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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42 (교재 공개)
    패러다임/철학 2021. 10. 2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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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42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w2IeS3oQsGI

     

    448.

    그리스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학파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피지스 physis라고 불렀던 사물의 본질, 즉 진정한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생물과 무생물, 정신과 물질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물활론자物活論者 hylozoist 즉 물질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림

    모든 존재의 양식을 생명과 영성이 부여된 피지스의 구현으로 봄

    탈레스 Thales;모든 물질은 신성 神性으로 충만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 Anaximandros;인체가 공기에 의해 유지되듯 우주는 우주의 숨결(브라만)인 프노이마 pneuma 靈魂로 지탱되는 일종의 유기체

    헤라클레이토스;세계 내의 모든 변화는 대립자들의 역학적이며 주기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난다고 가르쳤으며, 대립자의 쌍을 하나의 통일체로 보았다. 이 대립하는 힘들을 내포하면서 초월하는 통일체를 그는 로고스 Logos라고 불렀다.

    이 통일체의 분열은 엘레아 Elea 학파로부터 시작해 서양철학의 특성이 된 이원론 二元論의 근간을 이룬다.

    동양은 우주의 근본적인 全一性을 강조. 지상의 목적은 모든 사물의 전일성(브라만)과 상호 연관성을 깨달아 고립된 개별아 個別我(아트만)라는 관념을 초극하여 궁극적 실재와 합일시키는 일이다.

    흰두교;정신적 원천-베다경전(4가지-Rig veda, 찬가, 기도문, 제사의식) 마지막 부분이 우파니샤드(베다의 철학적, 실천적 내용을 완성한 것) 그러나 인도의 일반대중은 우파니샤드를 통하지 않고 수많은 민간설화를 통해 흰두교의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 서사시 중 하나인 마하바라타 mahabharata 그 안에는 인도인들이 애송하는 경전인 바가바드기타 Bhagavad Gita (Krishuna 신과 전사인 Arjuna 사이에 주고 받는 대화)라는 영적인 시가 있다.

    크리슈나(흰두교)의 정신적 교시의 기초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온갖 사물이나 사건들이 다 같은 궁극적 실재의 다른 현시 顯示일 뿐이다. 브라만 Brahman 이라고 불리는 이 실재는 흰두교가 수많은 남, 여 신들을 경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일원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통일개념이다.

    신의 자기희생에 의한 세계창조

    신은 이 세계가 되고 종국에 가서는 또다시 신으로 되돌아 간다. 이 신성의 창조적인 활동은 릴라 lila 즉 신의 유희라고 한다. 이 세계는 그 성스런 유희의 무대이다.

    브라만은 스스로를 세계의 형상으로 변용시키는 가장 위대한 마술사이며 리그 베다에서는 마야 maya 摩耶의 본래 의미인 창조적인 마력으로써 이 공업 功業을 수행한다.

    마야는 마술가의 권능이나 힘이었던 것이 나중에 마술에 걸려있는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를 뜻하게 된다. 우리가 신성한 릴라의 무수한 형태를 실재와 혼동하고 이들 모든 형태 아래 놓여 있는 브라만의 통일체를 지각하지 못하는한, 우리는 마야의 주술에 걸려 있는 것이다.

    마야는 흔히 잘못 말해지듯 이 세계가 환상이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형상들과 구조들, 사물들과 사건들이 우리의 이리저리 재고 간추리는 마음이 낳은 개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연의 실재라고 생각하는한, 단지 그러한 관점 속에 우리의 환상이 자리를 잡는 것일 뿐이다. 마야는 이러한 개념을 실재로 간주하는, 지도를 영토로 혼동하는 환상이다.

    흰두교의 자연관에서 만상 萬相은 상대적이고 유동하고 영원히 변화하는 마야며, 위대한 마술사의 신성한 유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거룩한 릴라는 율동적이고 힘찬 유희인 까닭에 이 마야의 세계는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다. 이 유희의 역동적인 힘은 카르마 karma 인데, 카르마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것은 이 유희, 즉 활동하고 있는 전 우주의 실천원리인데 여기에서 만물이 다른 만물과 역동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카르마는 창조의 힘이며, 거기서부터 만물이 생명을 얻는다.

