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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1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10. 3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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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91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ICdCCuoErwU

     

     

    595.

    두 개의 에너지가 어떻게 하나로 합일되는지 잘 지켜보라. 그러면 생각도 사고도 없다. 일단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외부세계는 그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떨쳐버릴 필요가 없다. 스스로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내면에서는 분리가 필요없다. 내적인 결혼을 하면 그곳에 이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대가 세계의 모든 여성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해도 만족이란 없다. 내면에 있는 여성이 모든 여성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 다 모여도 한 여성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 어떤 남성도 내면의 남성과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그대는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사회는 개혁하거나 타인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 자신이 빛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빛을 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는 꼴이 된다. 그대가 먼저 변해야 세상도 변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세상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자기를 아는 것은 투명한 마음에서 일어난다. 지식으로 가득찬 마음,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으로 가득 찬 마음,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니다. 말이 없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자기 자신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한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거울처럼 비칠 수 있도록 그것을 지각할 수 있는 맑고 투명한 마음이다. 일단 그것이 일어나면 즉 빛이 되면 그때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그 전에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될 수 있으면 그대는 하나의 축복이 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조언하지 말라. 누구에 대해서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라. 그대가 빛으로 가득 차 있을 때만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실 그대는 도와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땐 빛이 전구에서 흘러 나오듯이, 꽃에서 향기가 피어나듯이, 밤에 달이 빛나듯이 빛은 자연적으로 흘러나온다. 현재의 순간을 살되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으로 전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삶 전체를 바라보라. 전체는 변함이 없다. 외부의 형태가 변할뿐이다.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투영하지 않는 눈이 필요하다. 그대가 보는 것은 단지 예수에게 비친 그대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진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순간, 다치는 것은 그대 자신이다. 그대가 여러 시대를 거쳐, 수많은 삶을 거쳐 찾아 왔던것은 무엇이든 이미 거기에 있다. 그것은 그대의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 이면 즉 내면에 있다. 외적인 소유로 인해 그대는 내적인 공허함을 인식하게 된다. 즉 외적인 부유함은 내적인 빈곤을 느끼는 배경만을 제공할 따름이다.

    선은 돈오이고 도는 점수이다.

    일관됨이란 나의 오늘이 나의 어제에 순종해야함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과거와 일관된 상태로 머문다면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성장은 일관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진정한 질문은 그 속에 진정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즉각적이고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진정한 질문(오직 하나뿐이다)은 결코 질문될 수가 없다. 그것들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리석은 질문들은 그것들이 버려지기 위해서 질문되어야 하고, 어리석은 질문들을 버리는 것이 어리석음을 버리는 것이다.

    범주는 꿈의 세상에 속한다. 사람은 단지 하나의 지켜보는 자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들이 구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올라 가야만 한다.(기준이다. 보살의 원리)

