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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73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6. 21. 01:36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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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철학 173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_vQeYmSLw9A
577.
적을 내치는 것이 벗을 내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과 벗이라는 말은 어느 것이나 인간의 언어(인간의 ‘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체질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리하면 그대는 너무나 광대하고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떠한 체도 그대를 담을 수 없게 된다. 그대의 눈빛은(숨, 생각, 꿈, 집) 그대만의 빛(숨, 생각, 꿈, 집)이 아니다. 우주 전체가 그대의 꿈 속에서 꿈 꾸고 있다. 그 집은 모든 생물의 거주처이다. 신과 인간을 분리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을 모든 생명체와 분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신을 텅 비우지 못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듣고 있으면서 듣지 않는 자나 보고 있으면서 보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이 올 것이다. 인간은 소유하는 것에 소유 당한다. 사물에 사로 잡히고 싶지 않다면 사물을 잡은 손을 놓아 버려라.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의 필요에 따라 단계지워진 밝기의 정도다. 어둠이 어떻게 무언가를 덮는 덮개가 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지나치게 많은 귀를 갖고 있다. 그 때문에 그대들은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듣고 이해하는 단 하나의 귀를 갖고 있다면 어떠한 증명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인간은 무지 속에서 스스로를 둘(이원론)로 찢어 놓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분할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에 죽음을 불러 들이고 있다. 신과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인 또는 인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분할되었다 해도 존재하는 것은 영원히 ‘유일자’다. 바다는 광대하고 깊지만 한 방울의 물일 뿐이다. 그대들이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며, 그대들이 사랑하는 것은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대들은 ‘생명의 나무’이다. 그 나무의 가지와 잎, 열매가 어떤 것일지라도 그대의 잎이며 그대의 가지며 그대의 열매이다. 썩은 열매를 비난하지 말라. 오히려 생명의 수액을 극히 일부에게만 베풀고, 다른 많은 이에게 베풀려하지 않은, 그리하여 스스로 생명의 수액 자체를 거부하는 그대의 눈 멀고 인색한 마음을 비난하라. 단 한 사람의 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떠한 벗도 가질 수 없다. 마음에 증오가 있는 동안은 사랑의 기쁨을 알 수 없다. 그대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할 때, 사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미움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사랑의 대가도 구하지 말라. 사랑은 그 자체로 충분한 대가다. 증오가 그 자체로 충분한 징벌이듯이. 그대들은 자신을 사랑 안에서 비워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늘 사랑으로 채워진다. 바다로 보내어지는 축복을 받지 않으려는 연못은 고여서 썩고만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모든 것을 사랑하라. 말은 최선의 경우라도 정직한 거짓말이다. 한편 침묵은 최악의 경우라도 드러난 진실이다. 그대가 갖고 있는 무수한 걱정거리나 희망을 신에게 가져가지 말라. 신이 열쇠를 그대에게 주었는데도 신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탄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말고 마음의 광대함 속에서 열쇠를 찾으라. 그곳에는 그대가 갈망하고 간구하는 모든 것이 있다. 그곳에는 그대의 손짓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막강한 군대가 대기하면서, 그대의 어떠한 사소한 명령에라도 즉각 따를 준비를 해 놓고 있다. 그대의 간절한 소망과 욕구가 이 군대의 장비, 그대의 정신이 이 군대의 훈련자, 그대의 의지가 지도자이자 명령자. 혼탁한 시냇물은 다른 시냇물을 흐리게 할 수 있지만 바다를 흐리게 할 수 없다. 바다는 기쁘게 진흙을 받아들여 바다 밑으로 가라 앉히고, 맑은 물은 시냇물에게 되돌려 준다. 누가 대지 전체를 더럽히거나 황폐화 시킬수 있겠는가? 대지는 인간이나 동물의 오물을 모두 받아들여서, 넘칠 정도의 달콤한 과실과 향기로운 꽃들, 곡식이나 초목으로 되돌려준다. 인간은 시간의 테두리에서 흘린 자신의 피를 시간이 흘린 피라 믿고서 핥으며, 시간의 수레바퀴 살에 잡아 뜯긴 자신의 살을 시간의 살이라 믿고서 탐욕스레 먹는다. 시간의 수레바퀴 테두리 위에는 삶과 죽음의 길이 있다. 원을 그리는 움직임은 결코 종말에 이르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움직임은 모두 원을 그린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시간의 악순환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는 것일까? 시간의 수레바퀴는 돌고 있지만, 그 축은 영원히 정지해 있다. 그 축이 신이다. 만물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의 주변을 돌고 있지만, 신은 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정지해 있다. 축에서는 평안하지만 테두리에선 흔들림이다. 시간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와 축에 도달하라. 흔들림의 구조에서 벗어나라. 시간이 그대 주변을 돌게 내버려 두라. 그러나 그대 자신은 시간과 더불어 돌지 않도록 하라. 시간 속에서는 어떤 일도 눈물 흘릴만한 가치가 없다. 어떤 일도 웃을 만한 가치가 없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은 모두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다. 두 가지에 대해 평온한 마음으로 한결같아지라. 우주는 단순히 하나의 몸이다. 