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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영상, 미학론 58 (교재 공개)
    패러다임/예술 2021. 4. 2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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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영상, 미학론 58

     

    422. 균형을 결정짓는 요인에는 무게와 방향이 있다. 무게는 회화적 공간에 있어서의 위치, 크기, , 방향, 색채, 내용상의 관심, 지식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방향도 무게와 같이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

    예술작품은 균형, 조화,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균형 있고 질서 있고 통일되어 나타나는 패턴의 힘에 그 특성이 있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운동을 지각하는 것이다. 시각 패턴은 주변 사물의 공간 구조와의 관련이 없이는 고찰될 수 없다. 대체로 회화적인 대위법은 계급적이다. 즉 종속관계에 대해 지배적인 강한 힘을 형성한다.

    우리가 대상을 볼 때는 둔화와 첨예화의 성향이 있다. 둔화는 통일, 대칭과 반복의 증진, 부적합한 디테일의 제거, 비스듬한 사각의 제거 따위에 의해 이루어지며, 첨예화 현상은 분할, 차이점의 증대, 사각의 강조 등에 의해 나타난다. , 둔화는 대표성, 보편성, 일관성을 추구하는 단순화의 작업이며, 첨예화는 대상을 구체화하고 개별화하여 보려는 시지각의 성향인 것이다. 이러한 둔화와 첨예화의 요소는 흔히 한 그림 안에서 동시에 생겨나는 데, 지각의 성격으로 볼 때, 첨예화는 그 바탕에 비교적 얇게 이루어지고, 대부분은 둔화로 이루어진다. 보는 것은 분할의 기능을 가진다. 분할은 시각 예술에서 구성의 기본적인 수단이며, 모든 미술 작품에서 위계적으로 구성된다. 분할은 분리될 단위안에서의 형의 분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분할은 대상을 보면서 이루어진다.

     

    423. 주지주의 이론과는 반대로 어린이들은 아는 바가 아니라 보는 바를 그린다고 한다. 유아기의 발달 단계에서 정신의 주된 특징은 전적으로 감각 경험 즉, 지각의 범주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지, 지적 추상의 수준에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표현이 감각과 지성이 포함된 시지각의 발달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린이의 표현을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하는 반면 아른하임은 사고, 즉 지적과정의 표현이라고 본다. 또한 감정이입론에서는 나의 느낌이 대상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그는 어린이의 그림은 본 것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대표적인 특징을 선택하고 재구성해서 보여준다고 한다. 어린이의 미술 표현은 지능 발달이 아니라 지각과 사고가 분화되는 발달 과정이다.

     

    424.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

    1.관찰;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하며,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 지를 알지 못한다면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이다. 관찰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2.형상화;우리는 관찰할 수 있어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형상화는 단순히 사물의 기하학적 형태를 보는 일을 넘어 사람들과 세계를 재창조하는 데까지 이른다.

    3.추상화(단순화);추상이란 어떤 대상의 전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덜 띄는 한 두 개의 특성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모두 복잡한 체계에서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핵심적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현실이란 모든 추상의 종합이며, 이 가능성을 알아냄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할 일은 추상화 자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피카소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렸다. 색으로 사고하지 않고는 그림을 칠할 색을 고르지 못할 것이며, 소리로 사고하지 않고서는 피아노 건반 위의 선율을 짚어낼 수 없다. 말은 느낌을 나타내는 기호일 뿐 그 느낌의 본질은 아니다. 말은 이해를 위한 표현수단이지 느낌의 구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분야간 경계는 추상화를 통해 사라진다. 추상화는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4.패턴인식;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에서 지각과 행위의 일반원칙을 이끌어 내어 이를 예상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새로운 관찰 결과와 경험을 예상의 틀 안에 끼워 넣는다. 이 관찰과 경험의 틀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패턴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발견은 이런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패턴은 알아낼 수가 없다.

    5.패턴형성;패턴형성에서 인상적인 것은 결합되는 요소들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 결합방식의 교묘함과 의외성이다. 패턴은 문제에 대한 정답이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패턴형성은 모든 학문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6.유추;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이나 복잡한 현상들 사이에서 기능적 유사성이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많은 철학자들은 유추가 비논리적이라서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고 폄하하지만, 오히려 유추는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다리가 될 수 있다. 유추는 우리가 기존지식의 세계에서 새로운 이해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인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 한다. 유추할 수 없다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 한다. 그래야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7.몸으로 생각하기;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 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이 기억들을 저장한다. 그것은 마치 배우들이 몸의 근육 속에 자세와 몸짓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고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을 떠올릴 때 비로소 몸의 상상력이 작동한다. 이 때가 사고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사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좋거나 싫은 감정을 느낄 때 마음은 내장에 연결되고, 내장은 다시 마음이나 근육과 통하게 된다. 마음은 몸의 일부가 실제로 손실된 뒤에도 여전히 그 몸의 내적 이미지와 감각을 만들어 내며, 또한 그 사라진 일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몸의 감각은 창의적 사고의 도구가 된다. 몸은 답을 알고 있다.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가장 완벽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8.감정이입;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하라.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서 그것이 자라나게 하라.

