 가까울 때는 이와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그대가 프라나를 느낄수 있다면 자신이 죽을 때를 미리 알 수 있다. 호흡은 더 이상 프라나를 운반해 오지 않는다. 프라나의 이동이 바뀌는 6개월 뒤에 그대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라나가 심장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껴라. 프라나를 느끼면서 잠들도록 하라. 이를 체험하게 되면 꿈 속에서도 의식은 각성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꿈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모른다. 꿈 꾸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는 위쪽으로 제3의 눈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눈도 동일하다. 제3의 눈 쪽으로 향한 이 집중이 꿈을 현실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꿈꾸고 있는 동안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이 꿈이라고 느끼는 것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이다. 또한 각성하게 되면 꿈임을 알 수 있고 그러면 꿈을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꿈의 마스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그대는 결코 꿈꾸지 않게 될 것이다. 꿈은 정지될 것이다. 더 이상 꿈 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잠의 차원은 변형된다. 긴 잠(죽음) 후에 그대는 완전히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몸을 받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꿈이 없는 이 잠을 안다면, 꿈 속에서 꿈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제 죽음의 공포는 없을 것이다. 이 방편을 수련하면 꿈을 멈추게 할 수도, 다시 꾸게 할 수도 있다. 이때 그대의 잠은 죽음과 동질이다. 여기서 그대는 죽음은 일종의 수면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꿈이 끝날 때 동시에 죽음도 끝나야 한다. 죽음이 한낱 잠과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대는 죽음 그 자체와 연결될 수 있다. 이제 그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대가 태어날 곳과 태어날 몸을 선택할 수 있다. 꿈의 마스터며 동시에 탄생의 마스터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꿈의 세계를 넘고 죽음의 세계까지 넘어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꿈의 통제자가 아니다. 탄생의 선택자가 아니라 그것들의 희생물에 불과하다.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수행법 여덟> 8.지극한 경배와 헌신으로 호흡의 두 교차점에 집중하라. 그리고 ‘아는 자’를 알아라.
들어오는 호흡에는 나가는 호흡 쪽으로 회전하는 하나의 교차점이 있다. 이 방편은 머리보다 가슴 쪽에 서 있는 사람이 수련해야 한다. 그대의 호흡 사이의 틈을 경배하라. 몸은 사원이다. 몸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다. 몸을 하나의 사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몸은 성스러움, 그 자체이며 영원히 풀 수없는 신비이다. 그대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그대 속에서 호흡하는 것이다. 먹을 때나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이 그대를 통해서 먹고 움직이는 것이다. 태도의 이 변화를 계기로 모든 것이 변형된다. 음식을 먹는 그대의 행위는 신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행위로 바뀐다. 목욕을 할 때, 역시 신이 그대 몸을 빌어서 목욕을 한다고 느껴라.
탄트라 비전 두 번째 차트 <#다섯 개의 신비>
<수행법 아홉> 9.죽은 듯이 누워있으라. 화가 날 때 그 분노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눈썹하나 움직이지 말고 응시하라. 빨고 싶으면 빨아라. 그러나 ‘빠는 자’로 남지 말고 ‘빠는 그 자체’가 되라
감정은 몸에 동작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죽음을 느껴라. 그리고 그대 몸을 움직이게 하는 어떠한 감정도 따르지 말라. 그 감정들을 그대로 거기에 방치해 둬라. 그리고 그대는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죽음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 예를들어 몇 년이고 천정만 응시하라. 이제 행위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라. 뛰어들어서 ‘빠는 그 자체’가 되라.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수련하라. 달릴 때는 달리는 자가 되지 말고 ‘달리는 그 자체’가 되라. 즉 달리는 순간을 느껴라. 그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진행과정이다. 그대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격정 속에 오직 달리는 그 진행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빨아야 할 대상과 빠는 자 사이에 빠는 행위가 있다. 이 빠는 행위가 바로 진행 과정이다. 매사에 이를 수련하라. 물을 마셔도 마시는 행위 그 자체가 되라. 물이나, 목마름이나, 그대자신 마져 잊어버려라. 빠는 행위 그 자체가 된다면 그대는 갓 태어난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린아이가 될 것이다. 그대의 행위는 이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그 첫 번째 진행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빠는 행위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별짓을 다한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빠는 행위 그 자체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말연시 즐겁게 보내세요.
을사년 새해에 뵙겠습니다.
캠트레일 풍경
반응형'패러다임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01 (교재 공개) (0) 2025.01.15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00 (교재 공개) (0) 2025.01.11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8 (교재 공개) (1) 2024.12.20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7 (교재 공개) (1) 2024.12.12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6 (교재 공개) (1)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