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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70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5. 31. 00:35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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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철학 170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oP68ica149U
574.
사고를 포기하라. 그대가 실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신성이 어떻게, 신이 어떻게 실재한단 말인가? 만약 그대가 이 세상이 환영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창조자가 환영의 세계를 실재가 되게 한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실재하는 신이 실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사고도 느낌도 아닌 존재와 일치하라. 그러면 돌연 그대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거기에 없다. 절대자, 브라흐마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대와 이 세상 모두가 하나가 된다. 그리고 무한이, 무형이 거기에 있는 바로 그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그대가 전 존재와 일치하는 실존적인 경험이다. 신성은 모든 곳에 두루두루 널려있다. 모든 원자가 신성과 더불어 진동한다. 순간에 머물러라. 슬픔에 거슬러 투쟁하지 말라. 그리고 행복을 갈망하지도 말라.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방황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비추기만 할 뿐 선택하거나 평가하거나 판결, 분석, 해석하거나 하지 않는다. 편견도 없고 혼란도 없다. 의식의 본질은 마치 거울과 같다. 의식이 분열할 때 즉 의식이 거울같지 않을 때 그것이 마음이 된다. 마음은 하나의 깨진 거울이다. 궁극은 노력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서 성취된다. 노력은 항상 이중분열된 마음으로부터 존재한다. 그대는 그냥 전체적인 상황 속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 그대가 하나일 때 브라흐마가 궁극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그대는 수없이 분열되어 있다. 그대는 하나의 군중들로(손님) 똘똘이 뭉쳐있다. 그대는 그대의 내면에 수많은 개성을 가지고 있다. 분노가 강할 땐 분노가 주인이 되고 사랑이 강하면 사랑이 주인이 된다. 질투가 강하면 질투가 주인이 된다. 이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왜냐하면 초대된 손님들은 많은데 그들 모두가 주인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 집의 임자는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 있거나 아니면 깊이깊이 잠들어 있다. 그래서 ‘깨어나라’, ‘각성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각성한다면 그때 주인이 나타나고 그 순간 손님들이 사라진다. 이 각성은 오직 그대가 근원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에야 가능하다. 반대되는 상대 개념 없이는 마음은 사물을 이해할 수 없다. 빛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어둠이 들어와야 한다. 마음의 본성이 그렇기에 마음은 분열이고 하나가 될 수 없다. 마음의 본질을 깨우쳐라. 존재에는 반대편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존재는 하나다. 비이원적이고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그대가 계속 선택한다면, 그대는 결코 근원에 이를 수 없다. 그때 그대는 선에 매달려 악에 두려워 하고 신에 매달려 악마를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무선택을 선택하지 말라. 마음은 무선택을 몹시 갈망할 것이다. 그때 문이 닫힌다. 씨앗은 언제나 지금, 여기 현재 속에 있다. 왜냐하면 모든 과거가(미래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속에 있기 때문이다. 목표 또한 시작 안에 존재한다. 그대가 실재할 때, 이 세상도 실재한다. 그대가 비실재적인 욕망 속에 살고 있을 때, 그대는 현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욕망이 그대의 세계이다. 따라서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욕망의 세계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의 세계에 살며, 주위에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지도 찾지도 말라. 모든 탐구는 마음에 속한 것이다. 의식은 존재이지 욕망이 아니다. 진리는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와 명성과 권력을 추구하듯이 신과 진리를 추구하지 말라. 모든 추구가 멈추었을 때 진리가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모든 욕망이 사라지고 아무런 원인이 일어나지 않을 때 돌연 그대는 환한 빛으로 가득하다. 그대가 모든 것의 근원이고, 그대가 바로 실재이다. 진리를 추구하면 편견에 사로잡힐 뿐이다. 경전은 그대가 지식인이 될지언정 결코 현자가 될 수 없다. 그대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찰지 모르나 모든 것이 빌려온 것, 죽은 것이 될 것이다. 네가 만약 모든 것이 하나로부터 나왔음을 깨우쳤다면 이 사실조차 집착하지 말라. ‘나는 비이원자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초점을 놓친 것이다. 참된 비이원론자는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장이나 믿음이란 언제나 반대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믿는다면 그때 저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리하여 둘이 만들어진다. 만약 분열이 사라지면 그대는 근원에 도달할 것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그대 때문이다. 그대가 이 세상의 창조자이다. 모든 존재는 그 주위에 세상을 창조한다. 창조는 그대의 마음에 달려있다. 마음은 환영일지도 모르나 그것도 창조를 한다. 마음이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은 그대에게 천국이나 지옥을 창조하게 한다. 만약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그대는 이 세상을 등지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가는 곳마다 그대는 다시 똑같은 세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마치 나뭇잎이 나무로부터 돋아 나오듯이 세상도 그대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한 그대는 세상을 떠날 수 없다. 