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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 작가의 말] 도영의 함 생각
    문학작품/시나리오 2020. 3. 2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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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도영의 함 생각'을 읽기에 앞서 한국어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를 먼저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국어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 : https://paradigm21.tistory.com/22

     

    [한국어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 나오는 사람 남주경 (20대 후반) 동기생 남 각본 : 도영 씬 1 경주역 근처 한 대의 트럭이 경주역 근처를 달려간다. 씬 2 동국대 경주캠퍼스 정문 멀리서 예의 트럭이 달려와 서면..

    paradigm21.tistory.com


    다음 글의 내용은 도영작가님께서 작성하신 전문입니다.

     

     

    운영자이신 오천님의 ‘21세기 패러다임’ 글을 읽고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또한 디지털 노마드가 저의 단편영화 시나리오 ‘경주 이야기’와 연결이 되어 한 생각 해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시스템의 변화를 일컫는 말이 되겠지요. 하지만 변화의 묘는 그동안 지구가 겪어왔던 연장 선상 위에서, 그리고 역사적인 과정의 토대 위에서 설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역사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일례로 역대 왕조에서는 왕자들에게는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장자인 세자에게만 역사를 가르쳤지요. 역사를 알면 과거의 행태를 일삼아 현재를 재단하여 역모를 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주 이야기’의 시공간 또한 지나한 역사의 공간 속에서 유추해야 할 것입니다. 시점은 현재일 수밖에 없지만 경주라는 지명이 차지하는 공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시나리오에 표현이 안되었더라도 작가는 그러한 역사적 공간을 상정한 다음 글을 쓰게 됩니다. 그 공간을 유추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

    또한 주인공인 ‘임주경’이라는 인물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 인물이 태어나서 지금 현재까지의 여정을 전부 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설정한 다음 글을 씁니다. 그것이 정석이겠지요.

    그렇다면 임주경이라는 인물의 시간성과 역사라는 지평의 공간성(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을 어떻게 벡트화 시키겠는가?

     

    현대물리학의 얘기를 빌리자면 137억 년 전 빅뱅이 이루어진 다음 46억 년의 장구한 세월을 지나 인간의 역사는 상고사 시대에 있었던 선문명인 수메르문명(제카리아 시친의 ‘지구연대기’ 1,2,3권 참조-AK출판사, 이근영옮김, 2009)을 지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했지요. 이때가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룩한 최초의 개벽으로 제1차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채집과 수렵을 일삼던 사바나의 인류 조상이 처음으로 한 곳에 정착하여 야생 동물들을 가축으로 기르고 식물을 재배하여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자 전염병이 창궐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농산물의 잉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양극화와 함께 종교라는 권력도 생겨나 게 됩니다.

     

    그 후 수천 년이 지나서야 제2차 혁명이 일어나는 데...

    인간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살아왔는데, 그 경외심이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이어지면서 신에 대한 제례로 발전하게 되지요. 그래서 다신을 상징하는 인도와 그리스를 대표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형성되고, 이어서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소집으로 이루어진 니체아 공의회(AD325)를 계기로 로마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일신교로 정착되지요. 그리고 무려 1,000년 동안 교회라는 조직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헤브라이즘 문화를 형성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라는 시기입니다. 그러자 인쇄술의 등장으로(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이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발점이 되어 르네상스가 열리게 됩니다. 그것은 신보다는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입니다. 이어서 이성과 계산적이며 합리적인 정신으로 무장된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근대라는 모더니즘이 출현합니다. 여기서 제2차 혁명이 태동하는데, 바로 산업혁명이지요. 분업과 대량생산(획일화, 표준화, 상품화, 저속화, 대중화)를 기치로 식민지시대로 접어들면서 바야흐로 야만의 제국주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후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한 진화론(다윈은 적응을 강조했지 약육강식을 말하지 않았다.) 자들이 날뛰는 세상이 된 겁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냉전체제를 고수하던 권력자들이 수정자본주의를 포기하면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게 되고 냉전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렸지요. 어쨌든 그것으로 인해서 제3차 혁명이 시작되는 데, 소위 정보화시대로 접어듭니다. 군사용으로 개발되었던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제2차 산업혁명으로부터 불과 300(1차 농업혁명으로부터 제2차 산업혁명까지는 수만 년이 걸렸다.) 밖에 걸리지 않은 제3차 정보혁명이 이루워졌죠. 이어서 제4차 혁명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제4차 혁명입니다.  AI, 인공지능 시대인 겁니다. 작금의 시대인 제4차 혁명시대는 통일장(거시세계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인 양자역학을 결합한 이론)을 열려고 하는 양자 컴퓨터와 빅데이터, 그리고 DNA 스토리지를 결합한 명실상부한 하이브리드 세상이 도래한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5차 혁명은 어떨까요? 경제적으로 제3의 길을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사회주의의 분배를 결합한 투트랙 말입니다. (또한 종말의 시나리오가 횡횡하는 때이지만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운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5차 혁명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10년 안에 도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떠한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학자들의 견해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얘기하지만) ...

