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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80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8. 7. 23:00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180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s3Nur6oKnTg
584.
眞人은 ‘나’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임을 이해한 자다. ‘나’ 그것은 오직 문제만 일으킬 뿐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버린다. 사실 그것을 버릴 필요가 없다. 그대가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거기 더 이상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그는 생활하지만 ‘나’는 없다. ‘그것’이 그를 통해 삶을 산다.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남의 눈치도 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믿음을 갖는다. 진정한 이해에 도달한 사람은 신뢰할 뿐 믿음을 갖지 않는다. 신발이 발에 꼭 맞을 때는 발의 존재를 잊는다. 건강할 때 그대는 자신의 육체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는 잊혀진다. 어떤 병이 있을 때 그때 그대는 육체를 잊을 수 없다. 즉 늘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도의 완전한 사람 全人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반면에 그대는 그대 자신을 안다. 왜냐하면 그대는 병들었기 때문이다. 에고는 병이다. 병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대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대가 깊이 병들어 있다는 뜻이다. 병이 에고를 만든다. 완벽하게 건강한 자연인은 완벽하게 자신을 잊는다. 그는 구름과 같다. 산들바람과 같다. 바위와 나무와 새와 같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처처럼 오직 병든 것만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보호와 안전을 위한 메카니즘이다. 육체가 건강하면 그대는 육체없는 존재가 된다. 어떤 형태로든 육체가 의식된다면 그 부분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똑같은 것이 적용될 수 있다. 그대의 의식이 건강할 때 거기 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그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누구이다’라는 것을 줄곧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키지 않는다.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 언제나 탐욕과 폭력을 비난한다. 비폭력을 목표로 삼는 자들이 훨씬 더 폭력적이고 금욕주의 자를 목표로 삼는 자들이 훨씬 더 성적이고 변태적이다. 구분하지 말고 선택도 하지 말라. 오직 자연스럽게 오면 오고 가면 가는 것이다. 분노가 찾아오면 그냥 화를 내라. 분노가 가버리면 가게하라. 후회하지도 말고 계속 마음속에 담아 두지도 말고 상황을 연장하지도 말라. 그것에 반대하지 말라. 그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오직 자연이, 그것이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나는 기쁨의 삶을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조건들은 결코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하나의 이상을 만들고 나서 그 이상처럼 되기를 원한다. 그때 그대는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그대의 꿈꾸는 마음 때문에 그대의 실체는 부정된다. 꿈이 그대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그러지말고 이 순간 신처럼 되라.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에 그대는 분노한다. 누군가 그대를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은 오직 변명일 뿐이다. 그대가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 없다. 무엇이 부족한가. 그대는 살아있고 숨쉬고 의식을 갖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신처럼 되라. 그대는 이미 신이다. 그대가 이미 신이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가 신이 될 수 있는가? 그대가 이미 인간이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가 인간이 될 수 있는가? 그대는 오직 이미 그대인 것밖에 될 수 없다. 무엇으로 된다는 것은 곧 이미 그곳에 있는 그 존재를 향해 다가간다는 뜻이다. 육체속의 성을 억압한 사람은 정신적으로 성적이 된다. 그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성에 지배되며, 이것은 하나의 병이다. 그대 만일 배고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러나 만일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강박관념이고, 하나의 병이다. 모든 것이 마음속에, 생각속에 침투해 있다. 남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그대 자신에 대해서는 명상(無心)하라. 마음은 그대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줄 수 없다. 마음이 그대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따라서 자기자신에게 방향을 돌릴때면 언제나 문제에 부딪칠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음은 전혀 쓸모가 없다. 쓸모없을뿐더러 방해가 되고 해롭기까지 하다. 따라서 그것을 버려라. 마음(사념)에 귀기울이지 말고 내면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라. 주변은 움직이지만 중심은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과 싸우지 말라. 단순히 그것을 옆으로 제쳐 놓아라. 그냥 신발을 벗어 놓듯이! 어떤 이상도 만들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갈등과 비난과 도피와 투쟁을 만든다. 삶은 살아야 하는 신비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대가 매순간 싸울 자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겁쟁이라는 뜻이다. 싸움은 내면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작전이다. 