세상은 단지 하나인 마음의 부산물일 뿐이다. 마음은 실체이고 이 세상은 그 그림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대는 그림자를 파괴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파괴하려고 애를 쓴다. 지금이 영원이다. 즉 공이다. 그러나 마음은 영원한 지금 속에서 살 수 없다. 마음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 불행을 창조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실재와 조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오직 꿈만 꿀수 있다. 그러나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깊은 통찰에 의해 마음이 떨어져 나갈 때 객체가 즉 세상이 사라진다. 그때 그대는 전체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때 그것이 우주이다. 그대는 고동치고 있다. 그것은 전 육체가 숨쉬며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즉 전체가 그대를 통하여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단지 전체 심장으로서의 하나의 표시자일 뿐이다. 우주가 그대를 통하여 고동치고 있다. 따라서 우주는 하나의 객관적인 전체성이 아니다. 우주는 하나의 주관적인 전체성이다. 우주도 하나의 개성으로 존재한다. 우주는 살아있는 의식이다. 우주는 하나의 기계적인 배열이 아니다. 우주는 하나의 유기적인 조화이다. 그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엇이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음이 언제나 그 원인이다. 마음이 그 영사기이다. 따라서 바깥세상은 오직 스크린일 뿐이다. 마음을 떨쳐버려라. 그대는 마음이 아니다. 그대는 마음을 초월하여 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마음이 거기 없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우친다면 그대는 진리의 깊은 핵심에 도달한다. 그대가 마음과 그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때 오직 그때에야 마음을 떨쳐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고요히 앉아 강요하지 말고 행위하지 말고 그저 무심하게 마음을 바라보기만 하라.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전염되기 쉬운 질병이다. 이 마음의 형태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형상으로부터 배경으로 눈을 돌려라. 그대는 실제와 밀접해질 것이다. 명상 속에서 이를 끊임없이 행하여야만 한다. 마음은 옛 습관에 따라 형상을 볼 것이다. 그러면 주위를 바꿔 다시 배경을 바라보라. 세상에는 중심이 없다. 중심이란 오직 세상이 한정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만약 세상이 한정된 원이라면 그때 중심은 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은 무한한 원인 것이다. 관찰자가 관찰되어질 때 그대가 누구인지 망각될 때 하나의 희미한 섬광이 일어난다. 거기엔 경계선이 없다. 마음이 사라질 때 객관도 소멸한다. 그대도 소멸한다. 즉 현상과 배경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空이다. 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있다. 그대는 개체가 아닌 전체로서 존재한다. 그대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잃어버릴 것이란 오직 고통과 속박 뿐이다. 그대를 잃어버릴 때, 그대가 전세계가 된다. 모든 것이 그대의 것이다. 신비는 그대가 신비 그 자체가 되었을 때 풀어진다.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남아 존재하면서 신비를 풀수 없다. 형상의 의미는 말이고 배경의 의미는 침묵이다. 아무 곳에도 가지 말라. 그냥 여기에 있으라. 거기에 초월해야할 아무 시공도 없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 목적지가 두려움임을 명심하라. 두려움이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실패는 그대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목표지향적인 마음(진리, 도, 깨달음...)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성취자가 되지 말라. 성취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긴장을 만들어 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감각은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신을 만나기 위한 문이다. 그 문을 통하여 신이 그대에게 들어오고 그대가 신에게 들어간다. 육체를 초월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육체는 오직 올바르고 완벽하게 기능하여야만 한다. 육체는 하나의 예술이지 근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육체는 그대의 마음보다 매우 더 현명하다. 만약 그대가 즐거워하지 않고 또한 그 즐거움 속에 합일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다시 바위로 추락할 것이다. 감사하고, 즐기고, 사랑하라. 감각과 사고의 세계를 싫어하지 말라. 다만 그대가 그것에 말려들지는 말라. 만일 그대가 이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바로 이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은 긴장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휴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반대편에 의존하여 극단을 향해 움직이도록 되어있다. 마음은 한낱 상상으로 존재한다. 마음은 그대에게 이상을 팔수는 있지만 결코 물질은 제공할 수 없다. 이해는 수용이다. 수용은 깨달음이다. 투쟁을 만들지 말고 삶과 함께 존재하라. 거슬러 헤엄치지 말고 흘러 다녀라. 그대가 물결이 되라. 바로 이것이 깨달음이다.
꿈과 별과 영화는 늘 그대의 연속성이다. 모두 어둠이 필요하다. 꿈, 현상, 환상, 마야 그것들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꿈의 원천이며 마야의 근원이며 환영이다. 마음은 바로 그대의 내면에 존재한다.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그대는 아무 곳에서나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다. 히말라야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
풍경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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