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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사상과 철학 285 (교재 공개)패러다임/철학 2026. 10. 5. 02:09반응형
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85
영상 강의 링크 : https://youtu.be/ArwpPp4iWFA
689.
좋은 습관은(요가, 모든 종교) 익히기 쉽지만 좋은 것, 그 자체(탄트라)가 되기는 어렵다. 좋은 습관이나 나쁜 습관이나 습관은 모두 기계적인 것으로 나쁜 것이다. 습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각의 상태에서 순간순간을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 습관없이 살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왕의 길이다. 그 누구도 왕위에 머물자는 없다. 모방해야 할 자도 따라야 할 자도 없다.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살아라. 삶 그 자체에 충만하라. 그러나 언제나 자각의 상태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에의 주시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짜 자비심(감응, 가슴, 전체, 개화, 축복, 평온)과 습관화된 자비심(반응, 관념, 에고, 과거, 부분)은 다르다. 왕의 삶은 어떠한 삶의 형식도 없다. 순간에서 순간을 살아야 한다. 순간순간을 만끽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살아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 온몸을 감응하라. 습관적으로 반응하지 말라. 그것은 무절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탄트라는 무저항주의가 아니다. 저항과 무저항 이 양자를 뛰어넘은 것이다. 어떠한 투쟁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것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때 거기 초월이 있다. 승리가 아니라 초월이 있다. 그것은 거부하는 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자이다. 사랑과 미움, 분노와 자비, 폭력과 비폭력은 둘이 아니라 한 현상의 두 가지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꿈꾸는 것과 보는 것은 차이가 없다. 둘 다 본인의 마음 작용인 것이다. 이 세상을 마야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덧없는 꿈이며 환영이라고, 꿈과 현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실재(본질)가 될 때만이 실재를 볼 수 있다. 그대의 현 상태는 그림자같고 환영과 같다. 그림자는 오직 그림자만을 볼 뿐이다. 마음이 사라져버렸을 때 실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통해서는 모든 것이 비실재가 된다. 마음이 있는 한 모든 것은 거짓이 된다. 투쟁은 둘이 없는 곳에서 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가의 길이다. 탄트라의 길은 둘 속에서 하나를 보는 것이며 많은 것 속에서 하나를 보는 것이다. 즉 상대개념 속에서 하나를 볼 수 있을 때 초월이 가능하다. 이것이 왕의 길이다. 그대의 적은 어느 곳에도 없다. 이 삶 전체가 그대를 사랑한다. 모든 곳에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다. 적은 종교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쁘다. 저것도 나쁘다. 싸워서 이겨라. 이렇게 그들은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적이란 개념 자체도 틀렸다. 그저 존재 전체를 지켜보아라. 그러면 모두 하나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 모든 상대대립 개념은 무너진다. 그리고 거기 초월현상이 일어난다. 깨달음이 일어난다. 그대는 처음부터 문제를 만들어 놓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질문을 만들어 놓고는 그 답을 찾아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던 것이다. 따라서 초월은 문제의 해결과는 다르다. 거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원래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환자가 아니다. 그대 안을 주시해보라. 거기 어떤 병증세도 없다. 병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치료가 필요하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만의 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황제로서 태어났다. 여기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선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대를 개선하려고 한다. 그대의 완전성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불행을 만들어 내는 자들이다. 개선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대를 개선시키려는 어떤 사람도 따르지 말라. 바로 그대 자신이 마지막 언어다. 그대는 바로 알파요 오메가다. 그대는 지금 그 상태로 완전무결한 것을! 그대의 불완전함은 그대의 완전함이다. 그 불완전함은 바로 성장하고 있는 완전함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이 완전함 때문이다. 지금 그 상태 그대로 따르라. 이것이 왕의 길이고 탄트라의 길이다. 모순처럼 들리는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함이란 성장이 끝나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의 마지막 단계로서 완전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완전이란 죽음일 뿐이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완전함이란 죽음이 있을 뿐이다. 신은 성장하고 있다. 신의 완전함이란 성장이 끝나버린 그런 식의 죽은 완전함이 아니다. 하나의 완전에서 또다른 완전 쪽으로 신의 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신은 끝없이 발전해 가는 존재다. 불완전으로부터 완전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상태에서 더 완전한 상태로, 더 완전한 상태에서 보다 더 완전한 상태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산란스러운 상태를 즐길 수 있다면 산란스러움은 점차 사라져 버릴 것이다. 신란이 있다면 산란 역시 필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좋게 느낄 수 있다면 그때 변형은 시작된다. 수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행하는 것은 습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더욱더 깨어 있을지언정 더욱더 수행해서는 안된다. 초월은, 깨달음은 수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태를 통해서 일어난다.