또한 용감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곧 그대가 실제로는 용감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바보는 언제나 자신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대의 사랑이 진정하지 않을 때 그대는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대의 삶에서 그대는 모든 차원에서 위장을 하고 있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언어가 필요없다. 그대의 존재 전체가 그것을 말할 것이다. 그대가 바라보는 방식이 그것을 표현할 것이다. 사랑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자신 있다’라고 말할 때 그대는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거짓된 것일 때 그대는 그것을 자각하고 느낀다. 뭔가 진실한 것일 때 그대는 그것을 잊는다. 그대가 숨쉬고 있는 것을 자각하는가? 뭔가 잘못되어 폐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을 자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을 때 그대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전세계를 적으로 삼고 있다면 그것은 그대가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존재의 근원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세계가 우호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대의 추한 것들을 말하고 표현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라. 그러면 그것은 분산되어 버린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숨기라. 그것이 더욱 깊이 들어가서 그대의 존재의 근원과 만나게 하라. 그러면 그것은 성장할 것이다. 그대는 홀로 길을 가야만 한다. 그대 만일 군중을 향해 시선을 돌리거나 군중이 그대를 따라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자기 전시에 매달린다면 그대는 하나의 상품, 하나의 물건으로 전락한다. 그대는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존재 깊숙한 심연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의 거대의 심연이다. 누구도 그대와 함께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다. 예수를 사랑하고 붓다를 사랑하라. 그러나 그들을 모방하지 말라. 모방할 때 그대의 존재를 상실한다. 그대는 남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대가 그 진리를 획득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그대의 재능을 드러내 보일 때 그대는 상대방이 그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즉 아무도 그대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때 진정한 신비가 그대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즉 그대는 진정한 신비가 된다. 그대가 어떤 용도로 이용될 때 그대는 하나의 물건이 된다. 이용될 수 없을 때 그대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의사다! 그것은 사회가 그대를 의사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의 기능이지 인격이 아니다. 즉 그대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용도다. 사회는 그대를 한 사람의 의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모든 재능을 떨쳐버리고 한낱 평범한 존재가 된다면 아무도 그대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아무도 그대를 사용할 수 없다. 그때 그대는 사회를 초월한 것이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그대는 비로소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대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스스로 일할 것이다. 그것은 그대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꽃 피어나는 것이다. 장미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향기를 맡고 그 꽃을 감상할 사람들을 위해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꽃피어날 뿐이다. 도의 사람은 그 스스로 꽃 피어난다. 자신의 내면 존재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의 물건과도 같다. 물건으로 전락할 때 그데에게는 충족됨이 없다. 물건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살아있다. 그대는 인류 역사상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또한 미래에도 걷지 않을 그러한 자기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영적인 세계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것은 허공과 같다. 신이란 언어에 불과하다. 누군가 그대의 삶에 자신의 규칙을 부여하는 자, 고정된 틀을 주려는 자, 진리를 보는 창문을 주려는 자를 만나거든 그에게서 달아나라.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진정한 스승은 그대에게 어떤 창문을 주어 그 창문을 통해 진리를 바라보도록 하지 않는다. 진정한 스승은 직접 하늘 아래로 데리고 나갈 것이다. 그는 그대에게 살아가야 할 하나의 형태를 주지 않는다. 단순히 그대에게 느낌을, 이해를 줄 것이며, 그 이해를 통해 그대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이해는 자유롭고 또 그대 자신의 것이다. 깨달음을 향한 모든 노력은 그 붙들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앞으로 전진하는 것, 다시금 흐름을 되찾아 얼어붙지 않는 것이다. 흐르는 물처럼, 하나의 강물처럼 되라. 규칙들은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삶은 끊임없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으며, 오직 진정한 이해만이 그것에 반응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가 개인적이다. 그것은 그대의 진리인 것이다. 하나의 순수 객관성으로 존재하는 진리는 없다. 그대의 진리가 나에겐 진리가 아닐 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진리는 나에게 의미가 있으며, 그대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대의 진리이다. 모든 성자는 모두 같은 근원에 도달했으며, 그 근원은 하나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고 느꼈다. 근원은 같고, 궁극적인 진리도 같다. 그러나 사람마다 그것의 표현이 다르다. 누구의 진리도 그대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대’ 자신이 그 비밀의 뚜껑을 열어야만 한다.
풍경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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