그 가장 작은 부분과 교류해도 전체와 교류하게 된다. 사랑은 단순히 하나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자유이다. 모든 것을 사랑할 때 그대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간에는 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것을 읽어 낼만한 힘과 그 의미를 파악할만한 예민함이 있다면 그때 과거, 현재, 미래의 생의 기록을 가장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즉각 그대에게 밝혀줄 것이다. 우레는 끌어 당기지 않는한 결코 어떤 집에 떨어지지 않는다. 집이 부서진데는 우레 만큼이나 그 집에도 책임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재난을 불러 들였으면서도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초대장을 써 보냈는지 완전히 잊어버리고서 손님에게만 격렬히 항의한다. 그러나 시간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적당한 때 적당한 장소에 초대한 사람이 사는 곳에 손님을 보낸다. 방문한 손님에게 항의하지 마라. 불행한 사건도 행운의 사건처럼 받아 들여라. 불행한 사건도 일단 이해만되면 곧 행운의 사건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또 행운의 사건이라도 오해를 받으면 재빨리 불행한 사건으로 바뀌고 만다. 그대들은 기억이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자신의 탄생과 죽음 게다가 시간과 장소와 상태까지도 그대들이 선택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우발적인 일은 없다. ‘전능의 의지’에 의해 모든 사건이 정해져 있다. 모든 것은 의지를 갖고 있다. 돌조차도 갖고 있다. 의지가 없다면 돌은 없었을 것이다. 돌이 사물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다면, 사물로부터 영향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의지에 대한 돌의 의식, 존재에 대한 돌의 의식은 인간의 의식과는 단계가 다를지라도 내용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의지가 변덕스러우면 안된다. 온갖 사물이나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그대들이 그것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사물,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바라라. 사랑에 의해서만 그대의 베일이 걷히고 이해가 그대 마음 속에서 싹틀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대의 의지는 ‘전능의 의지’의 놀랄만한 신비 속으로 입문할 수 있다.
만물에 대한 의식을 성장시킬 때 비로소 그대는 자신 속에 있는 만물의 의지나 만물 속에 있는 그대의 의지를 의식할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 자신의 의지를 전능의 의지에 대립시키거나 충돌하지 마라. 전능의 의지를 감사하며 모두 받아 들여라.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이 하나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됨은 육체를 나눔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됨과 성스러운 이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과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하는 의지를 가짐으로써 실현된다. 인간에 한계를 두려는 자들에 주의하라. 확실히 자유는 인간의 것이다. 수도승의 옷을 걸치고 두꺼운 벽과 무거운 철문 뒤에 자신들을 격리하는 자가 독신자가 아니다. 수많은 남녀 수도자는 가장 음란한 자보다 더 음란하다. 진짜 독신자는 마음과 정신이 독신인 자들이다. 수도원에 있든 시장에 있든 상관없다. 여자를 신성한 존재로 존경하라. 종족의 어머니나 배우자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이원적인 생장의 수고로움과 고통 속에 있는 한쌍의 한쪽으로서, 자신의 동반자로서, 나누어졌다가 합쳐지는 분신으로서 존경하라.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 없이는 이원성의 조각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에 의해 남자는 하나됨을 발견하고, 남자에 의해 여자는 이원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쌍은 마침내 하나로 결합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 남자도 여자도 아닌 완전한 인간, 즉 극복자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말 속에서 서로가 공명共鳴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짐승이라도 감수성을 갖고 있다. 모든 종족, 모든 동물, 모든 인간에게 친절하라. 그들은 그대들이 신에게 향하는 여행에 가지고 갈 음식물이다. 죽음을 먹고 살면 죽음의 먹이가 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살아가면 고통의 먹이가 된다. 피를 흘리게한 자는 그 한방울 한방울을 자신의 피로 다시 채워야 한다. 천국의 마음을 가진 자에겐 이 세상이 천국이다. 속세의 마음을 가진 자에겐 천국도 속세이다. 말끔히 청소된 마음은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그대가 독을 마시고 싶지 않거든, 남들에게 좋은 음식이 되라. 다음에 디딜 발걸음이 불안할 때는 가만히 그대로 서 있으라. 당신이 싫어하는 것은 당신을 싫어한다. 그것을 좋아하고 그대로 내버려두라. 그러면 그대의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제거된다. 가장 견디기 힘들게 성가신 일은 사물을 성가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걸림돌은 어떤 것이라도 경고다. 그 경고를 잘 해독하라. 그리하면 걸림돌은 지표가 될 것이다. 준다는 것을 의식하는한 그대는 주는것 모두를 빌리고 있는 셈이다. 남에게 준 것은 실제로는 그 사람한테서 맡아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빈곤함도 부유함도 없다. 있다면 사물을 쓰는 법이 있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잘못 쓰는 자이다. 참으로 풍부한 자는 자기가 가진 것을 잘 사용하는 자이다. 온갖 형상을 취하는 생명에게 외경스런 마음으로 다가가라.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속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사물은 자연의 작업장에서 생긴 것이므로 자연의 마음이 담긴 배려와 최고의 정성이 담긴 예술임을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물은 적어도 그대들이 경의를 표할만한 것이 아니던가?
풍경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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