    9.차원적 사고;2차원에서 3차원으로, 혹은 그 역방향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라.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의 통합으로 감각의 지평을 확장하라.

    10.모형만들기;모형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새로운 생각의 탄생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모형은 상상력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1.놀이;놀이는 우리에게 상징화 되기 이전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하는데, 바로 그것들로부터 창조적인 통찰이 나온다. 놀이는 우리 자신만의 세계와 인격, 게임과 규칙, 장난감, 퍼즐을 만들게 하여 지식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과 예술이 가능해진다. 놀이는 분야간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12.변형;변형적 사고는 상이한 분야를 연결해주는 메타패턴을 드러내주어 특정 영역에 치우친 사고보다 더 가치 있는 통찰을 낳는다.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할 필요가 있다.

    13.통합;생각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공감각적이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상태에 이른 종합지적인 사고의 모습이다.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시각과 소리, 그 밖의 다른 모든 감각들이 서로 뒤섞인다.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감각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다양한 표현형식들을 결합시킨다. 아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앎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과 맛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혀 못지않게 눈, , 손의 감각도 중요하다. 공감각적 앎이란 단순히 감각의 결합 이상의 것으로, 감각, 느낌, 기억 그리고 합리적 사고가 결합된 것이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은 이것에 기초하고 있다.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항상 여러 가지 방식을 동원해서 동시적으로 감각과 인식을 결합한다.

     

    425. 예술의 목적;전통적인 것에 바탕을 두되 현대적이고, 화가 개개인의 개성이 잘 돋보이면서도 시공을 초월하여 만인으로부터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현대적, 개성적, 예술적 보편성, 전통적, 창의적, 다양성)

    모든 정신적 범주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육체적 체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언어가 우리의 관념을 표현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몸이 모든 추상화의 원천이다. 우리는 육체적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감정 상태에서 육체를 묘사하는 비유를 사용한다. 이로써 언어는 우리가 몸을 파악하도록 하기 위해 몸을 소생시킨다.

    느낌이 물리적 힘을 표현하고, 이 느낌의 표현이 유기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물리적 실재라면 어쩌면 생명을 예술작품처럼 이해하는 것이 생물의 근원에 한발 더 다가서는 길일지도 모른다. 즉 예술은 우리를 나머지 자연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속에 있는 자연의 목소리이다. 예술작품은 결국 자연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소리는 그림과 달리 우리의 몸을 직접 건드리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그것을 오롯이 느낀다. 즉 맹인은 시각 외의 나머지 감각들 때문에 자신이 거친 세상 한가운데에 내던져져 있다고 느끼지만, 세계를 보는 귀머거리는 마치 유리로 만든 거대한 벽 뒤로 추방된 것처럼 현실에서 완전히 격리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예술과 육체성은 서로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능동성) 이 둘은 원래의 상과 거울에 비친 상처럼 오로지 함께 할 때만 이해될 수 있는 관계이다. 전체는 그것들이 합쳐질 때 짜맞추어진다. 세계는 생물의 목소리를 통해 스스로 노래한다.

    시적 목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바로 그것이 되는 것이다.

     

    426. 가짜미소;1.대관골근만 사용하기 때문에 입 주위만 움직인다. 2.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진짜미소는 2/3~4초 정도 유지된다. 하지만 가짜미소는 내부의 진정한 자극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언제 미소를 거두어야 할 지 알지 못한다. 사실 어떤 표정이든 10초 이상 지속되면(대부분의 경우 5초 이상) 거짓표정일 가능성이 높다. 분노, 환희, 침울함 같은 강렬한 감정의 표현은 예외지만, 심지어 이런 표현조차도 일련의 짧은 표정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진짜미소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사라지는 것과는 달리, 가짜미소는 칼로 무를 자르듯이 중단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대부분의 표정에서 갑작스런 시작과 종료는 의식적인 명령과 관련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놀람은 예외이다. 놀람의 표정은 1초도 안되는 시간 동안 시작, 지속, 종료로 이어진다. 이보다 오래 지속된다면 그 사람은 놀람을 가장하는 것이다. 4.가짜미소는 약간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쪽 입꼬리가 더 높이 올라가고, 왼손잡이의 경우 오른쪽 입꼬리가 더 높이 올라간다. 대부분의 고의적 표정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가짜분노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 혐오감은 입술을 끌어당기고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치우친다. 이것은 우세한 쪽의 대뇌반구가 더 강한 신호를 내보내는 것이다. 5.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나타나는 미소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런 내부 자극이 부족하므로, 거짓말쟁이들은 종종 타이밍을 잡는데 실패한다. 사실 얼굴 표정은 몸 동작이 있은 후가 아니라, 몸 동작과 동시에 표현되어야 한다. 테이블을 꽝 내리친 후에 성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6.가짜미소는 어두운 감정을 은폐한다. 미소로 슬픔을 숨기려 애쓰는 사람은 종종 눈을 통해 감정이 드러난다. 입과 눈의 신호가 상출될 경우 눈 신호가 우세하다.

