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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82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4. 8. 2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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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82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Q-DzfZpWARw

     

    - YouTube

     

    www.youtube.com

     

     

    586.

    이 세상을 저버리는 것은 신을 저버리는 것이다. 즉 궁극을 저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들은 궁극이 반사된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구도자는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받아 들인다. 이 세상은 신에게 속한 것이며 궁극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어떤 행위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어떤 의식을 거행하든지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다. 필요한 것은 이해이지 예배의식이 아니다. 그대는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 자신의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독특한 존재이다. 그대에게 맞는 독특한 것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대의 지문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그대의 영혼 또한 독특한 것이다. 그대가 자동차가 아닌 한 그대의 독특한 점은 바로 존재계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형식적으로 되지 말라. 그대의 손 안에 허공만 남을 때 그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상태이다. 허공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허공에서부터 나왔다. 허공은 근원을 의미한다. 씨앗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빈 공간만이 있다. 텅빈 공간 속에서 나무가 나온다. 그 공간 속에서 우주 전체가 나왔다. 무에서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그대조차 사라지고 없을 때 그대는 존재계의 영원한 지복 속으로 들어간다.

    몸짓을 움직일 때 존재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머리는 혼자서 돌아간다. 다른 사람을 관찰할 때 그의 말에 집착하지 말고 그의 행동을 보라. 그의 동작 속에 그의 진실이 담겨져 있다.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을 통해서는 그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몸의 다른 부분은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몸의 움직임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진실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아무것도 자신 외에 다른 것을 상징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독특하며 고유한 존재이다. 어떤 사람도 복사물이 아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그대가 들은 것이 내가 한 말과 똑같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대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그대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이해한다. 그대가 어떤 책을 읽을 때 그대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만 이해하게 된다. 그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의 생각이 그 책의 내용과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대는 그대의 과거에 따라서 그 책을 해석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오직 붓다만이 현재 속에 산다. 모든 것은 그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대가 무엇을 안다면 그것은 그대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고 선택한 것이다. 이원성으로해서 존재계가 분열된 것이다. 즉 순수함이 사라진 것이다. 도덕성은 시대의 조류에 따른다. 그러나 순수함은 시대를 초월한다. 도덕성은 사회의 숫자만큼이나 많이 존재하지만 순수함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모든 사회를 초월한다. 도덕적인 사람은 제각기 그 맛이 다르다. 또한 그 사회의 시류에 따라야 한다. 사회가 변하면 도덕도 변한다. 그러나 순수함은 영원하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초월한다. 종교적인 사람과 종교인은 다르다. 도덕성은 항상 공격적이다. 즉시 반박한다. 그것은 두려움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대가 자신을 방어하려고 할 때 그것은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대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대가 하는 행동은 전부가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성직자들은 붓다처럼 되라고 한다. 아무도 그대 자신이 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세상이 전부 배우일 뿐이다. 아무도 진짜가 아니다. 그대가 배우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할 수 없다. 그대가 무아가 되지 않는 한 그대는 결코 진아가 될 수 없다. 어떤 가치관도 도덕성도 기준도 에고도 갖지 말라. 삶은 흘러가는 흰구름이다. 가야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성취해야할 과제도 없다. 공부란 죽은 것이다. 그러나 체득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체득하는 것은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지식은 기억의 부분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그대의 존재를 변화 시킨다. 그대에게 존재를 인식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 역시 결정권은 그대에게 달려있다. 그대의 모든 생각들은 빌어 온 것이며 낡고 오래된 것이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그대가 불만족스럽다는 뜻이다. 그대가 지금 여기에서 불만족스런 것은 과거에 희망을 품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었다. 마음은 그대에게 약속은 해 줄 수 있지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지는 못한다. 내면을 밝히기 위해 어떤 촛불도 켤 필요가 없다. 촛불은 오직 외부를 밝히는데만 사용될 뿐이다. 그대가 추구하는 깨달음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제공하는 모든 것들은 외부적인 것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바깥세계를 밝히기 위한 것이지 그대 내면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갈 수 없다. 빛은 보다적은 어둠이고 어둠은 보다적은 빛이다.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그대는 비진리로부터 진리로 갈 수도 없다. 이것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모든 비진리는 비진리에 관해 진실된 어떤 것을 갖는다. 그리고 모든 진리는 표현될 때 비진리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대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갈 수 없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삶의 정점이다. 죽음과 삶은 공존한다. 존재는 변증법적이다. 그것은 항상 반대되는 것을 갖는다. 사람들은 신을 신성한 것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악마 또한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신과 악마는 둘 다 가설일 뿐이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을지 모르지만 악마는 세상을 경영하고 있다. 너무나 완벽하게, 너무도 악마적인 취향에 맞게 경영하고 있다. 악마 devil는 신성 divine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면 깜작 놀랄 것이다.