물질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하나의 에너지 파장(진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 파장이 서로 교차하면서 물질이라는 환영을 만들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전기의 불빛만이 서로 교차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전기의 빛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모든 환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입체적인 교차가 있다. 이 전기 빛의 입체적인 교차는 입체적인 환영(입체영화)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세상은 스크린 위에서 필름의 영상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 세상은 모두 전기의 현상이다. 그대 자신만이 실재할 뿐이다. 지켜보는 자만이 실재할 뿐이다. 지켜보는 자인 그대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붓다의 본질이란 이 모든 환영을 초월했음을 뜻한다. 거기 보여질 수 있는 것(客觀)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지켜보는 자만이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다. 이때 그대는 붓다의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 실재에 도달하게 된다. 혈족관계에서마져 벗어나라는 것은 내적인 인간관계를 끊으라는 뜻이다. 즉 ‘내 것’이라는 소유는 환영일 뿐이다.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대의 것이 될 수는 없다. ‘나의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소유개념을 버렸을 때 모든 혈족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은 아내로부터 달아나라는 것이 아니다. 달아난다는 것은 그녀를 물질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도 그녀를 그대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지않으면 왜 달아나겠는가? 연결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그들과 그대 사이에 다리를 놓지 말라. 그대가 몸에서, 연결에서, 가족이 아니라 가족관계에서 벗어난다면 그 순간 그대는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다. 굳이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군중 속에서 혼자 있을 수도 있고 혼자 속에서 군중 속에 있을 수도 있다. 이 속세에 살면서 이 속세를 벗어날 수도 있다. 이것은 내적인 현상이다. 거기 내적인 산속이 있다. 외형적인 산속 역시 꿈의 한 부분이다. 히말라야 산속도 뿌나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꿈일 뿐이다. 히말라야도 시장바닥도 마찬가지로 외적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내부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거기 실재가 있다. 존재의 내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럴수록 그대는 진짜 히말라야 산중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 존재의 깊은 골짜기, 높은 산정, 그리고 원시림 속으로! 틸로빠가 말한 산속이란 바로 이를 뜻하는 것이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여유롭고 자연스런 상태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있는 그 상태로 있으라는 뜻이다. 지금 어느 곳에 있든지 거기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때만이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물 수 있다. 그러면 존재 그 자체와의 오르가즘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시장바닥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그렇게 하라. 시장 또한 성역聖域이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삶으로써 여유롭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대 존재 속에 어떤 긴장도 만들지 말라. 휴식하라.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마하무드라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제3의 현상=초월=깨달음=神性=월인천강月印千江=만파식적萬波息笛=佛性
사물들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사물들은 그저 사물로서 여기 있을 뿐이다. 아름다움이나 추함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그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관념,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적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마음의 속임수 장난일 뿐이다. 환상은 지속성이 없다. 그래서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지켜보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외의 수행은 필요치 않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을 깨어서 지켜보라. 그녀는 그녀 주위에 그녀 스스로 아름다움의 환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녀 주위에 아름다움의 환상을 만드는 것은 바로 그대 자신이다. 선택하지 말라. 선택하면 인정認定이라는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차(車)를 좋아하면 차와 하나가 된다. 그러다가 차를 도둑맞았다면 그대 자신의 어떤 부분이 도둑맞은 것이다. 두 촛불의 열은 점점 가까워지다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버린다. 이 상태가 바로 동일화이다. 가치부여인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상실이다.
얼음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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