    깨달음이라고 하는 바로 그 생각은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큰 농담이다. 이미 거기에 있는 어떤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농담이다. 그것은 그대가 이미 있는 곳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기에 전혀 없는 어떤 것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합리한 노력이다. 깨달음은 그대의 본성이고 근원이며 그대의 에너지 그 자체이다. 그대의 내면으로 향한 여행은 참다운 여행이 아니다. 모든 여행이 사라질 때, 모든 것이 실패했을 때 절망 속에서 무너질 때, 무너짐 그 자체가 변형의 순간이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탐구자만이 남겨진다. 그 어떤것도 잡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그대는 갑자기 그 잡는 자를 인식하게 된다. 그 어떤 사물에도 관심이 없을 때(, 깨달음, ) 오로지 주관성만이 거기에 있다. 그대는 집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웃음이, 왜냐하면 그대는 이미 거기에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론을 세우는 데는 경험이 필요치 않다. 오직 체험만이 그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즉 그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대는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말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손가락은 달이 아니며 손가락을 숭배하지 말라. 기독교, 이슬람교, 흰두교, 불교, 불교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붓다를 숭배하고 있다. 이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그대가 색깔있는 안경을 쓴다면 그대는 그와같은 색깔로 세상을 볼 것이고 저마다 자기가 쓴 안경의 색깔로 세상을 본다. 만약 어떤 진실이 언어를 통해서 말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맞지 않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닌 허구이다. 단어는 경험을 담을 수 없다. 에고는 항상 관심을 갈망한다. 존재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너무나 만족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든 말든 누가 신경쓰겠는가? 그들은 그들 자신만으로 넘쳐나고 그들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명상을 하는 것은 단지 초심자의 자세이다. 가장 높은 형태의 명상은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저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뭔가를 하는 순간 그대는 동요되고 긴장되며 에고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것이 신비이다. 신비를 찾으러 깊이 파헤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명상이 되면 모든 소리가 간접적으로 들린다. 메아리처럼, 그것들은 더욱 비실체, 비물질이 되고 그들의 실재는 없어진다. 그대는 그것들의 무중력을 볼 수 있다.(사람들 사이의 틈을 볼 때 뭉개져 보이듯이) 전 존재가 메아리가 된다. 환영은 비현실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은 단순히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비실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꿈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존재가 꿈이 된다. 매우 분명하고 또렷하다.왜냐하면 그대는 깨어 있기 때문이다. 지켜 봄으로 가능하다. 그런 다음 내부의 빛이 눈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이제 그대는 나눌 수 있다. 그대는 전 존재에게 나눌 수 있다. 일단 그대가 영혼을 볼 능력이 있으면, 그대는 물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 다를 함께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세상을 환영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왜냐하면 신비가들은 그들이 보았던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신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이라는 것을. 세상을 보는 자는 결코 신을 보지 못하고, 신을 보았던 자는 그들에게는 세상은 사라졌고, 세상은 단지 오해였을 뿐이고 물질은 착시이다. 신비가들은 세상이 단지 하나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대는 불필요하게 두려워하고, 달아나고,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생각, 하나의 오해이다.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신만이 있다. 전체가 오로지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정한 경험은 말해질 수 없고 말해진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상태이며 상대를 찾고 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홀로있음은 상대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충분한 순간을 의미한다. 좋건 나쁘건 습관 그 자체를 버려라. 모든 습관은 나쁘다. 습관없이 살아라. 그러면 그대는 자유롭게 순간에서 순간으로 산다. 그대의 어머니가 주었던 잠옷이 더 이상 맞지 않을 때 버려야 한다. 그대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옷을 때리거나 불에 태우지도 않고 어떤 야단법석을 떨 필요도 없다. 사람은 성장하는 게슈탈트이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일어나고, 매일 그대는 새로운 것을 흡수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옛것을 버려야 한다. 즉 그대는 옛 프로그램을 벗을 때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가혹해지지도 않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키울 때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주지 말고 이해를 주라. 고정된 규칙이나 지식이나 그대들이 살아왔던 세상이나 어떤 패턴도 강요하지 말라. 인식능력을 주고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를 주어라. 그들은 전적으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그대가 주는 것은 무엇이나 곧 시대에 뒤진 것이 되고 그들에게 짐이 될 것이며 그들이 만약 그것을 버린다면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그대를 세상 속에 얽히도록 만드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무의식이다. 문제는 어떻게 섹스를 중단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의식을 어떻게 중단시킬 것인가이다. 의식적이 되고 그대의 자연스러운 존재가 그 전체적인 흐름을 가지게 하라. 그리고 섹스는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그대는 그것으로 태어났고, 모든 육체의 세포가 성적 세포이다. 그것을 억압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 그러나 전적으로 다른 초월이 있다. 그대가 깨어서 그대의 오르가즘의 순간을 인식한다면 그대는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볼 것이고 그것이 그 아름다움이다.

    예술은 옛 가치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은 이미 이전의 우주에서 생긴 전 범위의 바이브레이션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바이브레이션에서 원자와 소립자로 구성된 물질들이 출현한다. 우리는 다채로운 바이브레이션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주 전체는 이러한 바이브레이션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일부다.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인 우리는 물질로 바이브레이션을 창조한다. 가령 우리는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집을 짓는다. 사고가 물질이 된 것이다. 우리는 바이브레이션을 실행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다시말해 모든 전자들에 숨겨져 있다. 단지 그것을 찾아 낼 방법만 알아내면 된다.

     

     

    짧은 영상과 사진

    춤추는 나뭇잎 / 곤충의 사랑 / 구름속의 달 / 앞구름과 뒷구름

    구름속의 태양

    춤추는 나뭇잎.mp4
    4.39MB
    곤충의 사랑.mp4
    5.52MB
    구름속의 달.mp4
    10.98MB
    앞구름과 뒷구름.mp4
    12.5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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