    노력을 통해 오는 도덕성은 비도덕적이다. 옳고 그름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의 문제다. 그대가 깨어있는 의식으로(자발적으로) 행위하느냐 아니면 로봇처럼 무의식적으로 행위하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이 세상엔 전쟁이 없을 것이다. 온 인류는 한 가족이다. 국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그대에게 신앙을 요구하지 않고 체험을 요구할 것이다. 나의 진리는 결코 그대의 진리가 될 수 없다. 진리를 건네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마호메트의 진리는 마호메트의 진리일 뿐이다. 그대에게 있어서 그 진리는 단지 신념으로 남을 뿐이다.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체들에 대한 집합적인 명칭이다. 신은 특정한 사람이 아니다. 삶에는 삶 자체 이외의 어떤 목적도 없다. 삶은 신 자신에 대한 또 하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은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다.

    왜 죽은 성인들은 숭배받고 살아있는 성인들은 비난 받는가? 그 이유는 죽은 성인들은 종교적인 존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 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은 웃지도 않고 즐거워 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춤추지 않고 존재하는 것과 어떠한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그들은 실제로 완전히 삶을 포기했다. 그들은 숨쉬지 않는다. 그들의 가슴은 더 이상 고동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완벽하게 종교적인 인물이 되었다. 이제 그대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다. 살아있는 것이 죽은 것을 숭배한다. 현재가 과거를 숭배한다. 삶은 죽은 것을 숭배하도록 강요 당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오로지 삶만을 신뢰한다. 그들에겐 신도, 사원도, 신성한 경전도 없다. 그들에겐 삶이 전부다.

    삶에는 매순간이 축복이 되는 전체적인 태도로 사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목적에 대한 생각은 마음 속에 미래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어떤 목적이든 미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든 목적은 그대가 갖고 있는 유일한 실재인 현재를 뺏아간다. 미래는 단지 그대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는 그대 기억의 모래밭에 남겨진 발자국일 뿐이다. 기억이나 상상력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매순간을 새롭게 사는 것, 이것이 유일한 종교이다. 그 때에만 그대는 순수하다. 순진무구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유일한 순진무구함을 신성이라고 부른다.

    천국을 위한 삶은 단지 탐욕일 뿐이다.

    그대는 자신의 손안에 있는 실재를 어떤 증거도 없는 상상의 천국의 발아래에 제물로 바치고 있다. 삶의 목적이 삶 자체라면 그때엔 삶에 대한 존경이 바로 그대의 종교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경하되 절대로 간섭하거나 강요하지 말라.

    우리는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우주라는 오케스트라의 일부분이다. 이 존재의 음악을 느끼는 것이 유일한 종교이다. 진정한 종교는 경전도 신의 형상도 어떤 가설도 갖지 않고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는다. 오로지 침묵만을 간직할 뿐이다. 그대가 가슴으로 웃을 때 마음은 멈춘다. 마음은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대의 본성이다. 다만 사슬(권력, 특권, 지위, )에 묶여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사슬은 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대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신이 존재하는 한 인류는 평화로울 수 없다. 신은 그대의 가장 큰 사슬이다.

     

    풍경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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