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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195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4. 11. 28. 23:20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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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철학 195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s6a4en9jE9E
599.
도는 단지 그것이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말해질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떤 말도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없다. 말은 그것이 그것 주변에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그것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그것은 뭔가 작은 것만을 포함하고 그리고 전체 존재는 배제한다. 도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도가 말해질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도는 맛 보여질 수 있고 경험되어 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대는 대단히 단순해서 그대가 어떤 에고도 가지지 않아야 하고, 그대가 대단히 고요해서 ‘나’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여성 남성
생명을 창조 인간의 본성을 창조
보편적이다 특별하다
통합한다 나눈다. 분석적
수용적이다 창조적이다
종교적이다 과학적이다
무의식적, 전체적 의식적, 수학적
인간은 통합체이다. 기계처럼 다룰 수 없다. 그대는 그대 내부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대의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곳에서, 그대의 빛과 어둠이 만나는 곳에서, 그대의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 그대의 긍정과 부정이 만나는 곳에서, 그리고 일단 그대 안에서 그 만남이 일어나면 그대는 완전하다. 그는 혼자이다. 완전한 하나. 도는 그대 존재의 정반대의 양극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만나고 섞이고 함께 춤추도록 하라
아래쪽으로 흐르는 에너지는 성적인 것이 되고, 재생적인 것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위쪽으로 흐르는 에너지는 영적인 것이 되고, 창조적인 것이 되고, 새로운 탄생을 준다. 즉 황금꽃이 핀다.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은 에너지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억압은 그대가 가장 낮은 센터에서 계속 억압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가장 낮은 센터에서 너무 많게 된다면 변태성욕을 만들어 낼 것이다.
잠에서 막 깨어날 때 누워있은 상태로 눈을 감고 호흡을 들이 쉴 때 엄청난 빛이 마치 태양이 그대의 머리에서 그대의 몸으로 들어 온다고 상상하라. 그리고 머리 가까이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황금 빛이 그대의 머릿 속에 쏟아지는 것처럼 상상하고 발가락을 통해서 나간다고 상상하라. 그리고 호흡을 내쉴 때 어둠이 그대의 발가락을 통해 들어오고 엄청난 어두운 강이 그대의 발가락을 통해 들어오고 위로 올라가고 머리를 통해서 나가고 있다고 느끼고 깊은 호흡을 하라. 20분 동안 하라. 들이쉬는 것은 남성적인 에너지로 창조성으로 가득차게 할 것이고 내 쉴 땐 여성 에너지로 수용적으로 만들 것이다. 잠잘 때 20분간 하라. 하루에 두 번 계속하면 변형이 일어난다. 신은 최초의 원인이 아니고 궁극적인 목표도 아니다. 신은 그대가 그대의 삶의 매순간 부딪치는 모든 상태의 중심이다. 신은 중심을 의미한다. 세상은 바깥 둘레, 주변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코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중심은 주변 속에 숨어 있다. 감각적이 된다는 것은 주변을 인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고 영적이 된다는 것은 중심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적임은 영적임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더욱더 감각적인 것, 그것이 살아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날 종교 즉 기존 종교는 정반대의 것을 가르쳐 왔다. 일종의 육체의 죽음을 가르치고, 그대의 몸을 더욱더 무감각하게 만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성장이 아니다. 진정한 성장은 이것이다-그대는 열려있고, 유약하고, 그대는 모든 것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그대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대는 상황의 중앙에 있지만 그러나 그것의 부분이 아니다. 그대는 모든 것의 주변에 있지만 그러나 그 중심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춤과 음악과 노래를 가르치는 이유는 그것이다. 나는 그대의 몸이 최적조건에서 진동하길 원한다. 나는 그대의 몸이 고동치고, 흐르는 현상이고, 썩은 웅덩이가 아니라 흐르는, 대양에 세차게 흐르는 강이 되기를 원한다. 감각적임은 그대의 문이 열려 있고, 그대가 존재와 함께 고동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새가 노래하기 시작한다면 , 감각적인 사람은 즉시 그의 존재의 가장 깊은 핵심에서 그 노래가 메아리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그 자신의 소리가 되고 그 자신의 신성을 향한 열망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 된다. 