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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68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5. 18. 15:28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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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철학 168
572.브라흐만을 알지 못하는 상태 바로 그 상태가 곧 의식의 궁극적 상태이며 그것이 바로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바로 그 상태이다. 그대가 그것을 알려고 추구하면, 그대는 그것을 알 수 없다. 당신은 브라흐만이기 때문에 당신은 눈이 자신을 볼 수 없고 귀가 자신을 들을 수 없듯이 분명 브라흐만을 볼 수 없다. 또한 당신은 언제나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사물을 볼 수 있지만 결코 보는 자를 볼 수는 없다. 결코 진아, 순수한 주시자를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당신을 자각하고 있는 당신 내면의 이 주시는 과연 무엇인가? 이 순수한 자각은 무엇인가? 물론 당신은 이 보는자를 볼 수는 없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그저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보는자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보여질 수 없다. 그렇기에 잠시 동안이라도 단순히 보는자로 있어 보라. 그저 단순히 아는 자로, 주시자로 편안히 있어보라. 보지만 보여질 수 없는 것에 머물러 있어보라. 당신이 그러한 공, 그러한 없음, 그러한 명료함, 그러한 개방상태에 머물러 있을 경우, 당신은 엄청난 자유, 보여지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해방, 하나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고통으로부터의 어마어마한 해방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진면목이고 근원적 배경이다. 그것을 신이라 부른다. 지금 바로 당신을 자각하고 있는 그것이 곧 신이다. 지금 바로 당신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각인 그것이 곧 신이다. 보지만 결코 보여지지 않는 그것이 곧 신이다. 지금 바로 당신 안의 그 주시, 순수한 현존으로서 언제나 존재하는 그 주시가 곧 신이다. 당신 자신의 현재 자각 상태가 곧 신이다. 당신이 자신에게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이 신, 결코 당신을 버리고 떠난적이 없으며 결코 버리고 떠날 수 없는 이 신, 당신이 숨쉬는 모든 호흡이며 모든 장엄함을 보고 있는 이 신은 그러나 결코 절대로 보여지지 않는다.
거친 생각이 방해할 때에는 반대의 것을 명상하라.
완전한 진리는 온 누리를 싸고 있으므로 그 모양을 볼 수 없는 것이고 진리의 소리는 온 누리에 차고 넘치는 까닭에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인간이 유사 이래로 경험해 온 인상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든지 푸른 대지나 소곤거리는 물소리에 대하여 일종의 잠재의식적인 기억을 갖고 있으며, 눈이 멀고 귀가 먹어도 인간에게는 지난 날의 선물을 빼앗을 수 없다. 이 유전적인 능력은 일종의 육감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하나에서 일체를 보고, 듣고, 느끼는 영감이다.
예술은 본디 정형화, 체계화를 거부한다.
性(元神, 心) 命(元氣, 身) 雙修
마음이 곧 神이다. 마음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는 상태가 바로 신이다. 신은 우주를 지배하는 세계 영혼이거나 세계영혼의 집단일 수도 있다. 그래서 원자와 인간과 신은 수준이 다를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마음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원자의 불예측성과 신의 불예측성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셈이다. 원자는 우리의 정신적 장치의 작은 부분이고, 우리는 신의 정신적 장치의 작은 부분이다. 우리는 우주적 생명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는 물질과 정신의 거대한 슈퍼 구조는 언젠가 우주적 복제의 틀이 될 것이다.
여행자여 길은 없는 법이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어느 분야든 가장 특이한 것을 찾아내 탐구하라.
신체는 겉으로는 영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속임수에 의해 크게 뒤바뀔 수 있는 일시적으로 만든 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당신의 신체는 후손들에게 당신의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껍질에 불과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존재가 우리 안에 있다.
인간은 믿음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는 존재한다.
우주는 의식적 존재를 통해 자각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진정 여기에 있도록 의도 되었다.