     

    427. 광고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상품들을 약속으로 내거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불행할 때에만 먹혀드는 것이다.

    인간들은 타인들에 의해 쉽게 넛지를 당한다.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틀에 따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인해 현상을 유지하거나 디폴트 옵션(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 즉 기본값 default option)을 따르려는 강한 성향을 갖는다.

    예술임을 숨기는 것이 예술이다. 놀라움과 재치 그리고 독창성 뒤에는 언제나 은유가 숨어 있다. 예술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감정의 안내를 받는 정신발달의 후성규칙들에 충실함으로써 일관성을 끌어냈다. 그것은 가장 호소력 있는 언어, 이미지, 리듬 등을 선택함으로써 그 규칙들을 따랐다. 예술은 이러한 원시적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으며 그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술의 질은 그것의 인간다움, 즉 그것이 인간 본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고수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디자인에서 요소들의 중복된 부분이 약 20% 정도였을 때 뇌 반응이 가파른 절정에 이른다.  20%의 중복이 주는 효과는 선천적인 것으로 보인다. 신생아들도 이와 동일한 양의 질서로 이루어진 선들을 가장 오랫동안 응시한다. 시각예술의 캔버스는 본래 인간의 신체(장식, 의상, 상징적 문양) 그 자체였다. 우리는 생존에 겨우 필요한 만큼만 알 뿐이고 세계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신비의 세계이다.

    철학자들의 관심은 무엇이 비극작품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비극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에 있다.

    비극;숭고함을 향한 특유의 도약

    위대한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원초적인 모습으로의 그 자체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들을 밝히고 양도하는 어떤 것을 형성한다. 원래의 가치와 무게를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를 강 저편으로 데려다주는 다리와 같은 것이며 언어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의미의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과 같은 것이다. 이중의 존재로서 시적 언어는 완전한 자체-리듬, , 언어-이며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이다. 즉 이미지인 것이다. 시는 돌과 색과 말을 이미지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이미지적 존재라는 두 번째 개념과 이상한 힘이 청중과 관객들로 하여금 이미지를 끌어모으게 하고 모든 예술 작품을 시가 되게 한다.

    위대한 화가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시인이 된다는 것과 같다. 그 자신의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요약하면 예술가는 기술자(장인)와 같이 자신의 도구-, 소리, , -를 이용하지 않고 이 도구들이 그들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떤 예술가든지 언어에 봉사하면서 언어를 뛰어넘는다.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작용이 이미지를 만든다. 예술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즉 시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가 언어로 하여금 언어의 자질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게, 역사적 의미의 주어진 구조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시는 말과 역사이면서도 역사를 초월한다. 이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은 시의 다양성이 통일성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한다는 것이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폭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의 최초의 행위는 말을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다. 시인은 말을 관습적인 연결과 필요에서 근절시킨다. 말이 채 윤곽이 잡히지 않는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말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거나 한 것처럼 유일한 것이 된다. 두 번째 행위는 말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분리와 복귀) 시는 참여의 대상이 된다. 이 두 대립되는 힘(행위)이 바로 시 속에 있다. 하나는 언어에서 말을 근절시키는 상승 혹은 뿌리뽑음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언어로 되돌려주는 가라앉음이다. 시는 독창적이고 유일한 창조다. 그러나 역시 독서며 낭송이기도 하다. 즉 참여라는 말이다. 시인은 시를 창조한다. 독자는 시를 낭송하며 재창조한다. 시인과 독자는 똑같은 현실(현상)의 두 순간이다.

    시의 본질은 무엇을 말하는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냐이다. 언어의 발달사는 관념에 대한 분석과정사이다.

    위대한 시인의 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개념과 직관을 비교하는 데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구체적인 것을 두루 보고, 깊은 직관으로써 그것을 나타낸다.

     

    * 이것으로 영상, 미학론을 마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사상과 철학이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이어서 계속 올리겠으니 즐감하세요.

     

    충청도 어느 마을의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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