    우리가 단편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한, 우리는 마야의 그 주술 아래 놓여,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환경으로부터 분리돼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카르마(마야)에 묶여 있는 것이다. 카르마의 속박에서 해방된다 함은 모든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전일성과 조화를 깨달아 그것에 맞추어 행동함을 뜻한다.

    마야의 주술에서 해방되는 것, 카르마의 속박을 부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는 모든 현상이 다 같은 실재의 부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몸소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체험이 moksha, 모크샤, 즉 해탈

    해탈의 방식은 수많이 있다. 명상, 정신적 수련, 요가, 인격적인 남신, 여신의 형태로 신성을 숭배(시바 Shiva-창조와 파괴의 신, Vishnu 비슈누-보존, 유지-한 화신이 부처, 샤크티 Shakti 즉 성모-원형적 여신, 시바의 아내 ...)

    불교는 이 세계의 기원이나 신의 본성보다는 인간존재의 고뇌와 좌절 등과 극복방법 교시 등 인간적 상황에 관심

    도는 만물이 거기에 포함되는 우주의 진행과정이며, 따라서 이 세계는 부단한 유전 流轉과 변화로 보여지는 것이다.

    도교-자연을 관조. 인간의 행복은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직관적 지혜를 믿을 때 얻어진다.

    인습적 지식과 이성에 대한 불신. 도가에서는 논리적 추론을 사회적 예절 및 도덕적 규범과 아울러 작위적인 인간세계의 일부로 간주.

    가장 중요한 통찰-변용과 변화(음양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가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

    어떠한 대립하는 쌍도 하나의 통일체이다.

    도가의 변화가 어떤 힘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상황 속에 내재하는 경향으로서 보인다. 도는 강요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일어난다.=자연과 조화하는 행위. 곧 스스로의 진정한 본성에 합치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동방식을 무위 無爲(=자연에 어긋나는 행위를 삼가는 것=사람의 본성에 거스르지 않는 것=도와 조화를 이루는 것)

    자신의 불성佛性을 실제로 깨닫는 일이 중요. 곧 몸과 마음이 더 이상의 개선이 필요없는 조화된 통일체 속에 융합돼 있다는 깨달음

    모든 사물과 사건들의 통일성과 공동의 상호관계 대한 깨달음. 곧 세계의 모든 현상을 기본적인 전일성의 현시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이 우주 전체의 상호 의존적이며 불가분의 부분들로서, 동일한 궁극적 실재(흰두교의 , 불교의 法身, 眞如, 도교의 , 명상의 三昧삼매-정신적 평형)의 다른 현현 顯現으로서 이해된다.

    일상적 생활에서는 우리는 이 만물의 통일성을 깨닫지 못하고 세계를 개별적 사물들과 사건들을 나눈다. 물론 이 분할이 우리의 일상적 환경을 다루는데에는 유용하고 필요하다. 그것이 실재의 참 모습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분별하고 범주화하는 지성이 궁리해 낸 하나의 추상이다. 개별적 사물들과 사건들이라는 우리의 추상적 개념을 자연의 실상이라고 믿는 것은 망상이다. 이 망상이 마야 maya 幻像의 주술에 걸려 있는 마음에서 생겨난 무명 無明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집중시키고 가라 앉혀서 재조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기본적인 전일자의 현신으로서 경험할 때 모든 사물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들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 모든 상이성과 대비점들이 일체를 포용하는 통일체 속에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모든 대조적인 것들의 통일성은 동일한 현상의 다른 면이다.

    덕이 있는 사람(명상의 목표)=선을 위해 악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적인 양태)과 악(여성적인 양태)의 대립적인 사이에 역동적인 균형(통일-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남성적인 것을 알고서도, 여전히 여성적인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음과 양의 배후에 놓여 있는 통일체를 도, 그것을 음양의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깊은 명상의 경지에서는 일상적 삶의 3차원 세계를 초월. 이때 모든 다원적인 것이 하나의 유기적 전체 속으로 통합된다.

    역동적인 것(변화)=살아있는 것=유기체=본질=브라만=법신=진여=

     

    풍경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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