그 순간 관찰자와 관찰되는 대상은 하나이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그것과 함께 꽃피고, 그것과 함께 꽃이 핀다. 또한 액체 상태이고, 흐르고, 유동적이다. 각각의 경험 그리고 그는 그것이 된다. 일몰을 보면 그는 일몰이다. 밤, 어두운 밤, 아름다운 조용한 밤을 보면 그는 어둠이 된다.아침에 그는 빛이 된다. 그는 삶 그 자체의 모든 것이다. 그는 구석구석 삶을 맛본다. 비 감각적인 사람은 그것을 전혀 듣지 않는다. 혹은 그것은 어딘가에 있는 소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타협하지 말라. 모든 위협을 무릅쓰라. 삶이 놀이, 위험, 도박이 되게 하라. 그리고 그대가 모든 위험을 무릅쓸 때 그대는 그대 존재 안에 있는 날카로움을 얻을 것이다. 그대의 영혼이 태어날 것이다. 만약 그대가 용기 있고, 과감하다면 황금꽃이 그대 안에서 필 수 있다. 그것은 용기 속에서만 핀다. 그리고 기억하라. 섹스는 진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 안에 연꽃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낮은 것은 가장 높은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가장 높은 것은 단지 가장 낮은 것의 현시顯示일 뿐이다. 그 씨앗은 그 꽃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꽃들은 단지 씨앗의 표현에 불과하다. 성은 사마디를 포함한다. 왜냐하면 삶이 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에서 사마디로, 성에서 초의식으로 움직여라. 이것이 유일한 자연스러운 그리고 옳은 방법이다. 성의 어느 곳에도 머물지 말라. 나는 그대에게 성과 초월 둘 다 가르친다. 왜냐하면 초월은 단지 그것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억압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초월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실상, 그들은 그대에게 더 많은 진흙을 퍼붓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대가 이런 자기성애, 동성애, 이성애 그리고 난 뒤 초월로의 성적인 단계를 통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초월의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 자신 안에 연꽃을 가지고 있다. 성직자들과 정치가들을 피하라. 그러면 그대는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그들은 방해하며 서 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무의식을 어떻게 초월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이란 깨어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탄트라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옮겨가면 한 극에서 다른 극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둘 다를 넘어가라. 그대가 양극을 모두 초월하지 않는한 결코 궁극에 이를 수 없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되지 말고 의식적으로도 만족하지 말라. 초월하라. 존재하라.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되지 말라. 이것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리고 선과 요가 마져도 뛰어 넘는다. 즉 이중성을 넘어선다. 육체와 영혼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대는 육체로서 움직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육체가 그대는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외부에서 바라볼 때 그는 하나의 육체로 보인다. 그의 내면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내면을 관통한다. 내면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하나됨)이다. 그때 형상은 사라진다. 그대는 거울을 통해서만이 자신을 알 수 있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얼굴도 없다. 거울(내면)이 그대에게 얼굴을 주었다. 거울이 없는 세상은 거울처럼 작용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없다. 그대가 무인도에 홀로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그대에게 거울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얼굴이나 육체가 있을 수 없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우리의 외형만을 알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외형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한다. 머리를 갖고서는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직 사랑 속에서만이 그대는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우주적 오르가즘)에서 형상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끝이 아니다. 형상을 용해시켜 버려라. 형상이 사라질 때 어떤 경계도 없을 때 모든 것은 서로 다른 것 속으로 녹아든다. 그리하여 거대한 하나를 이룬다. 우주 전체가 커다란 하나이다. 그때 비로소 우주는 경이로 가득차게 된다.
풍경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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