     

     

    이러한 역사의 공간 속에서 21세기의 패러다임을 논하는 것이 타당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동양 즉 중국 역사의 공간도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중요하지요.

    상고사 역사(크리스탈문명, 흑피옥문명, 삼황시대)와 홍산문명을 거쳐 하, , , 노자와 공자가 살았던 춘추와 전국, 진나라가 통일한 후, 한 고조인 유방이 동중서에 명하여 조종의 당위성을 만들라 하여 동양사상의 토대가 된 음양오행설, 그리고 위진 남북조를 지나 수, , , , 명 청을 거쳐 신해혁명으로 봉건왕조를 무너뜨린 손문을 이어 공산당의 모택동과 국민당의 장개석이 내전을 치르고, 결국 모택동의 중공이 세워지고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지요. 하지만 역사의 도덕성까지도 훼손하며 굴기를 내세우는 지금의 중국 정부는 결국 오래 못갈 것이란 전망과 함께 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소명만큼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아울러 우리나라는 마고의 시대를 시작으로 환인, 환웅의 상고시대를 거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단군조선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동아시아의 대제국으로 거듭나지요. 부여를 매개로 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와 발해의 남북조시대를 지나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 후에, 대한제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해 오지요.

     

    이것이 ‘경주 이야기’를 숙고해야 할 공간성이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독자들의 몫인 것이겠지요.

     

    덧붙여서 21세기의 패러다임을 숙고하는 마당에

    디지털 노마드에 관해 참고할만한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노마디즘> 1, 2

    저자;이진경

    출판사;휴머니스트

    발간연도;2003

     

    원래 댓글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처음으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입장에서 함 생각을 적어봅니다.

     

     

    Bcho님과 아이리스님의 의견에 대해,,,

    우선 두 분의 날카로운 분석과 수준 높은 댓글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Bcho님은 “인간 세상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 확인해보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요?”라며 댓글을 올리셨어요.

    그것이 바로 제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테마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화자(주인공)을 통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말하게 되면, 모든 것을 제한하게 되고, 울타리를 치게 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통상적인 방법입니다. 그것은 소위 열린영화라는(반대 개념은 닫힌영화-테마나 결말이 확실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의 한 형식) 형식의 한 방편이며, 모더니즘 이후 1970년대 후반을 끝으로 새로운 이론의 상실로 인한 이질성과 숭고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팁을 주자면(이러면 안되는 줄 알지만-스포일러)

    언어는 인간의 문명을 꽃피웠지만 한편으론 인간을 노예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반드시 언어적으로 결합합니다. 그 욕망은 항상 결핍으로 나타나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는 패러독스입니다. 또한 언어는 최종적으로 종교로 귀결됩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서양에서는 성인의 서품을 받고, 동양에서는 깨달음의 상징인 각자의 표식) 한 발 빼는 것이 아닐런지, 그러면 두 발을 모두 빼면 어떻게 될까? 깊은 고민을 해 보시길!

     

    첨언을 함 생각해 보면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강설하셨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경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 안경과 지팡이, 그리고 옷 한 벌을 남기고 등지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것이죠.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무소유는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 즉 선지식(Pre Understanding-도올선생의 말씀), 선입견, 고정관념, 전통으로부터 내려오는 굳어진 신념, 시스템화된 굴절된 개념, 종교적인 배타적 믿음 등으로부터의 무소유인 것이겠죠!

     

    아이리스님의 댓글에 대해...

    주인공인 남주경의 세계 배낭여행과 귀환에 대해, 피로감과 일탈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며 남주경의 인생에 동전의 앞면이 계속되는 인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희망까지도 적어주셨습니다.

     

    직접 쓴 작가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남주경이 동기생을 만날 때, 그 장소가 왜 하필 정각원이었을까요? (정각원 正覺院-바른 깨달음) 그 의미를 새겨보시길!

    홀로 떠난 배낭여행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쳐서 떠난 것이 1차적인 동기라면, 진정한 내면의 작심은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실천에 옮겼고(그것이 동전 던지기라는 손쉬운 방법의 결정이지만-하지만 이것은 고래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지고 세상에 외치고 싶어서 동기생(싫어하는 장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라면...)에게 실토를 하려고 다시 찾아오지요. 그러나 믿음은 한순간에 깨지고(통속적이고 변화가 없는 고정된 틀임을 알고) 실망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아이리스님의 말 대로 결국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겠지요.

     

    앞으로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다음에 올릴 작품은 조금 긴 단편영화 시나리오입니다.

    제목 ; 특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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