존재하는 것은 다시 만들어져 모두가 물처럼 흐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형상이 다른 새로운 형상으로 변할 뿐, 그렇게해서 이 변화를 이 세상에서는 산다고 말하고, 다른 형상으로 변해서 물러나는 것을 죽는다고 말한다. 죽음은 자연이 바라고 있는 것이므로 기꺼이 맞이하라.
세상 속에서 살라. 그러나 세상에 소속되지는 말라. 소유물이 되지는 말라. 세상이 되지는 말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우리에게 무집착의 길을 알려주며 그러면 마음의 평화가 뒤따르고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세상의 물 위에 떠다니되 세상에 대한 집착을 가져서는 안된다.
시간(삶)은 가는 것이지 오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늙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다.
세상을 쫒아가면 세상은 너로부터 달아난다. 그러나 네가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면 세상이 너를 쫒아온다. 사람들 속에서 살되 언제나 홀로인 채 남아 있으라. 아무런 욕망이 없이 욕망들 속에서 살아가라. 삶이 꿈이라는 것을 알면 그때는 삶이 곧 명상이 된다. 자신의 욕망을 지켜볼 줄 모르는 자는 행복 또한 알지 못한다.
당신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당신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세상의 물질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다. 당신은 한 여자를 보고 당신의 아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만든 것이다. 당신의 아내는 오로지 당신 생각 속에만 존재하고, 또 당신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다. 또 당신은 당신의 육체가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역시 당신 생각일 뿐이다. 물질세계는 그 전부가 우리의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더 빨리 달리길 원했기 때문에 말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나서도 더 빠른 것을 원한 나머지 자동차와 기차를 발명했다. 또 하늘을 날기를 원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만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세계의 전부가 우리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동굴 속에서 사는 고행자에게는 물질세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상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라.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를 밀어 버리고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 미래는 현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만일 현재가 평화롭다면 미래 또한 평화로울 것이다. 먹기 위해 일하는 것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모든 항아리들이 그 모양은 다르지만 똑같은 점토로 만들어졌듯이 우리 역시 생각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모두 하나다.
욕망이 커질수록 세상(고통)도 따라서 커진다.
깨끗한 바지를 입은 사람은 바지를 늘 깨끗하게 유지한다. 더러운 바지를 입은 사람은 그것이 더러워져도 신경쓰지 않는다.
당신의 내면에 사랑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사랑은 저절로 주위에 반사되 빛이 될 것이다. 초월한다는 것은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먼저 천국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지 못한다. 신은 당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당신은 신이요 당신은 신 안에 존재한다. 당신 자신을 받아 들이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충만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사랑이 곧 신이다. 깊이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가 없다. 신이 찾아 오기를 기다리는 자는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서 평화를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깥세계란 당신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매순간 지금으로 살기 위해서 마음은 항상 사물을 새롭게 만나야 한다. 지식의 오만을 가지고 삶을 마주치는 것은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결국 지식은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일어나는 변화는 단순한 수정이지 변혁이 아니다. 변혁은 지금이지 내일이 아니다. 사랑이 있을 때 사랑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이 없을 때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때만 사랑을 생각한다. 직접적인 교류가 있을 때 사고나 표상이나 기억의 재생은 없다. 어떤 차원에서건 영적 교류가 끊어질 때 사고와 상상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은 마음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질투, 집착, 소유, 결핍, 과거의 회상, 내일에 대한 동경, 슬픔과 걱정 등의 연기 煙氣를 만들어 낸다. 사랑과 마음은 공존할 수 없다. 둘이 공존한다고 하는 생각은 소원에 불과하다. 소원은 사고의 투사이고 사고는 사랑이 아니다. 사고는 시간이다. 사고는 경험, 지식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시간과 분리될 수 없다. 시간은 인간의 심리적인 적이다. 우리의 행동은 지식과 시간에 기초하므로 사람은 항상 과거의 노예가 된다.
내가 세계다. 우주는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모든 존재의 근본 바탕인 진여 마음은 본래 그 모습(相)이 없는 것이기에 아무리 알아 차리려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풍경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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